[단비현장] 2022년 여름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연수

기후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지구적 식량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식량자급률 45% 남짓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식량안보가 가장 취약한 한국은 농촌인구가 줄고 영농규모는 갈수록 영세해져 더욱 우려가 크다. 2021년 전체 농가인구 가운데 70세 이상이 32%나 되며, 농가 70%의 농업소득이 1000만 원에 미치지 못했다. 농업과 농촌을 지원하는 대산농촌재단(이사장 김기영)의 농업전문언론장학생(대학원) 4명과 농업리더장학생(대학) 9명은 이런 위기 속에 정밀기술과 새로운 농촌을 고민하는 선구자들을 찾아갔다.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새로운 전환, 미래의 농’을 주제로 연수를 다녀온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 4명이 현장을 중계한다.  

유기농 사과밭, 아직 성공은 못했지만 

연수단은 지난 5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강선리의 로뎀농원을 방문했다. ‘선녀가 내려와 머무른 마을’답게 강선리(降仙理)의 로뎀농원은 앞에 동해바다, 뒤에 설악산이 보이는 절경 속에 있었다. 이 농원은 윤석원(70) 중앙대 명예교수가 7년 전 귀농해 일궈온 550평(1818㎡) 크기의 사과밭이다. 농업경제학자로서 평생 강단에 섰다가 정년을 2년 6개월 앞둔 2016년 2월 퇴임한 그는 ‘교직에서 물러나면 농부가 되겠다’고 했던 다짐을 실천했다. 

양양친환경미니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7년 차 농부 윤석원 교수가 생태농업과 한국 농촌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박시몬
양양친환경미니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7년 차 농부 윤석원 교수가 생태농업과 한국 농촌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박시몬

윤 교수는 7년째 화학비료가 들어가지 않는 친환경농업으로 사과나무를 키우고 있다. 2016년 미니사과(알프스 오토메)를 재배하다 냉해를 입어 2020년 알이 굵은 시나노골드와 후지로 품종을 바꿨다. 그는 그러나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28년간 강단에서 ‘친환경·유기농업’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이론처럼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학자로서 농약을 쓰지 말자고 외쳤지만, 현실에서는 나이 든 농민이 일일이 풀을 베기 어려웠다. 현장의 농민에게 당위론적 이론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자신이 평생 주장했던 대안이 옳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고 윤 교수는 말했다. 

2016년 강원대 친환경인증센터에서 친환경 농가 인증을 받은 로뎀농원의 사과밭. 1년 이상 영농일지를 제출하고 토양검사서와 수질검사서 등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인증이 된다. ⓒ 박시몬
2016년 강원대 친환경인증센터에서 친환경 농가 인증을 받은 로뎀농원의 사과밭. 1년 이상 영농일지를 제출하고 토양검사서와 수질검사서 등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인증이 된다. ⓒ 박시몬

윤 교수는 연수단에게 우리 농촌을 지키기 위한 세 가지 대안을 설명했다. 첫째 쌀농업부터 친환경농업으로 전면 전환하는 일이다. 한국의 농지 180만 헥타르(ha) 중 절반인 90만ha가 쌀농지다. 국내 농지면적의 절반 이상이 친환경으로 바뀌면 종 다양성과 생태를 보존할 수 있고, 유기농 쌀은 소비촉진 효과도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다. 둘째 중·소농을 위한 유통 판매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중·소농이 생산한 농작물을 학교, 공공급식, 로컬푸드 마켓 등 지역에서 팔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뜻이다. 셋째는 농민수당을 확충해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자는 제안이다. 현재 농민수당은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각각 다른 금액을 지급하는데, 이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일괄 지급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윤 교수는 주장했다. 국내 100만 농가가 연 100만 원씩 직불금을 받는다면 연간 1조 원의 예산이 든다. 윤 교수는 “이를 늘려 기본적인 소득을 뒷받침해주면 중·소농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팜’ ‘수직농장’ 등 정밀기술 도입 

농업에 들이는 소비 자원을 줄이고 식량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애그테크’가 꼽힌다. 애그테크는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기술로 농산물의 파종부터 수확까지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연수단은 지난 6일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을 찾아 애그테크 연구현장을 견학했다. 이곳은 국내 고유식물에서 유용한 천연물질을 추출해 식품이나 의약품을 개발하는 곳이다. 천연물질은 홍삼 속의 사포닌 같은 자연상태의 원재료를 말한다. 

KIST 강릉분원은 기술적으로 빅데이터 기반 스마트팜(지능형농장)을 구현한다. 여러 층으로 된 실내구조물에서 자동화한 설비를 갖춘 시설인 수직농장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식물 생육에 가장 적합한 스마트팜을 만드는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평균기온 상승으로 농작물의 북방 한계선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이 연구원은 2015년부터 최적의 재배조건이 유지되는 시설을 개발해왔다. 

▲ 수직농장에서 작물을 관리하는 모습. © 최은솔
수직농장에서 작물을 관리하는 모습. © 최은솔

‘식물공장’이라고도 불리는 수직농장은 18평 정도 되는 재배실 3곳과 육묘실에 정밀데이터 수집용 센서들이 설치된 모습이었다. KIST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의 박재억 박사는 “식물공장은 농업이 산업화하는데 핵심적인 ‘정량(定量), 정질(定質), 정가(定價), 정시(定時)’라는 4가지 조건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양을 적당히 조절하고 균질한 작물을 생산해 가격 안정성을 높이면서 수확 시기를 생산자의 계획대로 맞추겠다는 발상이다. 그는 “식물의 잎을 고성능 카메라로 관찰해 스트레스와 수분 상태를 진단하는 정도까지 기술 개발이 됐다”고 덧붙였다.  

7일에는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에 있는 서울대학교 그린바이오 과학기술연구원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건강식품의 소재를 개발하거나 국내 종자산업기술을 육성하는 연구를 한다. 인터넷 주문까지 받는 ‘서울대학교 계란’도 이곳에서 생산된다. 평창 캠퍼스 안 산학협력 부지에 입주한 기업은 학교에서 개발한 바이오 기술로 창업할 수 있고, 시제품 생산과 인증에 필요한 장비도 이용할 수 있다. 평창 캠퍼스를 만드는 데 기여한 박은우(68)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명예교수는 “서울대학교의 교육과 연구시설을 (지역인) 평창에 이전해 연구개발(R&D) 기반을 갖춘 첨단기술의 농촌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평창 캠퍼스 내에 있는 농장시설을 견학하는 모습. © 대산농촌재단
서울대학교 평창 캠퍼스 내에 있는 농장시설을 견학하는 모습. © 대산농촌재단

유기농 토마토로 대를 잇는 아버지와 아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의 서강로 159길. 지난 7일 연수단은 평범한 농촌 길을 거쳐 골목 안으로 400m쯤 걸어 들어가다 ‘와’하고 탄성을 올렸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농장 너머로 깔끔한 흰색과 싱그러운 주황색이 어우러진 건물이 나왔다. 유기농 토마토 농장 ‘그래도팜’과 그래도팜의 소비자 경험 브랜드 ‘토마로우’다. 

토마로우는 친환경 유기농 토마토 농장 그래도팜의 체험 서비스 공간이다. 지난달 25일 임시 개장했다. ⓒ 박시몬
토마로우는 친환경 유기농 토마토 농장 그래도팜의 체험 서비스 공간이다. 지난달 25일 임시 개장했다. ⓒ 박시몬

그래도팜은 친환경 유기농 토마토 농장이다. 창업주 원건희(64) 씨는 1983년도부터 유기농을 시작했다. 한국퇴비기술인연합회에서 유기농법을 배웠고, 개발을 거듭한 끝에 독자적인 퇴비를 완성했다. 원 씨는 농장 주변의 참나무 펄프공장에서 참나무 껍질을 가져와 직접 퇴비를 만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힘들지만, 우리 토지와 건강한 먹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래도’ 이어 나갔다. 지금은 그 신념을 원 씨의 아들 승현(39) 씨가 잇고 있다. 

승현 씨는 브랜드 디자이너로 7년을 일했다. 흩어져 있던 브랜드의 가치를 모으고, 시각화하는 일이었다. 가치 있는 것을 모으는 작업을 하다 보니 아버지가 하던 일이 떠올랐다. 힘들어도 ‘그래도’ 해나갔던 일. 잠깐 도와주려던 일이 본업이 됐다. 승현 씨는 아버지가 하던 토마토 농장 ‘원농원’을 2015년 이어받아 그래도팜이라고 개명했다.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 ‘그래도’에서 따왔다. 그래도팜의 대표 작물은 대추방울 토마토 ‘기토’다. ‘기똥찬’, 기가 막힌, 기적의 토마토란 뜻이다. 모두 소비자의 후기에서 따왔다. 

승현 씨가 생산하는 토마토는 흔한 토마토 모양과 다르다. 가지와 비슷한 보라색, 바나나처럼 노란색도 있다. 모양도 벚꽃 같은 모양, 납작하고 울퉁불퉁한 모양 등 제각각이다. 유전자 조작을 거치지 않은 순종인 ‘에어룸(heirloom) 토마토’다. 종자 회사에서 사는 에프원(F1) 씨가 아니라 직접 열매에서 받아낸 씨로 길러낸다. 크기와 맛이 균일한 F1 종자 토마토와 달리 각양각색의 모양과 맛을 보여준다. 

그래도팜에서 재배하는 에어룸 토마토가 전시된 모습. 12개 품종에 더해 다른 품종 4가지를 도입해 새롭게 실험해보고 있다. ⓒ 박시몬
그래도팜에서 재배하는 에어룸 토마토가 전시된 모습. 12개 품종에 더해 다른 품종 4가지를 도입해 새롭게 실험해보고 있다. ⓒ 박시몬

강원도 감자를 지키는 아버지와 아들도 

지난 6일 방문한 강원도 강릉 왕산면의 농업회사법인 왕산종묘에서는 권혁기(60) 대표가 아들과 함께 ‘우리 감자’를 지키고 있었다. 감자는 씨앗을 심어 재배하면 모양과 품질이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씨앗 대신 감자를 심는다. 땅에 심는 그 감자를 씨감자라고 한다. 왕산종묘는 국내 대표 씨감자 생산지다. 권 대표는 품종 다양성이 우리의 ‘권리’라고 말한다. 1998년 외환 위기 때 국내 주요 종자 회사들이 외국계로 넘어가 종자 해외 의존성이 높아졌다. 감자 중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것은 미국 품종인 수미감자다. 권 대표는 신품종 감자 ‘단오’와 ‘왕산’ 등을 개발했다. 강릉의 대표축제인 단오제와 강릉 왕산면에서 따온 이름이다. 

왕산종묘의 권혁기 대표가 꽃으로 감자 품종을 구별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왕산종묘에서는 씨감자 13종을 생산하고 있다. ⓒ 박시몬
왕산종묘의 권혁기 대표가 꽃으로 감자 품종을 구별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왕산종묘에서는 씨감자 13종을 생산하고 있다. ⓒ 박시몬

 권 대표의 아들 태연(31) 씨는 농업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농식품 임팩트 스타트업 ‘더루트 컴퍼니’의 제품총괄책임자(CPO)다. 이 회사의 브랜드 중 하나인 ‘감자유원지’는 감자를 주제로 한 복합공간이다. 감자를 주제로 기념소품을 제작하고, 감자수프와 갈아낸 감자를 얹은 카레 우동 등 음식도 판매한다. 

더루트 컴퍼니의 권태연 씨가 회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더루트 컴퍼니의 권태연 씨가 회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사재를 털어 22년 동안 가꾼 자생식물원 

지난 7일 방문한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에서는 김창열(74) 전 원장이 꽃 하나하나의 이름과 특징을 소개했다. 이곳은 산림청이 지정한 제1호 사립식물원이었던 곳으로, 3만 5000평 부지에서 멸종위기식물, 특산식물과 천연기념물 등 자생식물 1600여 종을 키우고 있다. 자생식물은 산이나 들, 강 등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야생식물을 말한다. 김 대표가 22년 동안 관리·운영한 이 식물원의 가치는 약 202억 원으로 추정된다. 

김 대표는 지난해 이 식물원을 산림청에 기부했다. 그래서 지난 5일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 됐다. 이곳은 우리 꽃과 풀에 관한 인식을 높이며 유전자원을 보존하는 독보적 존재로 역할을 하고 있다. 2012년 식물원에 불이 나면서 8년 동안 복원하는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재건했다. 그는 “우리 식물 같은 유전자원을 보존하는 하나의 천국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김창열 대표가 산수국을 설명하고 있다. 산수국은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에서 자라는 관엽 관목이다. 꽃이 희고 붉은색이 도는 하늘색이 특징이다. ⓒ 박시몬
김창열 대표가 산수국을 설명하고 있다. 산수국은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에서 자라는 관엽 관목이다. 꽃이 희고 붉은색이 도는 하늘색이 특징이다. ⓒ 박시몬

지난 8일에는 연수단이 강원도 영월군 북면에 있는 ‘내 마음의 외갓집’을 방문했다. 이곳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급자족을 추구하는 소규모 가족농장이다. 김영미(55) 대표가 남편 임소현(55) 씨와 함께 5000여 평 땅에서 밀, 콩, 배추, 고추, 블루베리 등 200여 가지 곡물과 채소, 과일을 유기농으로 키우고 있다. 이들 부부는 산에서 흙을 퍼 나르고 나무를 베어 통나무집을 지어 산다.

김 대표 부부는 ‘퍼머컬쳐’(permaculture)를 실천하고 있다. 영속적이라는 뜻의 퍼머넌트(permanent)와 농업이란 뜻의 애그리컬처(agriculture)의 합성어다. 농약 등을 덜 투입하고 생태 자원을 순환하는 농업을 의미한다. 비료는 ‘뒷간’으로 부르는 화장실에서 인분과 톱밥을 섞어 만든다.

두 사람의 노동력으로 5000여 평 규모의 유기농업을 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프’(WWOOF: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라는 해결책을 찾았다. 우프는 유기농가나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곳에서 반나절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으로, 150여 국가에 네트워크가 있다. 한국에서도 농가 50곳이 가입되어 있다. 내 마음의 외갓집은 10년째 우프를 활용해 농사를 짓는다. 각국에서 100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연수단이 방문한 날, 우프를 통해 방문한 프랑스인이 라따뚜이와 파스타 등 요리를 맡아주기도 했다. 

우프를 통해 방문한 프랑스인이 직접 요리한 파스타 등 각종 요리들. 재료는 대부분 내 마음의 외갓집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다. ⓒ 박시몬
우프를 통해 방문한 프랑스인이 직접 요리한 파스타 등 각종 요리들. 재료는 대부분 '내 마음의 외갓집'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다. ⓒ 박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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