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정리해고 후 희생자 22명, ‘범국민 추모 및 행동의 날’

“정리해고 박살내고, 현장으로 돌아가자!”

 

21일 오후 2시 30분쯤 경기도 평택역 앞 광장.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쌍용자동차 노조원과 정당 및 사회단체 관계자, 시민 등 2000여명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산하 금속노조와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교수협의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결성한 ‘쌍용차 희생자 범국민 추모위원회’가 행진을 주도했다. 울긋불긋하게 장식된 전통상여를 앞세우고 쌍용차 근로자들이 22개의 영정과 모형 관을 운구하는 가운데, 비닐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든 참가자들이 뒤를 따랐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쌍용차와 정부는 살인을 멈춰라!”
“정리해고 철회하라! 약속을 이행하라!”
“우리는 모여야 합니다. 해결이 될 때까지.”

▲ 쌍용자동차 사태로 목숨을 잃은 22명의 영정과 모형 관을 든 쌍용자동차 해고근로자들이 평택역을 출발하고 있다. ⓒ 강신우

참가자들은 긴 행렬의 앞뒤에서 이런 구호가 쓰인 현수막과 깃발, 손 팻말을 흔들었다. 행진은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앞까지 2시간이 넘게 계속됐지만 세찬 바람과 빗줄기 속에서도 대오는 흔들리지 않았다. 대열에서 함께 걷던 강정자(46·주부·전남 목포)씨는 “(한진중공업 관련) 희망버스부터 시작해 (쌍용차를 위한) 희망텐트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며 “정권이 바뀐다고 한순간에 쌍용차 사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니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두행진을 지켜본 주민들의 반응은 응원과 비판의 시선으로 엇갈렸다. 평택역 부근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판다는 유모(70)씨는 “지금 평택공장 근로자들도 예전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데, 어려운 회사에 해고근로자를 재고용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 추모행렬에 최루액 분사하며 막아서

오후 5시 무렵, 행렬이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에 도착했다. 앞줄에 섰던 쌍용차 해고근로자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방패를 든 수십 명의 경찰 병력이 막아섰다.

“너희가 뭔데, 우리를 막아.”

▲ 쌍용자동차 근로자들이 울긋불긋하게 장식된 전통상여를 앞세우고 평택공장에 들어서고 있다. ⓒ 정혜아

울분을 토하던 노조원들과 일부 시민들이 합세해서 경찰을 끌어내려 하면서 충돌이 시작됐다. 경찰은 즉각 휴대용 분사기로 시위대를 향해 최루액을 뿌렸다.

“여러분, 경찰관들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경찰관들을 밀지 마십시오.”
“신고 장소를 이탈시 공권력을 투입해 체포하겠습니다.”

경찰이 방송을 통해 호소와 위협을 반복했지만 마구잡이로 뿌린 최루액을 맞고 흥분한 참가자들과 경찰의 대치는 30여 분간 이어졌다. 그러다 추모위원회측이 공장 정문 앞에서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를 시작하자 진정됐다.

대한불교 조계종 화쟁위원회 일감 스님은 천도재를 집전하면서 “지금 우리 사회는 소유욕에 휩싸여 생명보다 돈을 더 귀중하게 여기는 물신주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며 “스물두분의 소중한 생명이 유명을 달리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깊은 참회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천도재에 이어 상복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전쟁 같은 파업을 온 몸으로 겪었지만, 이제부터 또 죽을 각오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다시 그 전쟁터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 공장 정문 앞에서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가 진행되고 있다. ⓒ 강신우

백기완, 심상정, 문성근 등 각계인사 참여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작업복 대신 상복이 일상화된 쌍용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노동의 희망도, 민주주의 희망도 말할 수 없다”며 “19대 국회에서 쌍용차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1순위로 해결하기 위해 뛰겠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사회단체대표,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권한대행 등 정치인,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오는 5월 10일 사회 각계 대표들을 만날 것’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5월 19일 범국민대회를 열 것을 결의한 뒤 해산했다.

▲ 노조원들과 일부 시민들이 울분을 토하며 경찰을 끌어내려고 하자, 경찰이 휴대용 분사기로 시위대를 향해 최루액을 뿌렸다. ⓒ 강신우

쌍용차 무급휴직자의 가족이지만 집회에는 이날 처음 나왔다는 한 40대 여성은 “지난달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22번째 희생자 이모(36)씨가 남편과 가까운 사이였다”며 “소식을 듣고 남편이 너무 힘들어 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편이 3년 넘게 복직을 기다려왔는데 지금 와서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없고, 병원에 갔다 와서 약 먹는 모습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고개를 떨궜다.

쌍용차 사태는 지난 2009년 회사 측이 재정위기를 이유로 2천7백여 근로자들을 정리해고하기로 하자 노조가 77일간 파업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노조 측에 따르면 그해 8월 회사 측이 무급휴직자 등을 1년 후 복귀시켜주고 조합원들에 대한 각종 고소고발을 취하하기로 해 파업을 철회했지만 회사는 아직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후 쌍용차 해고근로자와 그 가족 중에서 22명이 자살이나 사고,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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