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나]

▲ 오종남 서울대 교수(전 IMF 상임이사)
1963년 어느 가을 날, 전북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의 석곡국민학교 6학년생이던 필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버스는 서울 쪽으로 가는 대신 반대 편 남쪽으로 더 내려가 전남 장성군 북일면의 신흥역에 도착했다. 이 역은 지난 2004년에 없어졌다. 당시는 영문도 모르고 탄 버스였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가난한 시골 학생들의 하루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야간 완행열차로 다음날 새벽 서울역에 내리려고 그랬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당시 필자의 고향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1박 2일이던 셈이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4년 가을, 필자가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의 상임이사(Executive Director) 가 되어 부임할 때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침 10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당일 11시에 워싱턴에 도착했다. 서울과 워싱턴간 14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그 시차에 20분만 더하면 지구 저편에 훌쩍 가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직접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세상을 통한다면, 이젠 지구 어디라도 물리적 거리는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세계 어느 곳에 있는 누구와도 실시간(real time)으로 대화를 할 수 있고, 필요하면 사진과 동영상도 전송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이제는 전 세계가 마치 한 마을처럼 가까워진 것이다.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지구(Globe)’가 ‘무엇이 되었다(lization)’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되었다는 것인가? 필자는 한 마을, 즉 빌리지(village)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Globalization’ 을 세계화라고 번역하는 대신 지구가 마치 한 마을처럼 되었다는 뜻으로 ‘지구촌시대’라고 풀어쓰곤 한다.
 
필자는 오늘 단비뉴스의 ‘세계와 나’ 라는 주제의 첫 번째 칼럼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시대를 화두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먼저 지난 40-50년 동안 세계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나를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된 것은 1964년이었다. 그리고 국제연합(UN)이 정한 빈곤선인 하루 1달러를 달성한 것이 1973년이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404달러였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보통 사람이 하루 세 끼 밥 제대로 먹게 된 것이 40년도 채 안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때까지 우리는 북한보다도 못 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다. 그러던 한국이 1977년 1인당 국민소득 1천 달러를 돌파했고, 1995년에는 1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지금은 환율 변동에 따라 다소 바뀌긴 하지만 대략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내외의 국가가 되었다.
 
인구 5천만이 조금 안 되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달러로 환산했을 때 이제 1조 달러 수준이 되었다. 지난 2007년 한 때는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가 환율과 경제 침체의 영향으로 지금은 15위로 다소 밀리긴 했으나 여하간 세계인의 눈에 비치는 한국은 예전의 ‘가난한 나라’가  더 이상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가? 우리의 약 절반 정도인 2천4백만 인구에 1인당 국민소득이 1천 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니 인구로 우리의 반, 1인당 소득으로 약 20분의 1 해서 전체 국내총생산은 우리의 약 40분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식량 부족으로 세 끼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비일 비재한,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필자가 1980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한에서 왔나 북한에서 왔나’를 묻는 미국인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 질문을 하는 외국인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제 세계 속의 한국은 남한이 대표하고 있고 북한은 핵 실험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지원국 리스트(terrorist country list) 에 올라 있는 나라가 되었다.
 
다음으로 지구촌시대의 특징을 생각해 보자.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그 가운데 하나를 필자는 ‘강 건너 불’ 시대는 가고 ‘발등의 불’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 우리가 어렸을 때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 중 하나가 강 건너 불이었다. 자신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긴박한 상황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이니 어린 아이에겐 얼마나 신나는 구경거리였겠는가? 그런데 지구가 마치 한 마을처럼 된 ‘지구촌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은 강 건너 불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내 발등으로 옮겨 붙어 피해를 보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지구촌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서로와 무관하게 살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Everybody has become interdependent in the global age.)
 
잘 알려진 것처럼,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는 미국에서 일어났다. 너도 나도 집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소득이 낮고 신용도가 떨어지는 가구까지, 즉 저신용자 대출(sub-prime) 대상인 계층까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산 끝에 일어난 일이다. 경기가 나빠지고 계속해서 오를 줄 알았던 집값마저 떨어지게 되자 소득이 낮은 계층은 집 사느라 빌린 돈(mortgage)의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게 됐다. 그 결과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많이 떠안게 되고, 2008년 9월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라는 전통 있는 금융기관이 도산 위기에 몰리는 사태까지 간 것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위기, 경제위기가 강 건너 불인 줄 알았는데, 웬 걸, 그게 아니고 세계 곳곳으로 불길이 번져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로 떨어지게 됐던 것이다. 이것이 지구촌시대를 사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구촌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제 더 이상 ‘동네 1등’만으로는 안 되고 ‘세계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 아닐까? 그럼 ‘세계 1등’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결론만 이야기 하자면 ‘붕어빵’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크든 작든 나만이 가진 특별한 재주가 없이, 평범한 군중의 하나(one of them)로서는 이 시대에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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