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생방송 프로 ‘너무 쉬운 문제’에 사행심 조장 등 논란
[지난주 TV를 보니: 4.9~15]

요즘 단돈 100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구멍가게에서도 소비자가격 100원짜리 물건을 찾기 어렵고, 대학 구내 등에 있는 자판기의 ‘싸구려 커피’도 대개 150원부터다.

물가상승 탓에 가치를 잃은 100원을 가장 값지게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지난 1월 6일 시작된 에스비에스(SBS)의 <1억 퀴즈쇼>다. ‘세계 최초 휴대전화 문자 참여 퀴즈쇼’를 내세운 <1억쇼>는 금요일 저녁 10시부터 생방송으로 시청자를 총 10단계 퀴즈 맞히기에 초대한다. 문자 한 번 당 100원의 비용을 들여 정답을 보내면 추첨을 통해 가장 낮은 단계에서 10만원, 최고 단계에서 3000만원의 상금을 받을 수 있다. 10단계에 다 참여해 모두 당첨된다면 최대 488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 1억퀴즈쇼의 오프닝 장면. ⓒ SBS화면 갈무리

▲ 매주 금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1억퀴즈쇼'. 200명의 방청객과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 SBS화면 갈무리

생활 주변의 문제, 두세 개 보기 중 정답 하나 고르기

문제는 단계가 올라갈수록 조금씩 어려워지지만 전반적으로 쉬운 편이다. 특히 셋 혹은 두 개의 보기 중 하나를 선택하는 객관식이고, 한 문제 풀이에 3분의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 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지난 13일 방송의 1라운드의 문제는 “90년대 시티폰은 어디 근처 200미터 내에서 발신이 가능했을까?”였고, ‘공중전화’와 ‘전봇대’를 보기로 주었다. 답은 공중전화. 3분 안에 문자를 보낸 시청자 중 100명을 뽑아 화면에 즉각 발표했다. 이들에겐 10만원짜리 상품권이 주어졌다.

▲ 문제 난이도는 쉬운편이다. 3분안에 정답을 문자로 보내면 된다. 총 10개의 라운드로 구성돼있고 열번 모두 참여할 수 있다. ⓒ SBS화면 갈무리

20만원씩 50명에게 상금을 주는 2단계 문제는 “장모님 1000명에게 물어본 결과 ‘이럴 때 우리 사위 예쁘다’ 1위는?”이었다. 문화방송(MBC)의 가족퀴즈쇼 <세바퀴>같은 데 나올 법한 문제인데, ‘자주 놀러올 때’와 ‘용돈 많이 줄 때’가 보기로 제시됐다. 정답은 자주 놀러올 때.

▲ 선택문항은 단 두개. 정답확률이 50%기 때문에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다. ⓒ SBS화면 갈무리

가끔 별도의 지식이 필요한 문제도 나오긴 한다. ‘기상청에서 발표하고 있는 생활지수’를 묻는 경우. 데이트 지수, 뱃멀미 지수, 발 냄새 지수 중에 답은 뱃멀미 지수였다. 이렇게 두세 개 보기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문제 형식은 시청자의 참여욕구를 북돋기에 충분해 보였다. 3라운드와 6라운드에서는 상금 1000만원을 걸고 즉석에서 전화연결도 했다. 각 라운드에서 출제된 문제의 정답자 중 1명을 추첨해 단독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상금이 큰 만큼 문제 난이도를 살짝 높였는데, 6라운드에 연결된 시청자가 1000만원 퀴즈를 풀었다. ‘아닌 밤중’에 1000만원을 쥐게 된 참가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아하하하, 실감이 안 나요. 최고예요!” 

▲ 지난 4월 13일 방송에서 한 시청자가 6라운드 상금 1000만원을 획득했다. ⓒ SBS화면 갈무리

“왠지 나도…”, 하지만 당첨 확률은 복권 수준

방송이 진행된 약 58분 동안 188명이 크고 작은 행운을 안았다. 거의 10분에 한번 꼴로 당첨자 명단이 화면에 나타나니, ‘나도 가능할 것 같다’는 기분이 절로 든다. 10라운드 모두 도전하면 1000원의 문자사용료를 쓰게 된다. 매주 발행되는 연금복권을 사는 값이다. 그렇다면 당첨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13일 <1억쇼>의 시청률은 7%(AGB닐슨, 전국시청률)였고, 첫 회와 비슷한 참여가 이뤄졌다고 본다면 약 300만개의 문자가 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각 단계별로 당첨확률이 수십만~수만분의 1이니, 복권당첨 확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제작진은 회당 약 3억원의 문자수익금 중 상금 1억원과 기술운용비 등을 제외한 나머지를 안면장애어린이를 위한 수술비용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기부금 사용위원회를 만들었고, 현재 기부금 수혜자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방영이 시작된 지 석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수혜자가 선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의 ‘공익성’에 대한 의지에 다소 회의를 품게 한다. 수혜자 선정은 기획 단계부터 잘 준비해서 프로그램 방영과 함께 그 쓰임새를 시청자에게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1억쇼>는 출발부터 ‘사행심 조장’과 관련해 경고를 받았다. 지난 연말 파일럿(시험용) 프로그램이 방영됐을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상금규모에 비해 문제가 너무 쉬워 사행성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주의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후 본방송에서는 참가자의 연령을 15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상금도 하향조정했지만, 시청자 게시판에는 ‘어린이가 상금을 탔다’ ‘부모 전화로 참여하는 것은 어떻게 막나’ ‘문제에 오류가 있다’,  ‘당첨금 지급이 왜 이리 늦나’ 등 다양한 불만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 '1억퀴즈쇼'는 15세이상관람등급이다. 그런데 지난 2월 17일 방송에서 초등학생이 당첨돼 논란이 일었다. ⓒ SBS화면 갈무리

손쉬운 참여와 즉석 추첨, 저렴한 참가비와 거액의 당첨금은 시청자의 입맛을 당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때문에 매주 수억대의 수익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복권 혹은 로또에 대해 ‘허황한 기대를 자극해 서민의 주머니를 턴다’는 비판이 있는 것처럼, 이 프로도 자칫하면 ‘사행심을 조장해 푼돈 털기’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 제작진은 문자메시지 수익금을 안면장애 아이들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부금 사용내역을 공개하는 게시판은 3달째 비어있다. ⓒ 1억퀴즈쇼 게시판

매주 쌓이는 수익으로 ‘좋은 일’을 한다는 약속이 빨리 지켜지고, 그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이런 논란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문제의 내용과 난이도에도 더 공을 들여야 ‘재미와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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