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먹고 자고 놀고 보고…대전 대흥동 문화공간

“방 있어요?” “자고 갈 거예요?” 지친 투숙객의 목소리도, 반가워하는 주인의 목소리도 모두 끊긴 45년 역사의 퇴락한 골목 여인숙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잦아졌다. 썰렁한 골목과 주인 잃은 건물에 온기를 불어넣은 이들은 대전의 문화예술인들이다.

대전의 특이한 문화공간 ‘산호여인숙’은 낡은 건물에 페인트를 칠하고 버려진 가구들을 주워 모으고 젓가락 한 벌까지 후원한 여러 사람들의 힘으로 마련됐다. 아니, 1977년에 작명한 ‘산호여인숙’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니 재탄생이다.

▲ 막다른 골목 안에 있는 산호여인숙. ⓒ 박다영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예술과 만나는 곳

‘산호여인숙’을 포털에서 검색하면 ‘대전시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라는 문구가 뜬다. 하지만 한 줄로 이곳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복합문화예술공간’이라 하기에는 관료 냄새가 나니, ‘먹고 자고 놀고 보고, 모든 것이 가능한 놀이터’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언제든지 예술과 만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대전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합심해 만든 산호여인숙은 오히려 한산한 구도심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꽃으로 장식된 초록색 대문의 산호여인숙이 나타난다. 대문 뒤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된 하늘색 문이 있다. 어항을 연상하게 하는 동그란 창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산호의 고향인 바닷속을 연출한 걸까? 복도에 들어서니 천정과 벽은 파란색으로 엷게 칠해져 있고 바닥에는 파란 카펫이 깔려있다. 

▲ 꽃으로 장식된 초록색 대문. ⓒ 박다영

산호여인숙의 시작은 매년 8월에 열리는 대흥동 문화예술축제인 ‘대흥동립만세’다. 대흥동의 문화예술인들이 꾸리는 거리문화축제에 참여하려고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을 찾는데 그때마다 여관이나 모텔은 그들에게 ‘묵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고민 끝에 나온 것이 게스트하우스다. 대전을 찾을 때마다 편하게 묵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소망이 이루어진 셈이다. 지금은 대흥동 일대에 많은 유흥업소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미술학원, 화랑, 필방 등 문화 관련 상점이 남아있어 문화예술인의 활동 무대로도 안성맞춤이다.

‘휴식’ 또는 ‘불륜’에서 '문화'의 공간으로 

산호여인숙의 공간은 독특하다. 똑같은 구조지만 1층은 기획전시실, 2층은 게스트하우스다. 산호여인숙 송부영(34ㆍ남) 대표는 1층을 ‘문화 예술이 머무는 곳’이라 설명한다. 게스트하우스에 사람이 머물듯, 한두 달 주기로 바뀌는 기획전시도 ‘손님’으로 대접받는다.

29일까지는 이은종 작가의 <여관>이 산호여인숙에 머무른다. 붉고 노란 조명의 방, 인도 타지마할을 연상하게 하는 화려한 모양의 침대 장식, 칙칙한 여관방의 모습을 담아냈다. 미디어에서 보는 불륜의 공간, 남녀의 정사가 이뤄지는 공간, 범죄와 타락과 음지의 공간이 아닌 공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여관을 관찰했다. 그에게 여관은 도시를 대변하고 생산과 욕구를 배출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 이은종 작가의 <여관>이 전시 중인 산호여인숙 내부. ⓒ 박다영

2층 게스트하우스에는 하루 이틀 머무는 여행자도 있지만 월세를 내고 장기 투숙하는 ‘산호주민’도 있다. 대전에 사는 문화예술인은 방세는 절반만 내고 나머지는 재능기부를 한다. 지금은 연극인, 문화기획자, 화가 등 5명이 머무르고 있다.

드로잉 작가 최예리(26) 씨는 산호주민이 된 지 보름째다. 그는 대전 시립미술관에서 열었던 ‘2010 게스트&게이트 전’에 청년작가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산호여인숙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혼자 작업하기도 편하고 다양한 예술인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에게 산호여인숙은 첫 전시회를 열 수 있게 해준, 대중과 소통하는 창구다.

산호주민으로 불리는 사람은 장기투숙객뿐만이 아니다. 송부영 대표는 산호주민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산호여인숙 송부영 대표. ⓒ 박다영

“시작할 때 페인트칠을 함께했던 이들, 물품을 후원해준 이들 모두가 산호여인숙 사람들이에요. 재능기부를 함께하는 작가들, 특히 처음으로 열었던 ‘게스트&게이트 전’ 14인 작가들이 많은 기운을 불어넣어 줬어요. 하루 묵은 이도 주민이고. 산호여인숙이 궁금해 문 앞을 기웃거리는 이도 모두 산호주민이에요. 취재 온 기자님도 산호여인숙이 궁금해서 오신 거잖아요.”

그 중에서도 매주 한번 ‘오감’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대흥동 젊은이 모임이 있다. 오고 가는 사람들 모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오감(五感)이기도 하다. 여기 모이는 이들은 축제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다.

금주에 있었던 문화예술 핫이슈나 문화 활동을 소개하고 ‘대흥동립만세’를 위한 준비를 한다. 식탁에 둘러 앉아 나오는 이야기는 심각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초록색으로 식탁을 물들이자는 ‘초록식탁’이라는 소소한 주제로 저녁을 함께하고 아트 벼룩시장을 열어 바느질을 하고, 액세서리도 만든다. 그저 ‘재미’로 시작해 즐긴다.

죽은 공간에 '숨'을 불어넣다

산호여인숙은 ‘대흥동립만세’를 시작으로 ‘게스트&게이트 전’ ‘빈집여행프로젝트 1+1’ ‘서랍 속 여행이야기’ ‘대흥동 트러스트’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작년 12월, ‘빈집여행프로젝트 1+1’에서는 모든 게 ‘1+1’이 됐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장르와 장르가 더해지고 결국 고요하던 빈집이 소란스러워졌다. 얼굴도 모르는 서로 다른 장르의 작가들이 만나 주제를 정하고, 대흥동 빈 상가를 찾아 작품을 전시하면서 방치된 공간에 예술적 의미가 덧대어졌다.

 

▲ 2011년 빈집프로젝트 1+1. ⓒ 산호여인숙

어떻게 보면 1980년대 유럽에서 빈집을 점거해 예술 활동을 벌인 급진적 사회운동, 스쿼팅(Squatting)이 연상된다. 송 대표는 대신 ‘1+1’의 의미를 강조했다.

“스쿼팅보다 빈 상가에도 예술과 문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각자 다른 분야 예술인들이 빈 공간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에 초점을 맞추고 시작했죠. 서로 모르는 작가 두 명이 만나 하나의 주제를 녹여내는 것이 가장 큰 의도였어요.”

‘대흥동 트러스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옥수동 트러스트’로 이어지는 계보를 ‘대흥동’이 이어받았다.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 기증과 기부로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하여 시민 소유로 영구히 보존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이다.

‘옥수동 트러스트’는 이 운동을 이어받아 마지막 남은 13구역 재개발로 사라져가고 있는 달동네인 옥수동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한다. ‘대흥동 트러스트’는 또 다른 오마주, 곧 모방이다. 대흥동은 원래 대전의 도심이어서 육칠십 년대 건물과 상가가 많이 남아있지만 최근 다세대주택이나 새로운 상가가 들어서면서 사라지고 있는 예스러움을 담아내고자 했다.

▲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청청현. 재개발을 위해 올해 초 허물었다. ⓒ 산호여인숙

이 프로젝트는 ‘옥수동 트러스트’를 진행했던 작가의 도움도 받았다. 지금까지 주민들에게 만남의 장소였던 청청현, 술 마신 손님은 사절하는 정통바 아도니스, 대추 감초 동동 띄운 쌍화차가 나오는 산호다방, 동네 할머니가 잠시 쉬었다가는 동네 사랑방 부여수퍼,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전파사 진영전자가 소개됐다. 그 중 청청현은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송 대표를 비롯한 프로젝트 추진팀은 그들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재개발 담론이라는 큰 의미를 보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흥동의 오래된 공간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더 큰 프로젝트예요. 사라진 청청현은 주민들의 추억 어린 공간이라고 들었거든요. 그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죠. 하지만 건물 소유주나 다른 주민들은 많은 돈을 받고 개발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고, 꼭 대흥동을 떠나선 안 된다는 당위성은 없어요. 그래도 우리끼리 아쉬움을 간직하고, ‘이런 공간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는 차원이에요. 그런 상가나 가게를 찾아 다니는 것이 재밌기도 하구요.”    

산호여인숙은 ‘공간’에 집중한다. 비어있거나 이제는 ‘구닥다리’ 소리를 듣는 공간에 무한한 애정을 쏟고, 40년 역사를 지닌 여인숙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아직은 산호여인숙이라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요. 공간은 ‘연속성’이 중요하죠. 적어도 5년은 지나야 우리 공간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렷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허름한 복장과 낡은 가방을 든 한 노부부가 이 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들은 예전에 흔하던 ‘여인숙’ 간판을 보고 부담 없이 투숙했을 터이다. 일찍 잠자리에 든 노부부의 불 꺼진 방을 보면서 송 대표도 한동안 마음이 짠했다. ‘여인숙’은 원래 ‘여행하는 사람이 묵는 곳’이었으니까. 산호여인숙은 문화예술 공간을 표방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인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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