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김희진

▲ 김희진 기자
아무나 소개팅에 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연애시장’에도 괜찮은 상대를 골라내는 ‘필터링 과정’이 있으니까. “어떻게 생겼어?” “학교는 어디?” “어느 동네 산대?” 이 세 가지 질문은 요즘 젊은이들이 소개팅을 할 때 따지는 필수조건이다. 상대방 조건이 자신이 세워둔 기준에 맞지 않으면 그의 인간 됨됨이나 장래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일단 ‘아웃’이다. ‘연애시장’에 나갈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이 세 조건은 ‘짝 찾기’에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선출할 때도 외모, 학벌, 출신지역은 늘 중요한 변수다. 나 역시 그랬다. 지난 11일 내가 특정 후보에게 표를 던진 까닭은 그가 내놓은 정책이 특출하게 훌륭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속한 지역에 출마한 두 후보의 정책은 ‘거기서 거기’처럼 보였다. 오히려 신뢰를 주는 그의 외모와 같은 학교, 게다가 같은 학과 출신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는 내 고향에서 강세를 보이는 정당 소속이기도 했다. 늘 연고에 따라 투표하는 아버지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총선 개표 결과를 보면 ‘비합리적 유권자’는 나만이 아니었다. 동서로 갈려 온통 빨갛고 노랗게 물든 ‘정당별 당선자 분포도’를 보면 지역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67석이 걸린 영남에서 새누리당은 4곳(사상ㆍ사하을ㆍ거제ㆍ김해갑)을 뺀 모든 지역구에서 승리했다. 호남은 야당만의 리그였다. 선거 판세를 좌우하던 충청과 강원에서도 새누리당에 표가 몰리면서 ‘캐스팅 보트’ 지역마저 사라졌다.

사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때 개인은 자신과 보다 가까운 쪽으로 ‘이기적’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이를 이용하기 위해 거대 정당들은 특히 선거가 막판에 이르자 ‘감정’에 호소하는 운동을 펼쳤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책을 통해 유권자를 설득하는 대신 대권주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거나 일부 후보의 과거사를 캐고 헐뜯는 데 집중했다.

언론은 유권자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여야가 주도하는 프레임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후보자 간 대결 구도나 총선 판세 분석 등 흥미 위주 보도가 주를 이뤘고 유권자들의 판단 기준이 되는 인물과 정책에 대한 검증은 뒷전이었다. 비례대표와 관련한 보도도 공천자가 각 당이 내건 정책에 부합되는지 등을 분석하기보다 당대표의 순번이나 유명인사들에 관심을 쏟았다. 언론이 스스로 소명을 포기했으니 유권자들로서는 판단근거를 잃고 감정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면 조건을 꼬치꼬치 따져서 만나는 소개팅은 실패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 얼굴이 잘생기면 ‘얼굴값’을 하고, 같은 지역이나 학교 출신이라 해서 말이 잘 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건 없는 만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소개팅이건 선거판이건 우리에게는 옥석을 구분할 수 있는 ‘합리적 필터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당과 언론, 그리고 유권자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선거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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