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구슬이

▲ 구슬이 기자.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목격하고 히틀러 주변 사람들의 맹목적 순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심리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격리된 방에 있는 학생이 문제를 못 풀면 전압을 점점 높여 전기충격을 가하라고 했다. 밀그램은 참여자들에게 권위적이고 딱딱한 말투로 “실험을 계속 하십시오”라는 말을 반복했다.

실험팀은 150볼트 이상이 되면 참여자들이 실험을 거부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결과는 참여자 65%가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는 수준까지 전기충격을 가하는 행동을 했다. 물론 실제로는 전기가 흐르지 않았고 고통스러워하는 학생 역할을 한 사람은 연기자였지만, 참여자들이 밀그램의 권위에 순종(compliance)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심리학에서 순종은 개인이 하도록 요구받은 행위를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수행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한 쪽이 권력을 가질 때 평형관계는 깨지고 힘이 한 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뿐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해서 권력을 확대해나가기 때문에 평형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다.

절대 다수 국민이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좌우되어온 한국의 정치사도 이런 순종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국민은 선거 때만 민주주의의 주역일 뿐 선거가 끝나면 왕조시대의 백성 신분으로 돌아간다. 4대강사업과 신문방송겸영에 대해서도 국민 다수가 반대했지만, 국민의 대표자라는 사람들이 민의를 거스르고 말았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국민 다수의 머리 속에 뿌리내린 탓이다. 선진국 중 꼴찌인 사회복지지출이 ‘4대강’ 같은 말도 안 되는 사업에 수십조 원씩 쓸어넣었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를 깨닫지 못한다. 그저 우리 동네 앞 강에 보와 공원이 들어서고 도로가 새로 나는 것에 현혹된 사람이 상당수에 이른다. 

권리에 대한 시민의식이 낮으면 권력자들은 계속 정치를 자신들의 전유물 또는 권력 다툼의 싸움판으로 여기게 된다. 1% 자본에 반대한 월가 점령 시위는 시민들이 각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위는 두달반 동안 이어졌고, 강제 해산 후에도 ‘의회 점령 시위’ 또는 ‘압류주택 점령 시위’로 발전했다. 깨진 평형상태를 되돌리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방한 한국의 ‘여의도 점령 시위’는 단 하루뿐이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예링의 말은 우리 국민을 두고 하는 질타였나? 우리가 권리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시위라는 수단에는 무너지지 않는 장벽도 각성한 시민이 선거에서 제대로 권리를 행사하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서민들은 대개 99%를 위한 정당이 아니라 1%를 위한 정당을 지지해왔다. 서민들은 기득권층 수호세력을 자신의 수호세력으로 착각해왔다. 지역감정과 개발공약은 정치권이 선거를 무력화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번 총선의 경우 초반에는 정치권이 반성하는 듯했다. 심상치 않은 민심을 의식해 기득권 정당인 새누리당까지도 99%를 위하는 듯한 공약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어느 새 정책선거는 온데간데 없고 실언한 몇 후보의 과거사를 캐는 데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유세장에서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인기가 대단해 보이는데, 그 또한 아버지 후광 말고 내세울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유권자들 상당수는 정당과 후보의 정책과 실천의지는 따져보지 않은 채 ‘거대 정당’의 권위에 순종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누가 진정 99%를 위한 후보인지 옥석 구분을 못하고 이번에도 권위에 순종하고 만다면, 99%가 민주주의의 주인이 될 날은 도대체 언제쯤일까?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