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2030] 언론 무관심 속 ‘R’전략으로 정책 알리기

한국언론의 선거보도는 거대정당 대표주자들과 1,2등 후보의 동정,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선거를 통해서도 대중의 이해관계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소수의 목소리가 무시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이념적 좌표가 약간 좌클릭했다고 하지만, 진보언론조차 통합진보당의 대표주자들을 소개하는 선에서 관심이 끝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에 <단비뉴스>는 기성언론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작은 정당이면서도 우리사회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주장들, 특히 청년들의 소외된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단비뉴스>는 선거의 주체가 정치인과 미디어가 아니라 유권자임을 명심하겠습니다. (편집자)

총선이 바로 눈앞이라는 사실을 귀로 느낀다. 곳곳에서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울려 퍼지는 로고송 때문이다. 우리네 정치는 이미 스포츠가 된 지 오래다. 대화를 할 자리에서 유세를 하고, 토론할 자리에서 응원전을 펼친다. 뜨거운 신념도 차별성 있는 정책도 없으니 일방통행식 선거유세와 로고송에나 매달리는 것이다.

정신 사나운 로고송과 함께 등장하는 후보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외친다. 하지만 그들이 외치는 ‘우리’에는 22번째로 사망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외로운 넋도,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삼성반도체 근로자의 고통도 배제되어 있다.

‘3% 지지율’이라는 역설

▲ 6일 서울 사당동 태평백화점 앞에서 홍세화 후보가 진보신당 지지를 부탁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 박정헌

6일 저녁 7시 서울 사당동 태평백화점 앞에서 벌인 한 정당의 거리 유세도 외양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 정당은 타 정당에서 소외된 이들을 대변한다는 점이다. 백화점 정문 앞 비좁은 공간 사이로 빨간색 점퍼를 입은 스무 명 남짓한 당원들이 유세용 차량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은 후보는 ‘우리가 정치를 바꾸겠다’며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했지만 백화점 앞을 지나는 행인들은 대부분 무관심한 표정으로 유세현장을 지나쳤다. 호기심에 모여든 몇몇 사람들 사이에서 때때로 ‘애쓴다’고 외치거나 ‘시끄럽다’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진보신당 김종철(42) 동작을 후보의 길거리 콘서트 현장이었다.

19대 총선은 진보신당의 두 번째 선거다. 진보신당은 2008년 3월 민주노동당 분당 때 탈당한 노회찬•심상정•조승수 전 의원이 주축이 되어 창당했다. 같은 해 4월 9일에 있었던 18대 총선에서 정당지지율 2.96%를 기록해 아깝게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2009년 재보궐 선거에서는 조승수 후보가 민주노동당과 후보 단일화를 거쳐 울산 북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정당 득표 3.13%와 25명의 지방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10월 민주노동당과 통합하는 데 실패한 책임을 지고 노회찬•심상정 전 대표와 조승수 의원이 탈당해 다시 원외정당으로 돌아갔다. 이후 진보신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쳐 지난해 11월 홍세화 대표 체제가 출범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은 지역구 5석 이상을 차지하거나 정당명부 투표에서 유효투표 총수의 3% 이상을 얻어야 비례의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현재 소속 국회의원이 없는 원외 정당은 모두 14개다. 여론조사에서 진보신당의 지지율은 대개 1%대로 그것이 선거결과로 이어진다면 총선 이후 정당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진보신당은 지지율을 의식해 타협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대개 같은 마음인 듯하다.

길거리 콘서트 현장에서 만난 한 삼십대 진보신당 지지자(남)는 “개인적으로 진보신당이 초지일관하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지금 사회의 흐름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도 결국 변할 것이며, 진보신당도 인내하는 자세를 보이면 언젠가는 다시 원내 정당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콘서트에 참여한 한 20대 당원도 “우리 당은 진영논리나 정치공학적 셈법에 의존하지 않고 제목소리를 떳떳하게 내는 정당”이라며 “원내 진입도 소중하지만 진보신당의 신념과 가치가 거기에 매몰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정당이 목소리를 내고, 또 국민이 그 목소리를 경청해줘야 한국의 정치발전이 있는 것”이라며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는데 진보신당은 온전한 왼쪽 날개가 될 것”이라고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탈핵, 탈재벌, 탈비정규직, 탈학벌, 탈FTA, 틀린 말 있나?

▲ 홍세화 대표와 변영주 감독이 박노자 진보신당 비례대표후보의 응원 메시지를 듣고 있다. ⓒ 박정헌

진보신당은 작지만 옹골찬 정당이다. 1만7천여 당원으로 구성된 진보신당은 각 지역의 후보선출을 당원 총투표로 결정했다. 당내 계파싸움이나 내부 알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규모가 작지만 대다수 당원들은 진보신당의 열성적 지지자들이다.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나온 김순자 후보가 선거 기탁금 1,500만원을 내지 못하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청소노동자들이 후원금을 모아 보내온 에피소드도 있다. 어려운 사정에도 당은 이 돈을 즉시 되돌려줬다. 이처럼 당과 지지자들 간의 끈끈한 유대는 진보신당의 가장 큰 장점이다.

진보신당이 이번 총선에서 내건 탈핵, 탈재벌, 탈비정규직, 탈학벌, 탈 FTA의 ‘5탈정책’은 이런 수평적 당내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홍세화 대표는 “많은 정당들이 재벌개혁을 외치지만 우리는 꼭 집어 삼성이 문제라고 말한다”며 “기업에서 노동자들은 가족의 개념으로 봐야 하며 그들이 경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노동자 경영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홍 대표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사유하는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며 “강요된 굴종 속에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고 경제동물로 축소된 젊은 층에게는 자기형성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진보신당 공약의 의의를 강조했다. 홍 대표는 순간적 욕망에 빠져 열정과 의미를 잃어버린 삶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는 소유의 시대에서 관계의 시대로 넘어가 시민들이 성숙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반복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합’이라는 마르크스의 경구를 말했다. 진보신당 특유의 단합정신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변영주 감독 등이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이유

▲ 태평백화점 앞에서 김종철 후보와 변영주 감독이 길거리 콘서트를 하고 있다. ⓒ 박정헌
하지만 상대적으로 취약한 진보신당의 낮은 지지율은 여전히 고민거리다. 진보신당도 대중을 끌어안기위한 당 차원의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하나는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정책적 차원에서 노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책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하거나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실천적 차원에서 노력하는 것이다. 진보신당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정치신문 ‘R’도 그중 하나다. 올 3월 3일 창간된 ‘R’은 ‘기록(record)’ ‘현실(reality)’ ‘급진적(radical)’ ‘변혁(revolution)’ 등을 뜻한다.

권태훈 기획실장은 “R은 언론이 현실적 영향력만을 고려해 각 당을 취재하는 현실에서 내부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 결실”이라며 “정당은 인기도가 아니라 정강이나 정책을 중심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기성언론의 무관심에 섭섭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예술•문화계 인사들의 단체지지성명도 진보신당에게는 큰 힘이다. 6일 유세현장을 방문한 <화차>의 변영주(46) 감독은 “예술가들은 겁이 많고 비겁해서 선거철이나 되어서야 한번 나선다”며 “실패해도 끝난 게 아닌 희망과 꿈꾸는 자유를 뺏기지 않을 권리는 우리 위에 군림하지 않고 함께 친구가 되어 줄 진보신당에게 있다”며 시민들에게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을 찍어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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