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삶 사는 고리원전 인근 주민들의 분노

1973년 '나랏일' 반대 못했고
보상금과 개발에 눈멀어 우리의 삶 앗아 가는 것도 몰라
2만명 넘던 읍 인구가 이젠 1만명도 안돼

만약 원전 아니었다면 어업·관광업 더 발전했을 것
30년간 국익 위해 참았지만 이젠 잘사는 것 떠나 생존해야

▲ 부산 기장군 장안읍 주민 400여명이 지난 4일 고리원자력본부 앞에서 거리행진을 하며 '고리 원전 1호기 즉각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 한국일보 이성덕기자 sdlee@hk.co.kr

"원전은 마약과 같았다. 보상금과 개발에 눈이 멀어 우리의 삶을 잃어가는 것도 몰랐다. 이젠 깨어나려 한다."

강주훈(58)씨는 11대를 이어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살고 있다. 그는 고리원전을 짓기 위해 한국수력원자력(당시 한전) 직원들이 마을을 찾은 73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군사정권 시대에 '나랏일'에 감히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굴뚝이 들어서면 지역경제가 좋아진다'며 환영했던 것도 사실이다." 2007년 고리1호기 수명 연장 때는 주민대책위원장 자격으로 협상을 벌였다. "연장을 반대하며 2년을 끌었지만 결국 대통령 선거 전 날 도장을 찍었다. 이명박씨가 정권을 잡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난해 3월 쓰나미가 마을을 삼키고 불길이 치솟은 일본 후쿠시마원전, 곧이어 터진 고리1호기 고장을 지켜보면서 모골이 송연해졌지만 그래도 참고 또 참았다. "한번의 사고로 모든 게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부들부들 떤 이들이 많았지만 주민이 시위하면 장안읍 경제가 몰락하지 않겠느냐는 우려, 또 보상이나 요구한다는 외부 시선이 두려웠다"고 강씨는 말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고 강씨는 주먹을 쥐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이제껏 참고 살아왔다. 과거처럼 회유하려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눈을 부릅떴다. 강씨는 "잘 사는 걸 떠나, 일단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가 일어섰다"며 "무조건적인 1호기 폐쇄와 함께 한수원 사장,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원자력안전위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2월 고리1호기 완전정전 사고를 한달이나 숨긴 사실이 드러난 뒤 고리원전본부가 위치한 기장군 장안읍 주민들의 불안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사고와 은폐, 앞서 터진 납품비리로 원전에 대한 신뢰는 싹 사라졌다. 주민들은 아무런 보상 조건 없이 '1호기 즉각 폐쇄'를 요구하고 나섰고, 고리원전 최인근 길천마을 주민들은 집단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김명복 길천리 이장은 "눈만 뜨면 무서운 건물이 보이는데, 누가 계속 살고 싶겠냐"며 "이번 사고와 은폐로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920여 세대 3,000여명이 살고 있는 길천리는 고리원전과 최단 700m 떨어져 있다.

길천리 주민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타지로 나가 살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88년 즈음이다. 86년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면서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고리1호기의 부품이 중고투성이다" "1호기 솥뚜껑(격납용기)이 뒤틀려있다"는 말도 돌았다. 그러다 민주화투쟁을 거치며 주민들의 불안이 한 목소리가 된 것.

하지만 집단이주 요구는 묵살당했다. 그러다 2007년 1호기 수명 연장과 함께 길이 열렸다. 발전소주변지역지원사업비 중 151억원을 이주비로 책정한 것. 그러나 원전 주변의 지가가 워낙 떨어진 상태라 보상 대상 가구 중 절반 가량은 보상금으로 마땅한 이주지를 찾지 못해 주저앉았다. 지난해 후쿠시마원전 사태를 계기로 집단이주 요구가 재점화돼 지난해 7월 한수원, 기장군과 함께 3자협의체를 만들어 이주 필요성에 대한 용역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강씨는 "원전이 들어섰던 지난 1978년, 장안읍 인구가 2만명이 넘었지만 현재는 1만명도 채 안 된다"며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해 외지로 나가고, 외지에선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안읍 월래리 토박이인 서용화(57)씨는 "78년 이전에는 월래해수욕장이 경관이 아름답고, 교통이 잘 발달돼 지금 해운대처럼 인파가 북적댔다"며 "원전으로 사라진 고리항도 한참 성황이었기 때문에 원전이 아니었다면 어업과 관광업으로 더 발전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인 강성명 기자가 한국일보에 보도한 내용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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