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노조 파업 100일 맞은 국민일보 양지선 기자

단군 신화에서 곰은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틴 끝에 인간이 됐다. 같은 기간, 파업을 한 기자는 무엇이 될까? 

“노동자가 됐습니다.” 

▲ 파업 100일을 맞이한 양지선 <국민일보> 기자

31일로 노조 파업 100일을 맞은 <국민일보> 양지선(34․국제부) 기자는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계급적 각성을 했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는 파업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관심 받는 일’의 가치를 느끼게 된 점도 기자로서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고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털어 놓았다.

지난해 12월 23일, 그와 동료 기자 112명은 펜과 취재수첩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섰다. 회사의 소유권이 지난 2006년 ‘국민문화재단’으로 넘겨졌음에도 사실상 회사를 계속 지배해 온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와 그 일가의 비리, 대형 교회와 정권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회사 측의 불공정보도 행태 등에 침묵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사장과 마찰을 빚은 노조위원장을 해고하고, 단체협약에 정해진 편집국장 신임투표를 무시하는 등 노조의 존립기반을 흔드는 횡포를 참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긴 파업에 생계 압박 커도 투쟁의지 변함 없어

석 달 이상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 대부분 가장인 노조원들은 생계의 어려움에 부닥치고 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지친 기색도 없지 않다. 생활비가 없어서 아이 유치원을 그만 두게 하고는 “졸업식에도 가면 안 되느냐”고 엉엉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가슴이 미어졌다는 선배도 있고, 생계를 책임진 아내가 출산 2주 만에 출근해야 했던 조합원도 있다고 한다. 미혼인 양 기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만, 곧 카드결제일이 다가오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고.  

처음 113명으로 시작한 파업 대열은 이런 상황에서 106명으로 다소 줄었다. 편집국에 남아 여전히 신문을 제작하는 50여 명의 비노조원 선배들과 정신적으로 거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앞으로 함께 일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커지는 것도 두렵다고 한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모두 ‘왜 파업을 시작했는지 잊으면 안 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이기지 못하고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파업이 길어져 지친 건 맞지만, 노조원들의 열의나 투쟁의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 30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국민일보 파업 100일 100인 지지선언 및 온국민응원단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 국민일보 노조

양 기자는 수십 년 철옹성을 지켜온 종교권력과의 싸움은 사실 막막한 일이라고 털어 놓았다. 현재 파업 중인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이 ‘낙하산 경영진’ 등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를 다투고 있다면 국민일보 노조의 상대는 재단의 실세인 여의도순복음교회 기득권세력이다. 다른 파업들은 선거 결과에 따라 해결의 물꼬가 트일 수 있겠지만 ‘집안 혹은 종교 권력과의 싸움’인 국민일보의 경우 전망이 불투명한 게 사실이라고. 그러나 ‘국민일보가 바로서야 한국 기독교가 바로서고, 한국 기독교가 바로서야 한국 사회가 바로 선다’고 믿기에 노조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언론자유와 공정보도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

100일이나 되는 파업을 견디게 한 힘은 무엇일까? 양 기자는 ‘사랑, 진실, 인간’이라는 사시(社是)에 걸맞은 국민일보,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공정하게 담아내는 신문에 대한 신념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바르고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도록, 정권과 종교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보도할 수 있도록 이 싸움에 힘을 실어 달라”고 당부했다. 

▲ 지난 12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국민일보 파업 대부흥회' 모습 왼쪽부터 공연기획자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시사평론가 김용민 '나꼼수' PD,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 소설가 공지영, 조상운 국민일보 노조위원장, 고재열 시사IN 기자. ⓒ 국민일보 노조

<국민일보> 노조원들은 앞으로 조용기 목사 일가의 비리를 취재해 웹진을 운영할 취재팀과 횡성한우 판매 등을 통해 재정사업을 꾸려갈 모금팀, 대외홍보를 담당하는 홍보·연대팀 등 팀별로 업무를 나눠 투쟁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한다. 파업 현장에 있는 선배로서, 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시대에 기자라는 직업이 여전히 유효한지 자문하게 됩니다. 저도 아직 탐구하는 중이지만 분명히 이 시대가 기자에게 주는 소명이 있는 것 같아요. 타사 기자들이 분연히 일어난 것도 언론자유, 공정보도, 정론직필 등 추상적이지만 꼭 지켜져야 하는 가치들이 있기 때문이죠. 이 가치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분들이라면 기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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