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2030] 청년비례대표 탈락자 김지윤씨

 

한국언론의 선거보도는 거대정당 대표주자들과 1,2등 후보의 동정,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선거를 통해서도 대중의 이해관계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소수의 목소리가 무시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이념적 좌표가 약간 좌클릭했다고 하지만, 진보언론조차 통합진보당의 대표주자들을 소개하는 선에서 관심이 끝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에 <단비뉴스>는 기성언론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작은 정당이면서도 우리사회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주장들, 특히 청년들의 소외된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단비뉴스>는 선거의 주체가 정치인과 미디어가 아니라 유권자임을 명심하겠습니다. (편집자)

‘고대녀’가 지칭한 ‘해적’의 실체

'고대녀' 김지윤(28)씨의 꿈은 PD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MBC ‘PD수첩’ 같은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꿈을 키워왔다. 2003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한 것도 언론사 취업에 유리할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첫 학기부터 교지편집부에서 일한 것도 시사PD로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던 김씨는 올해 꿈을 접고 국회에 도전했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에 지원한 것이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함께 경쟁하던 청년후보들 중에서 단연 화제가 됐다. 지난 23일 젊음의 거리 신촌에서 그를 만나 ‘청년국회의원 도전기’를 들어봤다.

▲ 김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인증샷'. 하지만 '해적'이라는 표현때문에 강용석의원으로부터 '해군모욕죄'로 고소당했다.ⓒ김지윤씨 트위터.

처음 도전한 정치는 순탄치 않았다. 김씨는 청년비례대표 경선이 한창 진행중이던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제주 해적기지 건설반대! 강정을 지킵시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인증샷’을 남겼다. 서울에 있지만 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해적’이라는 표현이 논란이 됐다. ‘고소남’ 강용석 의원은 김씨를 ‘해군모욕죄’로 고소했다.

“제가 해적이라고 말한 것은 일반 사병들을 지칭한 게 아닙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을 짓밟고, 자연유산을 파괴하고, 군사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해군 당국을 해적에 빗댄 것입니다. 그리고 강정마을에서는 이미 ‘해적’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었어요.”

해적기지 발언으로 김씨의 트위터에는 인신공격적인 메시지가 쏟아졌다.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도 ‘불필요한 발언’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김씨는 “국회의원이라면 본인이 대변하는 주민의 언어로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 직후 강정마을을 찾은 김씨에게 주민들은 “다음 번엔 사투리로 제대로 말하라”고 응원했다. 

결국 서울중앙지검이 김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김씨도 법정싸움에 대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이상희, 박주민 변호사에게 변호를 맡겼다. 아직까지는 검찰에서 소환요청이 오지 않은 상태다.

‘불편한 진실’이 만든 ‘운동권’, 그리고 하버드 졸업생

김씨가 처음부터 ‘운동권’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할 당시에는 PD가 되고 싶은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제가 자라난 마산은 집회나 시위가 활발한 곳이 아니에요. 대학 입학하기 전까지 시위에 참가하거나 시위대를 본 적도 없었어요. 학생운동은 80년대에나 하던 것으로 알았어요.”

몇몇 대학 선배들이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2003년 노무현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문제의식을 느꼈다. 대학 밖에서는 반전여론이 높아졌다. 이라크파병과 전쟁에 반대하는 집회도 열렸다. 김씨도 반전 대열에 합류했다.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2004년,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인도로 갔을 때였어요. 현지에서 이동하던 중에 아이가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더 충격적인 것은 엄마가 아이에게 구걸을 시키는 모습이었습니다.”  

‘세계사회포럼’이 열린 뭄바이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곳이지만 지상에는 구걸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널려있었다. 극심한 양극화의 현장에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모인 10만 명의 학생, 노동자, 정치인, 활동가들이었다. 김씨는 양극화라는 ‘불편한 진실’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만났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김씨는 한국에서도 ‘불편한 진실’을 목격했다. 2005년 청계천 복원사업 때문에 노점상들이 쫓겨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교지편집부 소속이었던 김씨는 취재를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철거되는 노점상들 이야기를 듣기 위해 청계천을 누볐다.

2006년, 고려대는 김씨에게 개교 이래 ‘특별한 사유’로 징계조처를 내렸다. 김씨 등이 고려대 병설 보건대 학생의 총학생회 투표권을 요구하며 보직교수들을 대학 본관에 감금했다는 것이었다. 학교는 공식적인 기록에서 김씨의 자료를 ‘말소’하는 출교처분을 내렸다. 퇴학보다 높은 수준의 징계였다. 김씨는 징계에 불복했고, 함께 출교당한 6명의 학생들과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2008년에 고려대학교와의 출교무효소송에서 승소하고 2년만에 학교로 돌아왔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지지하고 연대해주셨어요.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처럼 저 또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씨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하루 아침의 결정이 아니었다. ‘불온한’ 선배의 꼬임도 아니었다. 평범한 대학생이 목격한 우리 사회의 모순 때문이었다.

청년 문제는 청년의 활발한 정치참여로 풀어야

김씨가 소속된 통합진보당은 ‘서바이벌 오디션’ 형식의 ’위대한 진출’을 통해 청년비례대표 1명을 선출했다. 25~35살 청년이라면 누구나 후보가 되거나, 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20명의 후보자 중 프리젠테이션과 심층토론을 통해 최종 1명이 선발됐다.

김씨는 ‘위대한 진출’ 경선 과정에서 현행 선거법의 제약으로 다양한 방식의 유세활동을 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홍대나 신촌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선거법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더라고요. 후보자는 정당연설을 할 수도 없고, 띠도 두르지 못해요. 명함은 1대1로 건네야 하고요.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선거운동에 집중했어요.”

오프라인에서 눈에 띄는 유세를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흥행과는 멀어졌다. 통합진보당의 애초 목표는 청년선거인단 10만 명을 모집하는 것이었으나 최종 인원은 4만8,386에 그쳤다. 민주통합당도 10만 명을 목표로 했으나, 한참 못 미치는 1만7088명으로 마감됐다. 기존 정당들이 청년들을 위한 ‘판’을 벌였으나 정작 청년들이 찾아오지 못한 꼴이다.

▲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김씨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목격하며 ‘운동권’이 됐다. ⓒ류대현

“청년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된 원인은 일자리와 교육 때문입니다. 높은 등록금 때문에 대출받은 학생들은, 당장 빚을 갚기 위해 원하는 일자리보다 단기적인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어요.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질 좋은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 청년들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씨는 민주통합당의 ‘청년고용할당제’는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데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청년실업의 핵심은 일자리를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후보의 청년실업을 ‘통일경제’로 해결하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도 “분단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므로 지금 실행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의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김씨는 지난해 고려대 교육방송국(KUBS)이 마련한 ‘대학 현안 토론회’에서 새누리당 비대위원 이준석(27)씨와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새누리당은 반값등록금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하지 않고 있어요. 사립대학 적립금 문제는 반값등록금의 핵심입니다. 한국 사립대학 적립금이 10조원을 돌파했는데, 돈을 쌓아만 놓고 투자에는 인색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준석씨는 지난번 ‘맞짱토론’에서 ‘하버드의 적립금은 30조원’이라며 등록금과 적립금은 별개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또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부자증세가 필요한데 과연 새누리당이 이것을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김씨는 국회 밖에서 99% 청년들을 위한 활동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정마을 주민들과도 지속적으로 연대할 계획이다. 다시 시사교양PD에 도전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시사교양PD들이 공정방송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답했다. 꿈을 포기하고 다른 꿈에 도전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목표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청년들이 나서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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