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린 음식 다큐멘터리 KBS 1TV ‘한국인의 밥상’
[지난주 TV를 보니: 3.19~25]

나이 든 리포터, 최불암(72)이 눈물을 보인다. 전남 완도에 딸린 섬 덕우도에서 위현례(87) 할머니의 얘기를 듣던 중이었다. 막내가 세 살일 때 남편이 집을 나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며 위씨가 울먹이자, 최불암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함께 김을 말리며 이렇게 속 깊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젊은 리포터라면 기대하기 힘들었을 진솔한 사연들이 술술 이어진다. 시청자들은 어느 새 완도의 김과 미역, 그것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섬마을 사람들 얘기에 푹 빠져들고 만다.

▲ 위현례 할머니의 얘기에 눈물을 훔치는 최불암. ⓒ KBS1화면 갈무리

한국방송(KBS) 1TV의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은 음식 프로그램이지만 먹는 얘기에 머물지 않는다. 음식을 낳은 향토의 특색과 주민들의 삶, 문화와 역사 속으로 성큼 들어간다. '음식은 지리적 환경에 사람들의 숨결과 지혜가 어우러져 문화로 응축된 것’이라고 보는 제작진의 시선이 느껴진다. 브라운관에 넘치는 얄팍한 음식 프로그램들에 비해 몇 단계 진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공 덕에 정통 다큐멘터리에 가까우면서도 꾸준히 10%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고, 어느새 60회를 넘겨 장수프로그램 대열에 진입하고 있다. 지난 22일 방송된 62회 ‘봄 바다의 불로초-완도 김과 미역’ 편은 12.7%(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라지는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시청자의 마음 울려

오늘날 도시 가정의 식탁에선 ‘토종 먹거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자유무역협정(FTA)의 거센 물결이 상징하듯, 지구촌 곳곳의 먹거리들이 우리 밥상에 밀려들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렇게 위기에 처한 우리의 먹거리, 우리 고유의 식재료와 요리법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을 내어주면 문화와 역사를 내어준다고 했던가? <한국인의 밥상>은 ‘원래 우리가 먹었던’ 음식 이야기를 통해 팔도강산 구석구석의 삶을 오밀조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봄기운으로 가득한 완도를 찾아간 날은 그 곳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배어있는 김과 미역을 다각도로 비추었다. 완도에서는 김으로 물회나 국을 만들어 먹는다. 굳이 김을 말리지 않고, 신선한 상태에서 양념만 곁들여 반찬으로 삼는다. 입이 궁금할 때는 김으로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바다 사람들의 이런 삶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 완도 사람들이 즐겨먹는 '김물회'(위)와 '물김국'(아래) . ⓒ KBS1화면 갈무리

완도에서 김이 생산된 것은 수백 년 전부터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에도 나온다고. 김을 먹는 문화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데, 두 나라의 쌀이 김에 싸 먹기 좋은 찰진 품종인 것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김과 쌀은 영양학적으로도 잘 어울린다고 한다. <한국인의 밥상>은 이처럼 우리 음식을 둘러싼 역사와 전통, 생활과 문화를 조곤조곤 전해준다. 

국민 배우가 끌어가는 드라마 같은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은 배우 최불암의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는 그의 발길을 따라 산등성이에 오르고 고즈넉이 동네를 내려다본다. 문화방송(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양촌리 어른이었던 그가 시골 동네 사람들과 일터에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이게 드라마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이 탓에 장거리 촬영이 불편할 만도 하건만 그는 진지한 자세로 프로그램을 끌어간다.

완도 곳곳을 담아낸 화면도 구수한 그의 내레이션 덕에 더욱 풍성해졌다. 차분하지만 저력 있는 그의 음성은 이미 KBS 1TV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에서 검증된 일이 있다. 발랄한 리포터들이 전달하는 지역 소식과는 격이 다르다. 시청자들은 연륜이 담긴 그의 목소리에 이끌려, 일상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찬찬히 살피면서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 완도 앞 바다. ⓒ KBS1화면 갈무리

▲ 배우 최불암의 내레이션은 프로그램의 품격을 높인다. ⓒ KBS1화면 갈무리

마치 한 상 잘 차려진 시골 한정식처럼 정갈하면서도 푸짐한 <한국인의 밥상>. 그러나 주변에서 보기 어렵게 된 우리의 먹거리들은 노배우의 뒷모습처럼 쓸쓸함과 안타까움도 안겨준다. 이 프로그램이 소중한 우리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고, 그 관심이 일상의 밥상까지 변화시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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