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디다큐페스티벌 ‘다큐로 이야기하기’에서 솔직한 대화

지난 23일 저녁 8시 서울시 서교동 홍대 거리의 미디어극장 아이공(I-GONG)에서 인디다큐페스티벌(3월22~28일)의 부대행사 ‘다큐로 이야기하기’가 열렸다. 40석 규모의 아담한 극장에 영화감독 6명과 30여 명의 관객들이 주최 측이 제공한 맥주 한 캔씩을 손에 들고 마주 앉았다. 무대와 객석 사이가 1미터도 되지 않아 사랑방에 둘러앉은 듯 편안한 분위기였다.

 

▲ 미디어극장 아이공(I-GONG), 감독과 관객들이 영상을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 허정윤

<술자리 다큐>를 제작한 공미연 감독이 사회자로서 “다큐 제작 전반에 대해 좀 더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운을 떼자 영화를 공부하는 고등학생부터 새내기 영화감독, 30대의 일반 관객까지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우리 곁의 무엇이든 영화가 될 수 있다

대사나 행동이 정해져 있는 극영화와 달리 다큐는 일상적 삶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때 문제는 없을까? 서울역 주변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를 담은 작품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의 남경순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경계해서 자연스런 모습을 담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먼저 찍는 대상에게 감독으로서 신뢰를 주고, 경계를 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북 구미의 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아무도 꾸지 않은 꿈>의 홍효은 감독도 “카메라가 가지는 폭력성이 있다”며 동조했다. 그래서 타인의 삶에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 밀며 접근해서는 안 되고, 다큐를 찍기 전 대상과 친밀해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큐영화의 매력은 ‘어떤 영상도 영화가 될 수 있다’고 할 만큼 다양한 소재와 참신한 발상을 담는다는 데 있다. 감독들은 다큐의 소재를 어떻게 찾을까? 한진중공업과 희망버스 이야기를 다룬 영화 <버스를 타라>의 김정근 감독은 “자신이 관심을 갖는 것, ‘꽂혀 있는’ 주제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때 노동투쟁을 하다 목을 매 숨진 노동자를 본 뒤, 이런 현실을 외부에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의 일상을 담은 <우쿨렐레 사랑 모임>의 노효두 감독은 “구할 수 있는 다큐를 최대한 많이 찾아서 보면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덧붙였다.  

 

▲ 왼쪽부터 공미연, 김정근, 김민지, 홍효은, 남경순, 노효두 감독. ⓒ 허정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 이상의 시간을 쏟아야 하는 다큐 제작 과정에서 감독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대다수의 감독들은 촬영, 편집 등의 영화기법을 강의하거나 이런저런 임시직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한다고 한다. 학원 강의를 촬영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홍효은 감독은 “살려고 돈을 벌다 보면 영화를 할 수 없고, 영화를 하려니 먹고 살 수 없다”며 제작과 생업을 연계하기 어려운 형편을 호소했다. 인디다큐페스티벌 오종훈 집행위원장은 “지금까지 이 영화제에 100편 정도 출품이 됐다고 할 때, 2편 이상 낸 감독이 10명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작품을 만든 후 감독들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다큐 제작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감독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국내 몽골 이주민의 삶을 담은 <학교 가는 길>의 김민지 감독은 “다큐영화 시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커졌지만 여전히 1인 제작 시스템이 지배적”이라며 “좋은 프로듀서와 투자자에게 지원을 받아 ‘다큐영화는 가난하다’는 이미지를 벗고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홍효은 감독은 “지나치게 상업화 구조로 갈 경우 분명 못 만들어질 영화가 많아 위험할 것”이라며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다큐영화가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근 감독도 “기존의 다큐영화 제작 방식과 주제의 다양성은 유지해야 한다”며 “최근 논의되고 있는 예술인복지법 제정 등 독립 예술가들의 복지수준 자체를 높일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야기는 저녁 10시가 넘어서까지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이어졌다. 관객으로 참여한 청소년영화제 조서정(26ㆍ여) 프로그래머는 “많은 영화제에 다녀봤지만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감독들과 대화해본 것은 처음이라 매우 신선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서울공연예술고에서 영상을 공부한다는 김진명(19)군은 “다큐의 소재를 찾고 대상을 선정하는 단계에서 생각할 점 등 제작 전반에 대해 감독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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