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현장] “제주에 흔한 바위일 뿐” “인류의 유산 지켜야” 대립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안의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는 작업이 8일에도 계속된 가운데 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시민단체와 반대하는 주민, 활동가들이 각각 집회를 열고 대립했다. 

이날 오후 1시쯤부터 서귀포시 강정천 옆 체육공원에서는 보수운동가인 서경석 목사가 주도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촉구 전국대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는 애국시민단체총연합회, 한국시민단체연합회, 해병전우회 등 외지에서 온 400여 명과 제주 지역에서 참여한 300여 명 등 총 700여 명이 모여 조속한 해군기지 건설을 촉구했다.

 

▲ ‘제주 해군기지 건설 촉구 전국대회’ 참가자들이 단상에 올라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박경현
▲ ‘제주 해군기지 건설 촉구 전국대회’에 참여한 어버이연합회 권신우 홍보국장이 해군기지 건설을 촉구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 박경현

어버이연합회의 권신우 홍보국장은 “나라가 있어야 자유도 있고 평화도 있는 것”이라며 전날 강정마을을 방문해 공사 저지 등을 약속한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를 가리켜 “야당 대표라는 사람이 나라고, 국민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윤태정 제주해군기지건설 강정추진위원장(전 강정마을회장)은 “반대세력이 마을에 들어와 해군기지를 이념논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우리 주민들은 제주해군기지가 앞으로 국가안보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저들의 방해에 굴하지 않고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새누리당 안형환 의원(서울 금천)은 “진보세력이 ‘구럼비의 눈물’ 등 감성적인 말을 참 잘 지어낸다”며 “제주의 산을 깎아 골프장 지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들고 일어나는 이유가 뭐냐"고 비난했다. 서경석 목사는 “구럼비 바위는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수만 개의 바위 중 하나일 뿐, 성산 일출봉이나 용두암 같은 대표 관광자원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 단상에 올라 발언하는 서경석 목사. ⓒ 박경현
▲ ‘제주 해군기지 건설 촉구 전국대회’가 끝난 후 참여자들이 강정천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지현

행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과 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강정천을 향해 이동하면서 “해군기지 조속히 건설하라”, “대한민국 안보 망가뜨리는 반대세력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반대 진영과의 충돌을 우려해 강정천 다리를 봉쇄한 경찰에 가로막히면서 약 15분 만에 해산했다.

강정천 양쪽에서 찬반 진영 가두 행진...인권위 조사관도 출동

경찰이 봉쇄한 강정천 다리 맞은편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과 활동가 등 100여 명이 모여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평화여성문화제를 열었다. 행사를 마친 후 이들은 영국에서 온 반핵•환경운동가 앤지 젤터(61)씨를 선두로 구럼비 바위를 향해 행진하면서 “사랑해요 강정마을, 해군기지 결사반대”, “분노하라” 등을 외쳤다. 이 거리행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파견된 조사관 등 ‘인권지킴이’들도 함께했다.

 

▲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과 활동가들이 구럼비 바위를 향해 거리행진을 벌였다. 오른쪽은 영국인 평화운동가 앤지 젤터(61) 씨. ⓒ 박경현
▲ 프랑스인 평화운동가 벤저민 모네(33) 씨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 거리행진을 향해 '분노하라' 구호를 외치며 독려하고 있다. ⓒ 박경현

참가자 중 일부는 경찰의 통제로 구럼비 해안 진입이 불가능하자 배를 타고 접근하기 위해 포구로 이동했지만 경찰이 역시 봉쇄하면서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일부 참여자들은 인권위 관계자들에게 “이런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온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 정상영 조사관은 “(시위 과정에서)인권을 침해당할 소지가 있는지 확인 차 온 것이지, 우리가 국가 기관의 업무 수행에 대해서 관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해군과 기지건설 시공사들의 구럼비 해안 폭파가 시작된 7일 제주 강정천 입구에서는 하루 종일 구럼비 바위 일대로 진입하려는 주민, 활동가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 간의 충돌이 잇따랐다. 경찰 50여 명이 강정교 한쪽 편에서 겹겹의 인간 장벽을 만들어 통행을 가로막아 올레길 관광객들까지 불편을 겪었다.

 

▲ 구럼비 인근 포구에서는 구럼비를 향해 배를 띄우려는 해군기지 반대 시위대와 이를 막는 경찰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 박경현

경찰은 육상뿐 아니라 공사 현장 주변 해역에도 철망을 촘촘히 둘러치고 주민과 활동가들의 진입을 원천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인 평화활동가 벤자민 모네(33) 씨와 강정마을신문의 카메라기자가 탄 카약(소형배)을 해경 보트 여러 척이 포위하고 들이받아 전복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모네씨 일행은 곧바로 구조된 뒤 경찰에 연행됐다 풀려났다. 모네씨는 “너무나 아름다운 인류의 유산인 구럼비 바위를 지키기 위해 당연한 행동이었다”며 “강정마을을 위해 앞으로도 해군기지 건설 저지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를 돌며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모네씨는 지난해 6월부터 제주에 머물며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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