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학문구조개편, 중징계 학생회 개학 맞아 새 불씨 예고

동국대 윤리문화학과는 올해 마지막 신입생을 받는다. 신입생을 기다리는 조승연(27•윤리문화) 부총학생회장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조씨는 며칠 전 학교에 찾아 온 신입생들을 만났다.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니 신입생들에게 학과가 사라질 위기라고 털어놨다. 사라진 학과의 선배들은 신입생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동국대는 지난해 12월 9일 학문구조개편안(학과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윤리문화학과는 철학과에 통폐합될 예정이고,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 물리학과와 반도체과학과는 각각 통합된다. 경영대학 경영학부(경영학 전공, 회계학 전공, 경영정보학 전공)는 경영대학 경영학부 경영학전공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정치외교학과와 통합하려던 북한학과는 김정일 사망 등 북한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일단 살아남았다.

 

▲ 동국대가 12월 학문구조개편(학과구조조정)을 결정한 후, 학내에는 학교측과 학생측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총장실 점거 사태 이후 동국대는 학생 1명을 퇴학시키는 등 시위에 가담한 학생 29명에게 징계를 내렸다. ⓒ 양호근 

유권준 동국대 홍보팀 언론담당자는 “윤리문화학과의 경우 철학과에 흡수되는 게 맞다”며 “윤리문화학과는 박정희 유신정권 때 국민윤리학과로 개설된 학과인데 윤리교사도 뽑지 않는 현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없애게 됐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학문구조개편을 하는 데 학생들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며 “그래도 각 학과 교수님들을 통해 충분히 의견수렴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학문구조개편안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총학생회는 학교측이 학문구조개편에 대해 결정 후 통보하는 식으로 일방적인 설명만 이뤄졌다고 분개했다. 교수와 동문들도 반대하는 상황에서 학교가 독단적으로 학과구조조정을 했다는 얘기다.

 

▲ 왼쪽부터 동국대 김정도 연대사업국장, 조승연 부총학생회장, 최장훈 총학생회장. ⓒ 양호근 

최장훈(27•정치외교) 총학생회장은 “학교측은 어떤 성과나 근거 없이 유사학문을 합치고 취업률이나 재학생 충원율 등을 따져서 학문구조를 개편했다”며 “설명회가 몇 차례 열렸지만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고, 통폐합되는 학과는 지원이 끊길 게 뻔한데 교과과정에 대한 대책도 없다”고 말했다.

조승연 부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은 비싼 학비를 내고 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측은 학생 문제를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것 같다”며 “최근 사회적으로 노동 문제나 ‘왕따’ 문제가 심각해 윤리문화가 중요해지고 있는데 오히려 학과를 없애는 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총학생회는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학문구조개편안을 내놓은 데 반발해 지난해 12월 5일부터 13일까지 8일간 총장실을 점거했다. 동국대는 총장실 점거농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2월 31일 최장훈 총학생회장과 조승연 부총학생회장, 김정도(23•불교) 연대사업국장에게 퇴학처분을 내렸다. 다른 학생들은 가담 정도에 따라 무기정학 2명, 유기정학 5명, 사회봉사 19명 등 징계처분을 결정했다.

징계가 내려진 뒤 비판 여론이 일자 동국대는 지난달 8일 상벌위원회에서 재심의를 해 퇴학처분을 받았던 최장훈 총학생회장과 조승연 부총학생회장은 무기정학으로 경감하고, 무기정학을 받았던 2명은 유기정학, 유기정학을 받았던 5명은 유기정학 기간을 줄이는 등 징계 수위를 낮췄다.

하지만 김정도 연대사업국장에 대해서는 퇴학처분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징계재심 과정에서 재심 소명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동국대가 학생을 퇴학시킨 경우는 1988년과 2005년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 지난해 12월 동국대 총장실 점거 사태 후, 동국대측은 상벌위를 열고 김정도 동국대 연대사업국장을 퇴학시키기로 결정했다. 동국대 총학생회는 표적징계라고 반발하고 있다. ⓒ 양호근 

동국대생 1명 퇴학, 표적징계인가?

동국대 상벌위는 2심 절차로 끝나기 때문에 김씨에 대한 퇴학처분은 번복될 수 없다는 게 학교측 방침이다. 동국대측은 김씨가 총장실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기물을 파손하고 폭력행위와 업무방해를 했고, 소명신청 과정에서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퇴학처분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표적징계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재심의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게 학교측 얘기지만 저는 서면으로 자세히 적어 유감과 반성을 표명했다”며 “지난 2010년 10월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때 농성에 적극 가담하고, 학교측이 학생휴게실을 커피숍으로 만들려는 것을 막은 적이 있는데 학교측은 내가 눈엣가시여서 나를 내보낼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학문구조개편 문제는 쉽사리 끝나지 않을 기세다. 최장훈 총학생회장은 “개강 후 입학식과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 때 학생들과 직접 만나 총회와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기정학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총학생회에 남아 끝까지 싸울 각오다. 하지만 동국대 측은 총학생회가 학문구조개편 전면 반대를 내세운다면 협상을 할 수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중앙대가 학과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은 것처럼 학문구조개편은 동국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교육 전체의 문제”라며 “교육을 상품화하고 대학을 기업화하는 흐름을 함께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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