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제119] 깐깐한 안전관리에 선수금으로 생산자도 배려

상품의 가격과 품질뿐 아니라 환경과 윤리를 생각하는 ‘착한 소비’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즉 ‘생협’이 뜨고 있다. 생협은 도시의 소비자와 가까운 지역의 생산자 사이 직거래를 통해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먹거리를 공급하는 유통조직으로, 출자금을 낸 조합원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그런데 일반 소비자가 막상 생협을 활용하려면 조합에 가입해야 하고, 배송일 며칠 전에 미리 주문해야 하고, 배달 지역에도 제한이 있는 등 은근히 까다롭다. 여러 종류의 생협 중 각자에게 적합한 곳은 어디고, 이용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단비뉴스>와 함께 알아보자.

▲ 아이쿱 생협 매장 내부. ⓒ 구슬이

어떤 생협에서 뭘 파나 

‘우리 땅에서 나는 무공해 농수산물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자’는 취지로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생협은 현재 50여 곳에 이른다. 그 중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인터넷을 통한 배달주문도 받는 대표적 생협은 ‘한살림’, ‘아이쿱(iCOOP)자연드림’, ‘두레생명연합회’ 등 세 곳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한살림은 지난 86년 강원도 원주지역 농민들이 힘을 합쳐 서울에 직판매장을 연 후 꾸준히 성장, 현재 전국에 13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조합원 수는 29만7000여명이다. 상품의 다양성으로 승부하는 아이쿱은 97년 경인지역 생협으로 출발해 현재 전국에 110개 매장이 있고 조합원은 15만6000여명이다. 지난 96년 6개 지역 생협이 합쳐 탄생한 두레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연계가 특히 탄탄한 곳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생협들이 있다. 생협에서는 유기농 채소와 과일, 육류 등 농수산물을 기본적으로 팔지만 만두, 과자 등 가공식품과 황토침구류, 칫솔 등 다양한 공산품도 판매하고 있다.

조합원이 되는 절차는

생협에서는 기본적으로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물품을 판매하며 매장에 따라 예외적으로 일반 소비자에게도 판매를 하는 경우 할증된 가격을 적용한다. 조합원이 되려면 가입비, 출자금, 조합비, 자동증자금 등 여러 이름의 비용을 내야 한다. 먼저 생협에 따라 조합원으로 최초 등록할 때 가입비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한 살림이 3000원을 받는다. 이 돈은 조합을 탈퇴할 때 돌려주지 않는다. 두레나 아이쿱은 가입비가 없다. 출자금은 주식처럼 생협의 지분을 사는 것인데, 한살림 등 3대 생협이 대략 1인당 2만원에서 3만원 정도를 받아 조직운영과 투자 등에 쓴다. 이 돈은 조합원이 탈퇴할 때 전액 돌려준다. 조합비는 출자금과 달리 매달 빠져나가 소멸되는 돈인데, 아이쿱에만 있다. 아이쿱에서 매달 조합비를 내는 회원은 출자금만 낸 조합원에 비해 물품을 약 2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일주일에 6만원 이상 장을 보는 경우 조합비를 내고 할인가를 적용받는 게 경제적이지만 장보기 규모가 작은 독신이나 핵가족은 비경제적일 수 있다. 자동증자금은 물품을 살 때마다, 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구매 금액에 자동으로 포함되는데, 아이쿱에서는 구매 금액이 5000원 이상 2만원 미만일 경우 300원, 2만원 이상 4만원 미만은 500원, 4만원 이상은 700원을 자동증자금 명목으로 부과한다. 두레는 얼마 어치를 사든 1주일에 한 번씩 매장별로 500원에서 1000원 정도를 자동 부과한다. 이 돈은 차근차근 적립해 나중에 조합원이 탈퇴할 경우 현금으로 돌려준다.

▲ 생협 별 가입비 등 안내표. ⓒ 구슬이

인터넷으로 생협을 이용하려면

▲ 두레 생협의 '우리밀 생라면'과 일반 라면 성분 표기. 두레 생협 라면은 재료 대부분이 국산인데 반해 일반 라면은 수입된 소맥분 외에는 원산지를 찾아볼 수 없고 향미증진제나 산도 조절제 같은 식품첨가물이 들어있다. ⓒ 구슬이

집 가까운 곳에 생협 매장이 없는 경우 온라인 장터를 이용할 수 있다. 온라인 장터는 개별 매장보다 물품이 많고 집까지 배송해 준다는 편리함이 있다. 단, 온라인 장터도 일단 지역 매장에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물건을 살 수 있다. 아이쿱, 한살림, 두레 생협은 각각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반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는 것처럼 주문이 가능하다. 인터넷으로 생협 물품을 사려면 배송을 원하는 날짜보다 최소 삼일 전에 주문을 해야 한다. 수요만큼만 산지에서 수확하고 소비자에게 바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협의 온라인 주문은 조합원으로 가입한 지역매장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내에서만 배달을 해주기 때문에 배송 가능 여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친환경 유기농, 믿어도 될까?

   
▲ 3군데 생협은 매달 방사능 농도를 자체 측정해 결과를 공개한다. 조합원이 아니어도 생협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 한살림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각 생협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공급중단’, ‘사과’, ‘리콜’ 등 으시시한 단어들이 종종 등장한다.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나 사고도 그냥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아이쿱은 자체 인증센터에서 일부 양파와 유자 제품의 잔류농약을 발견한 뒤 해당 농장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전량 환불 조치했다. 대부분의 생협들이 이렇게 자체 안전위생 기준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지역 농장과 계약을 맺으며 정기검사와 수시검사를 통해 기준 준수 여부를 점검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홈페이지를 통해 조합원에게 공개한다. 지난해 3월 일본에서 원전 방사능 유출사태가 벌어진 뒤 아이쿱은 자체 방사능 검사를 위해 과일과 채소류 공급을 약 2주간 중단했다. 이후 1년이 지난 지금도 각 생협은 꾸준히 방사능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조합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생필품과 공산품까지, 취급 품목도 점차 다양화 

 

“여기서 필요한 모든 걸 살 수 있으니까 굳이 대형마트에 가지 않아요.”

지난 19일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의 아이쿱 매장을 찾은 이지연(34·주부)씨는 삼년 전 아이가 유아식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생협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생협에서 야채와 고기 등 식품을  사고, 세제나 화장품을 살 때는 대형마트에 가는 등 이중으로 장을 봤다. 하지만 생협에서 파는 물건이 의외로 다양해졌다는 것을 알고는 이제 대부분의 생필품을 생협에서 구입한다고. 실제로 아이쿱과 한살림 등 전국적 규모의 생협 매장은 농수축산물 외에 과자, 아이스크림, 만두 같은 가공식품류와 샴푸, 후라이팬, 양말 등 다채로운 공산품까지 고루 구색을 갖추고 있다. 

▲ 생협에는 농산물 외에도 햄, 만두 등 육가공품과 치약, 프라이팬 같은 공산품 등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다. ⓒ 구슬이

생협에서 가공식품과 공산품 등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일부 조합원들은 ‘농산물 지키기만도 버거운데 사업 확장하려다 농산물 관리까지 부실해지는 것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아이쿱 등 생협들은 ‘대기업에 맞서 싸우기 위해’ 가공식품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또 우리쌀과 우리밀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적의식도 있었다고 한다. 3대 생협은 현재 우리밀과 우리쌀로 만든 빵을 파는데 가격은 대기업계열 베이커리보다 약간 비싼 수준이다.  

생협에서 판매하는 빵은 쌀가루와 밀가루를 포함해 버터, 계란, 우유 등 대부분의 재료를 국산으로 쓰지만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경우 수입산을 많이 쓰고  합성첨가물도 활용한다. 파리바게뜨는 우리밀 식빵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최근 판매를 중단했다.

▲ 파리바게트와 생협의 식빵 가격 비교. ⓒ 구슬이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얼마만큼의 영리를 취하기에 우리밀 빵을 못 만드는지, 왜 떳떳하게 성분을 공개하지 못하는지 궁금하다 이거죠. 그래서 우리가 먼저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낮은 가격에 충분히 우리 농산물로만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요.”

아이쿱 김포 풍무지점 한 관리자의 말이다. 실제로 파리바게뜨와 뚜레주르는 <단비뉴스>가 우리밀과 다른 원재료의 함량, 수입재료 여부 등에 대해 묻자 판매 중지를 이유로 자세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생협들은 재료 구성 등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있다.

‘신용카드 자제’와 ‘마을 모임’ 등 생협 문화 형성

생협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다. 수수료를 아껴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자는 취지다. 그래서 생협의 온라인 장보기에서도 자동이체(CMS)결제가 이뤄지는 곳이 많다. 온라인 장터는 소통의 공간 역할도 한다. 생산지의 다양한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사용후기를 남기고 댓글을 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의견이 제품 생산과 유통에 반영된다.

온라인 장터뿐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다양하게 마련된다. 한살림은 생협의 가치와 착한 소비 등에 대한 기본 교육을 이수해야 조합원으로 받아준다. 이 기본교육은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참석이 힘든 예비 조합원들은 자료와 질문지를 받아가 개별적으로 공부한 후 답안을 작성해야 가입할 수 있다.

아이쿱은 ‘마을 모임’이 활발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조합원들이 한달에 한 번 모여 생협 물품을 체험하고 품평을 하는데 이때 수집된 의견은 본부 회의를 거쳐 생산과 유통과정 전반에 걸쳐 적극 반영된다. 모든 일반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고 생협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지역 매장 안내를 받아 참석할 수 있다.

환경보호 의식이 강한 생협에서는 비닐봉지 사용을 억제하고 장바구니 이용을 권장한다. 물건은 보통 박스나 종이봉투에 담아주고, 장바구니를 유상 대여해 주기도 한다.

생산자간 정보교류와 교육에도 심혈

생협의 생산자들도 다양한 모임을 통해 유기농법에 대한 교육이나 토론회를 열고 병충해 등에 대한 정보도 교환한다. 정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생산현장을 개방해 신뢰 유지에도 힘쓴다. 생협과 거래하는 생산자는 단순 판매자가 아니라 친환경 제품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이와 관련, 아이쿱은 ‘수매 선수금제도’를 운용한다. 생산농가가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고 관리할 수 있도록 전체 계약 출하금액의 10%를 미리 지급하는 것이다. 선수금 덕에 생산농가는 초기 자금 걱정 없이 일 년 농사를 짓고, 조합원은 안정적인 가격에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지난해 고추값 폭등이 있었을 때 아이쿱 조합원들은 대형마트에서 1근 당 3만5000여원 하는 고춧가루를 계약농가에서 2만7000원에 공급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생협은 1979년 결성된 신라소비자협동조합이라고 하니, 생협의 역사는 기껏해야 30년 정도. 아직 전국 구석구석을 채우기엔 갈 길이 멀지만 ‘내 몸도 지키고 지구도 지키는’ 착한 소비 열풍에 힘입어 생협을 찾는 소비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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