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 <1부> 근로 빈곤의 현장
출장 청소부 21일의 체험<하>

3만원 스테이크, 5천원 커피 메뉴에 울컥

"아유, 스테이크 하나에 3만 원이야. 나 같은 사람은 못 와."

손 씨는 청소하다가 메뉴 판을 보고 기겁한다. 그 식당에서는 보통 수준인 스테이크가 3만 원을 넘는다. "여기 오냐? 먹어봤어?" 최 과장이 내게 물었다. 서울 강남의 한 커피전문점을 청소 할 때다.

"미쳤어. 커피가 오천 원이 넘고. 세상이......."


▲ 바닥 청소를 하기 전 테이블 위에 의자를 올린 모습.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3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사 먹는 대신 밤마다 3만5천 원짜리 출장청소를 한다. ⓒ황상호

나의 일당은 3만5천오백 원이다. 쉬는 날은 빠지니 한 달 수입이 채 100만 원이 안 된다. 일인당 3만 원짜리 스테이크, 5천 원짜리 커피는 가당찮은 사치다. 만일 내가 혼자 살면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처지라면, 이 돈으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 따져봤다. 방값이 30만원이라면 생활비로 70만 원 남는다. 이틀에 한 번만 아침을 챙겨먹는다고 했을 때 한 달 총 75끼를 먹는다. 한 끼 5000원을 기준으로 밥값만 37만5천원이 든다. 해장국에 소주 한 병을 곁들이는 게 부담스럽다.

매일 8~10시간씩 야간 일을 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은 아무리 따져도 너무 적다. 일반 기업이면 야간작업에 50%의 추가 수당을 줄 것이다. 이 회사에서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은 근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보통 저녁 9시에 출근해 한 시간 대기하고 10시에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일을 시작하는 11시가 되기 전까지 2시간을 그냥 보낸다. 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멀리 갈 때는 편도만 199km를 달려가지만 특별 수당 같은 것은 없다. 일이 일찍 끝나서 새벽 3~4시쯤 돌아와도 집까지 차를 태워주거나 택시비 같은 것을 챙겨주는 법이 없다. 대책 없이 지하철역에 앉아 있다가 첫 차를 타고 퇴근해야 한다.
 
지방에 일이 연이어 있으면 현지에서 숙식을 할 때도 있다. 청소하는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자고 먹을까? 충청도 출장 첫 날, 일을 마치고 '24시간 고기집'에 갔다. 모두 6명이었다. 새벽까지 일했으니 배가 무척 고팠다.

"3300원 짜리 고기가 없네, 그게 맛있는데."

최 과장이 메뉴판을 보고 아쉬워하더니 삼겹살 5인분을 시켰다. "간단하게 먹고 자야하니까요, 그렇죠?"
억지 동의를 구했다. 고기가 불판에 오르기도 전에 빈속에 소주를 들이켰다. 밥을 같이 시킨다. "된장찌개는 서비스죠?" 최 과장이 아주머니에게 몇 차례나 묻는다. 남자 6명이서 삼겹살 5인분에 소주 7병을 마셨다.

숙소로 모텔 방 2개를 잡았다. 3명 씩 나뉘어 자기로 했다. 계산대에서 주인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5천 원 더 주셔야 돼요. 다섯 명이라고 하셨잖아요." 최 과장이 예약했던 이 과장을 쳐다본다. "이 과장, 6명이라고 예약 안 했어?" 이 과장은 엘리베이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 "에이, 한 명 가지고 되게 그러네. 난 옥상 가서 자면 되지, 아니면 화장실에서 자면 될 거 아냐!" 술이 들어간 김 씨가 소리를 높였다. 6만 원을 줘야 한다는 주인을 겨우 설득해 5만5천 원을 내고 6명이 잠을 잤다.
 

▲ 파이프를 잡고 벽을 닦는다.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을 번갈아가며 닦아야 반짝거린다. ⓒ김상윤

‘일하며 공부’는 희망사항일 뿐, 시간도 돈도 없다 
 
처음에 나는 밤에 일하고 낮에는 공부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오전 5시 40분, 지하철 첫 차를 타고 퇴근한다. 빠르면 7시 집에 도착한다. 작업이 길어지면 아침 9시 무렵에야 돌아오는 날도 있다. 씻고 밥 챙겨 먹은 뒤 잠을 청한다. 바로 잠들어도 햇빛 때문인지 생체리듬 때문인지 오후 1~2시가 되면 잠이 깬다. 멍한 상태로 한 시간 정도를 보내고 3시쯤 점심을 챙겨먹는다. 졸려서 다시 자다 깨다 하다가 오후 6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밥 챙겨 먹고 8시에 집을 나선다. 시간을 잘 내봐야 신문 하나 정도 볼 수 있다.

주말도 없다. 기본적으로 주 6일, 한달 26일 근무다. 토요일엔 출근하지 않지만, 사실 그 날도 아침까지 일하다 돌아온 것이다. 어지간히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곤 자기 계발이 어렵다. 의식주 외에 쓸 돈도 없다.

모두들 모자를 쓴다. 손 씨, 서 씨, 황 씨, 그리고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최 과장도 쓴다.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부분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다. “쪽 팔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특히 독립 건물이나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따로 있는 가게가 아니라, 지하철역 등 사람 많은 곳을 거쳐 들어가야 하는 장소는 다들 싫어했다. 책임자급인 이 과장도 "더러운 일이지만'" "쪽팔린 일이긴 하지만'"을 심심찮게 내뱉는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일하러 나가는 길이 괴로웠다. 일찍 도착해도 빌딩 앞을 서성였다. 대기실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이 땀 뻘뻘 흘리며 일할 때보다 더 힘들었다. ‘시간을 죽이려고’ 실없이 주고받는 야한 농담에 웃어주거나 대꾸하기도 싫었다. 진짜 직장이 아니고 잠시 일하는 것일 뿐인데도,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최 과장에게 그만 두겠다는 말을 꺼냈다. 15일간 일한 뒤였다. 그는 담배에 불을 댕겼다. 딸이 냄새난다고 뽀뽀를 안 해 준다며, 담배를 끊었다고 했던 그였다.

"어떡하냐, 저 영감들 데리고........“

7년 동안 나처럼 석 달 이하로 일하고 떠난 사람이 150명은 되는 것 같다고 한다. 하루 해보더니 다신 안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한 20명 쯤 돌아야 쓸 만한 사람 하나 정도 생기는 것 같다." 사장은 월급을 올려서 사람을 붙잡을 생각은 없고, 적은 인원으로 어떻게든 해내고 그 몫을 관리직들이 나눠 갖자고 했단다.

부장과 과장들은 돌아가며 조금 더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부장은 어차피 취업도 잘 안 될 텐데 야간작업 좀 하다가 낮에 사무실 근무를 시켜주겠다고 나를 구슬렀다. 거절했다. 그러자 돈을 조금 더 줄 테니 예정돼 있는 지방 출장까지만 도와달라고 했다. 그렇게 총 21일을 일했다. 하지만 그가 챙겨 준 ‘웃돈’은 고작 5천 원이었다.
 

2000년 이후 6년간 청소용역업체  70% 증가

우리나라에서 청소직 노동자들이 대거 용역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라고 한다. 정부와 기업의 ‘노동 유연화’ 정책에 전문화 바람이 겹치면서 청소 용역업체수가 급격히 늘었다. 민주노총의 2009년 ‘간접고용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 3,997개였던 위생관리용역업체수가 2006년에 6,681개로 68% 늘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2006년 산업·직업별 고용구조조사에 따르면 ‘청소 및 파출부 관련직’으로 분류된 인원은 46만5천 명 정도다. 여기에는 환경미화원, 건물청소원, 세차원뿐 아니라 가사도우미도 포함된다. 청소 노동자들 중에는 여성이 70.64%로 다수를 차지하고, 학력은 중졸 이하(74.8%)가 가장 많았다. 평균연령도 55.8세로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청소직 노동자들은 10명 중 8명이 비정규직(86.5%)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 민간연구소들이 추정하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 55%(845만 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임금도 낮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2006년 ‘청소용역 노동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이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 48.9시간이었고 월평균 임금 총액은 72만2,586원이었다. 당시 전 산업 평균 임금인 240만원의 1/3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생계비도 안 되는 임금 때문에 직원 식당에서 밥을 사 먹기가 부담스러워, 청소 아주머니들이 건물 내 여자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경우도 많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일한 야간 청소 용역은 그나마 평균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축에 속했다.

청소일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부업 삼아 하기 때문에 임금이 낮아도 괜찮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고용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청소노동자 10명 중 6명이 가구주였다. 기자가 일한 현장에서도 50대 근로자들에게 모두 부양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 강도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다.

청소부 없는 빌딩을 상상해 보라

▲ 청소 노동자 덕분에 우리는 쾌적한 삶을 누린다. 고개를 숙이고 일해야 하는 그들의 근로 여건이 언제쯤 나아질까. ⓒ황상호

우리가 다니는 학교, 회사, 공공기관 등에 청소부가 없다고 생각해 보자. 며칠 못 가 쓰레기통이 넘쳐나고 화장실에서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말 동덕여대 환경미화 할머니들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학교가 이틀만에 ‘쓰레기 하치장’을 방불케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다. 청소는 너무나 필수적인 기능이고, 늘 필요한 서비스다. 지금도 필요하고, 내년에도 필요하고, 그 후년에도 없어선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필수적이고 지속적인 기능을 왜 하나같이 외부 용역에 맡기고, 근로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방치할까? 정말 전문적인 기계작업, 혹은 야간작업이 필요한 경우라면 몰라도 일상적 청소업무는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중간에서 용역업체가 떼 가는 수수료만 얹어 주어도 청소원들의 임금 수준은 꽤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전문 용역업체들도 근로자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 주고,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일이 몸에 익은 사람들이 중간에 떠나 버려서 전전긍긍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내가 일 했던 회사도 사람을 못 구해 그렇게 애를 태우면서도 근로 여건을 개선할 생각은 안 했다. 최저가 입찰 때문에 인건비를 억누를 수밖에 없는 용역구조, 대다수 업체들의 영세성, 4대 보험 등의 부담으로 정규직 고용을 꺼리는 현실 등이 그 배경에 있을 것이다. 
 
오늘도 수십만 명의 청소 노동자가 도시의 찌꺼기들을 쓸어내고 있다. 우리는 그 덕택에 조금 더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과 한숨, 고통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일하는 그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밝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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