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무지개의 나라다.” 남아공 출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트 투투 대주교가 남긴 말이다. 그는 1994년 흑백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사라진 땅에 다양한 인종과 부족을 뛰어넘어 화합과 평화를 기대했다.

‘무지개의 나라’에서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축구를 통해 분열된 남아공을 하나로 봉합하고, 경제성장을 도모한다나. 하지만 이번 대회가 남아공에게 ‘무지개 빛’ 미래만을 펼쳐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봄 주마 제이콥 대통령은 월드컵 기간에 나눠줄 콘돔 4200만개를 지원해달라고 영국정부에 요청했다. 국제대회를 치르면서 에이즈 감염률이 높아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콘돔 구입비 100만 파운드(약 18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큰 대회 때 콘돔을 지급하는 건 전례가 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선수들에게 콘돔을 나눠주었고,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는 콘돔 십만 개를 선수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나 4200만 개는 전례 없는 물량이다. 남아공에서 해마다 50만 명이 새로 에이즈에 감염되고 매일 1천명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현실을 반영한 비상조처다. 남아공 4700만 인구 중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570만 명으로 세계 최고 수치다. 에이즈는 세계 콘돔시장의 급팽창을 가져왔고, 시장점유율 1위인 한국(30%)에 상당한 이익을 남겼다.

 

‘월드컵 특수’를 노린 성매매 여성들이 대거 남아공으로 향할 것이라는 뉴스도 있었다. <글로벌 포스트> 인터넷판에 따르면, 남아공 마약당국은 러시아, 나이지리아, 콩고 등지에서 4만 명 가까운 성매매 여성이 몰릴 것으로 전망했다. 대형 스포츠 행사는 늘 ‘섹스산업’의 호황을 동반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베를린 주경기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성행위 박스’나 ‘섹스 오두막’이 있는 대규모 성매매촌이 설치됐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도 성매매 여성들이 95% 이상 늘었다. 축구관광과 섹스관광의 경계선은 모호해진다.

어째서 축구와 섹스가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을까? 월드컵은 돈이 되는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 자본, 미디어, 관광객, 시청자까지. 축구는 이제 단순한 운동종목이 아닌 글로벌 ‘상품’이 됐다. 상품화한 축구의 중심에는 남성이 있다. 이들은 게걸스럽게 축구를 소비한다. 레플리카(선수 유니폼)를 사고, 경기장에서 응원을 한다. 경기가 끝나면 술집에 몰려가 경기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성매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성매매 여성들이 ‘희망’을 안고 대형 스포츠 행사를 쫓아다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글로벌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케이프타운에 머무르는 스칼렛이란 콩고 성매매 여성은 “백인 남성은 흑인 여성을 좋아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웃돈을 얹어주면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남자들은 콘돔을 싫어하죠.”

‘무지개 나라’의 월드컵 기간에 거의 무한정 공급되는 알록달록한 콘돔들. 스포츠와 섹스의 인연은 이토록 질긴 것인가? 하긴 남아공이든 한국이든 3S(Sports, Sex, Screen)를 정권유지의 한 수단으로 삼은 독재정권들도 있었으니….


 장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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