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 <1부> 근로 빈곤의 현장
<상> 텔레마케터 2주의 현장 기록

대한민국에서 가진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은 불안하다. 비참하다. 뼈 빠지게 일해도 벌이는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 그 일자리에서마저 언제 ‘정리’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세다. 저축할 형편이 못 되니 번듯한 내 집은 꿈도 꾸기 어렵고, 재개발 전세값 상승 여파에 셋방살이도 좌불안석이다. 아이를 기를 형편이 안 돼 출산을 포기하거나, 보육 부담에 다른 꿈들을 접어야 한다. 큰 병이라도 나면 집안이 풍비박산, 거리로 나앉기 십상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손 댄 사채 빚 때문에 인생까지 저당 잡히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단비뉴스>는 정부와 기성 언론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수백만 명 가난한 한국인의 삶에 바싹 다가가기로 했다. 그들이 처한 현실을 생생히, 끈질기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고통과 한숨에 사회가 공명하게 하고, 대안을 모색하도록 할 것이다. 첫 주는 근로 빈곤의 현장을 학생기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쓴 취재 기록으로 시작한다. <편집자>


 
“나랑 사귈래요?”

어쩐지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준다 싶었다. 오늘 따라 스크립트(대본)를 보지 않아도 술술 설명이 잘 됐고, 고객은 곧 주문이라도 할 것처럼 살갑게 굴었다. 드디어 한 건 하는 건가? 기대도 잠시, 수화기 저편의 남자가 낮게 웃음을 깔더니, 자기랑 사귀잔다.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당황해서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귀까지 열이 확 오른다. 무안하고, 허탈하다.

지난 3월22일부터 서울 영등포구의 한 전화판촉 업체에서 유명 통신회사의 인터넷TV(IPTV) 서비스 상품을 팔았다. 고작 2주일 체험이었지만, 하루에 지옥을 몇 번씩 갔다 오는 듯한 감정의 풍파를 겪었다. 상품설명을 듣고, 고객을 설득하는 요령을 배우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자, 슬슬 전화를 돌려 보세요.”

이튿날부터 ‘실전’에 들어갔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헤드셋을 머리로 가져갔다.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시작했건만, 가슴이 요동친다.
뚜. 뚜. 뚜....... 신호가 간다.
받지 마라. 받지 마라.
딸깍.

“여보세요?”

실컷 스크립트를 보고 연습했지만, 말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발음은 뭉개지고, 심지어 더듬기까지.......

“됐어요.”
“필요 없어요.”
"아침에 이 전화 받았거든요?"
"TV가 없어요. TV도 사은품으로 주시든가!"

고객들은 내가 초보인 것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설픈 판매원을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필요 없다’는 냉랭한 반응에 힘없이 전화를 끊는 나에게 실장은 "당길 줄 알아야지하고 혀를 찬다. 
 

 ▲텔레마케터는 스크립트와 헤드셋, 빨간펜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상윤

목까지 넘어오는 울음을 삼키고

"그래서, 결국은 돈 내라는 얘기잖아! 무료기간이고 뭐고 결국은 돈 내란 얘기 아니야? 내 말 틀렸어?”

한 고객이 IPTV ‘무료체험’이란 말을 듣고 호기심을 갖다 갑자기 화를 버럭 낸다. 일단 무료 체험을 한 뒤, 좋으면 월 사용료를 내고 쓰라는 얘긴데 완전 공짜를 바랐던 모양이다. 완전 공짜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고함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찢어질 것 같다.

“네? 네? 그......그렇죠......”

욕을 한 바가지 먹고, 얼이 빠져서 전화를 끊었다.
머리털이 곤두섰다. 동료들이 내 통화내용을 들었을 것 같아 너무 민망하다. 
뒤통수가 뜨거워지더니, 어느새 귀까지 내려온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울음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입술을 깨물었다. 감정 조절을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안간힘을 써서 억눌렀다. 숨을 몰아쉬고 또 전화를 돌렸다.

“저기요. 있잖아요. 저 이런 전화 정말 싫거든요? 이런 전화 대체 왜 하는 거예요? 내가 왜 직접 TM(텔레마케터)전화 거부 등록을 해야 하는 거야?”

이번 고객은 처음에 조곤조곤하던 말투가 점점 신경질적인 반말로 변했다.

"네. 네. 죄송합니다. 고객님"

나도 모르게 머리까지 조아렸다. 쿵쾅쿵쾅.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누가 들을 것 같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도 없다. 계속 ‘콜(전화)’을 돌려야 하니까. 일 분 일 초가 두려운데, 하루에 6시간 반을 꽉 채워야 한다. 

또 무슨 얘길 들을까 겁이나, 한동안은 전화를 걸었다가 몰래 끊어버리기를 반복했다. 마치 열심히 전화를 하는데 고객들이 다 받지 않는 것처럼. 누구라도 말을 시키면 울음 폭포가 쏟아져버릴 것 같았다.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 날부터 첫 주문 접수를 받기까지 5일간, 나는 수백 명의 남성고객들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네네. 고객님. 다음에 전화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영선(가명)언니가 한참 동안 한 고객과 통화하다가 가까스로 끊는다. 귀가 아팠는지 헤드셋까지 내려놨다.

"이 고객 정말 심심한가봐. 수다가 장난이 아니다. 얘기 다 들어주면 가입할 것 같은데, 더는 못 들어주겠다."

상품을 팔기 위해선 고객의 어떤 얘기라도 참을성 있게 듣고, 비위를 맞춰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가입하는 고객이 하나 둘 생긴다. 하지만 '나'를 버리고 철저히 물건을 파는 텔레마케터가 되기에 나는 아직 너무 심약한가 보다. 
 
실장이 모니터링 "필요 없다고 하면 다 끊을 거에욧?" 

우리를 관리하는 실장은 “텔레마케터의 실적은 결국 ‘콜 수’ 에 달려있고 그 ‘콜 수’는 역시 집중력에서 나온다”고 목청을 높였다. 제한된 시간 동안 더 많은 전화를 돌릴수록, 주문이 성사될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다. 실장의 눈치를 보느라 두 세 시간 정도 숨 쉴 틈 없이 전화를 돌리다보면, 마치 내가 기계가 된 것 같다.  

같은 텔레마케터 사이에도 능력차가 있다. 영선 언니는 우리 팀에서 가장 실적이 좋다. 30대 초반으로, 우리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데다 직장 경험이 꽤 있다. 침착하고 신중하게 고객과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언제 전화를 끊을 지, 아니면 ‘당겨야’ 할지 잘 안다. 귀찮아하고 신경질적인 고객을 상대로 굳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반면 나보다 어린 철수(가명)는 대화의 '맥'을 영 모른다. 스크립트를 그냥 읽기 바쁘다. 상대방의 반응을 아랑곳 하지 않고 제 말만 하기 바쁘다. 지하철역 임시매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터넷 서비스 신청을 호객하던 버릇이 아직 남아있다. 목소리도 투박하고 톤이 높아 듣는 사람까지 불안해진다. 실적이 나쁠 수밖에 없다.

▲초보에게 스크립트는 필수다. 중요한 멘트는 형광펜을 치거나 밑줄을 그어놓곤 한다. ⓒ김상윤

우리끼리는 쉬는 시간에도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고객과 실랑이하느라 지쳐 서로 말을 아낀다. 애연가인 철수와 순미(가명)씨가 가끔 담배를 피러 함께 나가지만 말없이 연기만 뿜다 돌아온다. 내가 일한 기간 동안 서로 전화번호도 교환하지 않을 만큼 ‘동료 의식’이라곤 없었다. 퇴근 후에도 묵묵히 각자 흩어졌다. 일하면서 너무 감정을 소진한 탓인지, 다른 사람과 더 이상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사무실에서 가장 높은 실장이 우리를 계속 지켜본다. 한때 언론고시 준비를 했다는 30대 중반 이 남자는 우리가 고객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다 듣고 있다. 그는 내가 계속 ‘무료’만 강조하기 때문에 자꾸 실패하는 거라고 지적했다. 또 "바꿨다고요?", "그랬어요?" 등 ‘해요’체를 남발하는 철수의 말버릇을 바로 잡아주었다. 실장과 우리는 인터넷에서 '친구'사이다. 입사하자마자 실장은 내게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하더니, ‘친구요청’을 했다. 그리고 컴퓨터에 뜨는 대화창으로 지시를 내린다.

"이봐요. 아가씨. 나 이런 거 필요 없거든 "

협박성 말투로 대꾸하는 고객이 무서워 ‘알겠다’며 얼른 끊었을 때, 그는 모니터를 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끌어당겨야죠. 필요 없다고 하면 다 끊을 거에요? 보라씨는 그게 약해요. 더 적극적으로 해보세요."

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고객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받아치라고 말한다. 설득하란다. 원하는 대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고 어떤 상황에도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는 기지와 능력이 있다면 벌써 성공해서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의사는 "말 많이 하지 말라"고 하고

4일째 되는 날, 철수가 오전 11시 넘어서야 출근했다. 감기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목상태가 좋지 않았다.

“의사가 저보고 목 많이 쓰는 직업이냐고 묻더니 당분간 말을 많이 하지 말래요.”

전쟁에 나가는 병사에게 총알을 쓰지 말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철수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하루 종일 고객과 통화해야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에 실적이 더욱 안 나왔다. 그날 실장은 그에게 연장근무를 시켰다.

들어온 지 1주일이 안 된 순미씨도 감기에 걸렸다. 지난주에 하루 결근했지만 아직 낫지 않았다. 거칠어진 목소리를 억지로 가다듬으며 이리저리 전화를 돌린다. 계속 불발이다. 6시가 가까워오자 손놀림이 더욱 바빠진다. 

“아픈 것도 계획 세워서 아프세요.”

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인걸 알지만 어쩐지 가시가 있는 것 같다. 아파서 결근을 하는 경우 무급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어지간히 아파서는 쉴 생각을 할 수 없다.

목을 많이 쓰는 우리는 물을 자주 마신다. 사무실 빈 책상 위에는 종이컵과 싸구려 녹차티백, 커피믹스가 쌓여 있다. 퇴근할 때쯤이면, 녹차와 커피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실장 책상 가까이에 있는 녹차를 매번 가져오기가 눈치 보여 두 번 이상 우려내 마시기도 한다. 싸구려 녹차 티백을 여러 번 우려마시면 쓴맛이 난다. ‘밥벌이’의 쓴 맛이 이런 걸까?

공기도 탁하다. 30여 평 남짓한 사무실에 우리 1팀 다섯 명, 2팀 7명이 있고, 경리가 2명 있다. 10여 명이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사무실에 환풍기는 단 하나. 업무시간 동안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있다. 출근 첫 날부터 목이 따끔거렸다.
 


텔레마케터 2주의 현장 기록 (하)
 “저기요, 저도 이렇게 전화하는 거 괴롭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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