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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로 집 잃고 창고에서 두 번째 겨울
[현장] 비닐하우스 21가구 불 탄 산청마을, 아직 잔해 그대로
2012년 02월 06일 (월) 23:49:48 이지현 기자 easyhyun@live.co.kr

“거기 집이 있는지 없는지 직접 와서 보라 그래. 불에 다 타고, 남은 건 그냥 시멘트 바닥뿐인데.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할 땐 언제고 왜 자꾸 없는 집에 이런 걸 보내는지 이해가 안돼.”

김금란(69·여·가명)씨는 지난달 9일 오후 마을 주민 3명과 천막으로 된 산청마을 자치회관에 앉아 있다가 국민연금공단에서 온 우편물을 보고 이렇게 푸념했다. 우편물에 적힌 주소는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산160번지 27호. 하지만 그곳엔 지금 아무 것도 없다. 

   
▲ 마을자치회 막사에 모여 있는 김금란(69·가명·왼쪽)씨와 마을 주민들. ⓒ 이지현

지난 2010년 11월28일 이 일대 비닐하우스촌인 산청마을에 불이나 54가구 중 21가구가 타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는 데 앙심을 품은 한 마을 주민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게 원인이었다. 불은 판자벽과 비닐, 떡솜 등으로 지어진 이웃 가건물들로 순식간에 번졌다. 당시 화재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마을주민 120명 중 52명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불을 낸 주민은 구속됐다.

마을회장 박진규(52)씨는 “주민들 주거실태 파악을 해 가고도 이 모양”이라며 “동사무소나 구청이 우리한테 관심이 없다는 증거”라고 김씨를 거들었다.

   
▲ 2010년 11월 산청마을에 불이나 비닐하우스촌 절반가량이 사라졌다. ⓒ 김영아

산청마을은 원래 비닐하우스에서 꽃을 재배하던 화훼단지였다. 그러다 1960~70년대에 종이나 빈 병 등 고물을 주워 파는 넝마주이들이 이 일대에 수용되면서 비닐하우스촌을 형성했다. 이후 가족단위의 빈곤층이 모여들면서 자치회도 만들고, 전기 수도 등도 가설했다. 마을이 생긴 지 40년이 넘었지만 큰 화재가 일어난 것은 2010년이 처음이었다.

불이 난지 400여 일이 지나고 두 번째 겨울이 찾아 왔지만 피해 주민들 다수는 ‘난민’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청마을 자체가 사유지에 무허가로 세운 가건물들이라는 이유로 구청에서 재건을 막았기 때문이다. 불탄 집터에는 소파, 장롱 등 망가진 가구들과 주민들이 내다 버린 연탄재 등이 쌓여있었다. 화재를 피한 집들도 위험스러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성인 한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에는 집집마다 쌓아 올린 연탄과 액화석유가스(LPG)통이 불안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벽과 지붕 등에는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작은 사고가 큰 재앙으로 번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 화재로 망가진 가구류와 잔해들이 방치돼 있다. ⓒ 이지현

“불이 났을 때 주민들은 마을 앞 교회에서 이틀 동안 신세를 졌어요. 하지만 교회에 계속 있을 수 없어 마을에 돌아와 회관에 임시거처를 마련했죠. 그 옆에 공동취사장을 만들려는데 구청에서 용역들을 써서 건축자재 반입을 막았어요. 용역들 인력비만 해도 엄청날 텐데, 그럴 돈은 있으면서 주민들 스스로 취사공간 짓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구청이 할 일이었냐는 겁니다.”

박 회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구청을 성토했다. 서초구는 불이 난 뒤 산청마을 밑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한 뒤 밤낮으로 10명씩 용역을 세워 단속을 했다고 한다. 무허가 건축물을 다시 짓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서초구가 주민들을 전혀 돕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서초구가 보유한 보금자리주택 6가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주택 14가구 등 총 20가구를 이재민들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21세대 중 7세대만 보금자리주택 등으로 이사를 가고 나머지 이재민들은 창고 등에 난로를 설치해 만든 임시거처에서 살고 있다.

   
▲ 마을자치회 막사에 있는 시민단체와 개인 후원 물품들. ⓒ 이지현

“임대주택에 들어갈 비용도 없을 뿐더러 새벽에 인근 빌딩을 청소하거나 신문을 배달하는 등 생업 기반이 이 동네라 못 떠나는 거죠. 아이들은 이 근처 학교를 다니는데 임대주택에 가면 전학을 가야 해요.”

서초구가 지원한 양재동 보금자리주택은 보증금과 월세가 없지만 최대 3년까지만 살 수 있다. 3년 뒤 집을 내놓아야 하는데 아무런 재산이 없고 은행에서 대출할 형편도 못 되는 주민들에게는 불안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관악구와 동작구 일대의 임대주택은 보증금 350만원에 월세가 11만원인데, 기초생활수급이나 일용직 등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은 이만한 목돈을 마련하거나 월세 낼 형편이 안 된다고 한다. 

산청마을 주민이자 ‘주거권 실현을 위한 비닐하우스주민연합’ 사무국장인 김재필(41)씨는 “화재를 당한 주민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재지변이나 재난 등으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산청마을은 방화로 인한 것이라 법적으로는 정부 지원이 어려운 형편이다. 

   
▲ 산청마을 입구 전경. ⓒ 이지현

현재 서초구는 산청마을 일대를 공원으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마을 주민들도 적절한 보상과 이주대책이 마련되면 이 계획에 협조할 계획이다. 그러나 생활기반을 옮기기 어려운 주민들이 서초구 내에서 전월세 등 주거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각 가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청이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사무국장은 “화재 피해자는 물론 다른 마을 주민들도 옮길 곳을 알아보고 생활준비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 대화를 통해 현실적인 지원책을 세워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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