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복지와 저금리 서민금융 확충, 불법고리대 단속 박차를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5부] ⑥ 서민금융 대안 좌담회

 <단비뉴스>의 창간특집기획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이 제5부 ‘저당 잡힌 인생’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1년 반에 걸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빚을 썼다가 고금리의 덫에 빠진 서민들을 다룬 ‘저당 잡힌 인생’은 지난 해 12월 19일부터 지난 20일까지 5회에 걸쳐 현장의 생생한 실태와 정책의 문제점 등을 조명했다. 마지막 회에는 금융시리즈에 참여한 기자들이 모여 취재 뒷얘기와 서민금융 개선을 위한 대안을 논의하는 순서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지난 18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의 <단비뉴스>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편집자)

민보영(단비뉴스 기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단비뉴스의 심층기획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시리즈] 마지막 차례인 금융대안 좌담회입니다. 지난해 6월, 제1부 근로빈곤 시리즈를 시작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특집이 어느덧 마지막 차례를 맞았는데요, 오늘은 5부 ‘저당 잡힌 인생’에 참여한 기자들과 함께 취재 뒷얘기와 대안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먼저 정혜정 기자, 등록금 빚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을 만났죠?

등록금 벌려다 피라미드 조직에 걸려들기도 

정혜정(단비뉴스 기자): 네, 등록금 빚 때문에 청춘을 빼앗긴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취재원 섭외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대출을 받고 있지만, 대출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학생들은 눈물을 머금고 이자가 훨씬 높은 은행이나 대부업체를 찾고 있었어요. 등록금 대출을 갚으려 일자리를 찾다 피라미드 조직에 걸려들 뻔한 경우 등 눈물겨운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 좌절하기보다 인터뷰 내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던 취재원이 인상 깊었습니다.

민: 불법 대출알선업체 등을 직접 취재한 주상돈 기자는 어땠나요?

주상돈(단비뉴스 기자): 저희 팀은 ‘대부업체 등이 지나친 마케팅을 통해 돈을 쓰라고 부추기고 있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다양한 대출 영업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누구라도 하루에 한번 이상은 대출광고에 노출된다고 할 만큼 공격적인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어요. 제 경우 취재 전에 일주일에 5~6건의 대출관련 문자를 받았는데, 취재차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핸드폰 번호를 남기고 다니다보니 요즘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대출관련 문자가 옵니다. 돈 빌릴 생각이 없는 사람은 이런 광고를 그냥 귀찮게 여기겠지만 당장 급한 사람은 ‘빌려볼까?’하고 혹할 가능성이 많죠. 워낙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빌릴 수 있는 것처럼 광고를 하니까요. 그러다가 고금리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폭 넓은 독자 공감 속 "못 갚을 빚 왜 썼나" 질책도

민: 취재를 하면서 기자들도 대출 마케팅의 현실과 빚에 시달리는 서민들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요, 기사가 나간 뒤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 엄지원 기자

엄지원(단비뉴스 기자): 기사 내용에 공감하고 함께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반면 금융피해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애초에 갚지 못할 돈을 왜 빌렸나, 차라리 개인파산을 신청하지 그랬느냐 하는 반응들도 있었습니다. 은행 등 제도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고, 급박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고금리 사채 등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사채업자들의 횡포는 예전부터 있었는데 새삼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는데요, 서민들의 금융피해 문제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언론도 드물었고, 문제해결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죠.

주: 저희 기사를 본 독자들은 대체로 ‘대부업체의 횡포가 심한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인지는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제가 대출상담을 했던 한 업체는 무려 연 2370%의 이자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독자 중에는 ‘정부가 왜 이런 횡포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느냐’며 대부업체 등에 대해 보다 강력한 규제를 요구한 분도 있었습니다.

▲ 정혜정 기자
정: 한 독자는 빚에 짓눌린 대학생과 관련한 기사를 읽고 “기숙사에 살지 왜 자취방을 구해서 돈을 낭비하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학교에서 기숙사 인원이 제한돼 성적순으로 들어간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고, 가난한 학생들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다 좋은 성적을 못 얻는 경우도 많거든요. 다음부터는 취재원의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묘사해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지영(단비뉴스 기자): 제가 쓴 기사에 달린 댓글은 대부분 “나도 그렇다” “등록금 빚 정말 심각하다” 등 공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장학재단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학기에 정부지원 학자금대출을 받은 인원만 35만명이 넘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감의 폭이 넓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잔인한 빚 독촉 막게 경찰과 금융당국 적극 나서야

민: 이번에는 각자 취재한 영역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논의해봤으면 합니다. 불법 채권추심과 약탈적 대출 문제에 대해 먼저 생각해볼까요.

엄: 불법채권추심업자들을 사법처리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과 경찰이 요구하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불법추심 피해가 줄지 않고 있어요. 채무자가 극도로 궁지에 몰린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협박당하는 내용을 녹음하고, 폭행현장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불가능합니다.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이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잔인한 빚 독촉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 높은 법정이자율이 약탈적 대출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시장금리가 연 5~6%인데, 대부업체에 적용되는 법정이자율 한도는 연 39%입니다. 1000만원을 빌리면 1년간 390만원을 이자로 내야한다는 것이죠. 생활에 쪼들려서 돈을 빌리는 사람이 이런 고금리 조건에서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우선 지나치게 높은 법정이자율을 낮춰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처럼 연 20% 이내로 낮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같은 살인적인 이자 조건에서는 빚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 좌담회 중인 금융기획팀. ⓒ 좌담회 영상 캡처.

민: 도저히 갚기 어려운 상환 조건을 적용해서 채무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약탈적 대출’을 막기 위해 일단 지나치게 높은 이자율을 낮춰야 한다는 얘기군요. 등록금 취재팀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 정부는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연 4.9%의 금리로 학자금을 대출해주고 있습니다. 낮은 금리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소득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이런 이자도 큰 부담입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매년 정부가 학자금 대출 금리를 결정하는데, 2010년 상반기에는 0%, 즉 무이자였습니다. 선진국들은 대출 금리를 낮게 운영할 뿐 아니라 소득 수준에 따라 이자를 차등화 해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올해부터 이자율을 3.9%로 낮춘다고 합니다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서는 높은 편입니다. 이자율을 좀 더 낮추고,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재학 기간에는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르바이트에 매달려야 하는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해서 학점 등 대출 조건을 완화해야 할 필요도 있고요.

▲ 김지영 기자
김: 사람들이 왜 빚을 질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답은 간단하더라고요. 버는 돈보다 써야 할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낭비하다 빚을 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소득층의 빚은 아무리 생활비를 아껴도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등록금 등 필수적 지출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간 무역규모가 1조 달러를 넘어서고,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규모의 이익을 기록해도, 재계는 최저임금 몇 십 원 올리는 것을 아까워합니다. 생활물가는 가파르게 오르는 데 말이죠. 1인당 소득과 비교한 등록금 수준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50위권을 맴돌고 있는데 말이에요. 근로자들의 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 이렇게 등록금이 비싸고, 전월세 보증금 올려줘야 하고, 큰 병에 걸리면 병원비도 비싸니 서민들은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쉽게 몰리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대출규모를 확대하고, 이자를 낮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다른 수입이 없다면 계속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겠죠. 근본적인 대안은 국민들에게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몇 년째 거의 제자리 수준인 최저임금, 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의 절반 정도밖에 못 버는 비정규직, 실업난 등을 해결하지 않고 서민들의 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계자금 급박한 서민, 저금리 대출창구 넓혀야

민: 마지막으로 약탈적 대출을 막고 서민금융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좀 정리해서 얘기해볼까요.

▲ 주상돈 기자
주: 대부업체나 사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저신용자들입니다. 이들은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악순환에 쉽게 빠지죠. 수입은 늘지 않는데 점점 이자가 비싼 돈을 빌리니 헤어나지 못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생계자금 등을 필요로 할 때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지 않도록 제도권 금융기관을 통한 서민금융을 확대해야 합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등 큰 규모의 투기적 영업을 하다 부실화한 저축은행들처럼 서민금융기관들이 엉뚱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소액대출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또 고금리 대출로 많은 이익을 내는 대부업체들에 대한 법적 규제 장치를 강화하고 이를 위반한 대부업체에 대해선 정부가 강력하게 단속해야합니다.

엄: 불법추심 피해를 막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은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일단 공정채권추심법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채무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어권 개념이 약한데, 이를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일본과 미국의 경우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 신용상담가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 그룹을 의무적으로 두어서 채무가가 직접 겪는 피해를 막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무료 법률자문기구의 확대인데요,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무료 법률자문기관은 법무부 소속 법률구조공단 한곳입니다. 하지만 이 곳은 지원 대상을 기초생활수급자로 한정해 극히 일부계층만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원 대상을 늘리고, 이를 읍이나 면 단위에도 있는 보건소처럼 지자체 구석구석에 설치해서 서민들이 법률복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하겠습니다. 다행히 이 같은 법률자문기구 설립을 서울시에서 올 2월부터 추진하고 있고, 차차 규모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민: 미국은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 이후로 ‘약탈적 대출’에 대한 개념이 정립됐는데요, 우리나라는 아직 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크지 않은 상태입니다. 매달 갚는 돈 보다 이자가 더 빨리 늘어나 원리금 총액이 계속 증가한다든지 하는, 채무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대출을 강력히 규제해야 합니다. 최근 정책적으로 많이 늘어난 서민금융이 제 역할을 못하는 문제도 개선돼야 합니다. 어떤 상품은 창업자금 중심이고, 어떤 상품은 정치권 비리로 자금이 누수 됐고, 어떤 상품은 창구에서 조건을 너무 까다롭게 따져 서민들이 제대로 이용을 못하는 등 문제가 많습니다.

김: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연체한 학자금대출 규모가 지난해 5월 말을 기준으로 4천억원에 달합니다. 또 대출 잔액이 남아 있는 학생이 2005년에 비해 7배나 늘었습니다. 대출금이 연체되는 이유는 원금 자체가 너무 많고, 대출금리가 높기 때문입니다.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실질적인 등록금 인하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발표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대학 재정 개선만으로도 등록금의 5% 이상을 인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학교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립금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죠.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늘려서 등록금 부담을 대폭 낮춰야 합니다.

 ▲ 민보영 기자
민: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6명이 가난의 원인에 대해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죽어라 일해도 생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어렵고, 집을 사기는커녕 세를 얻기도 힘들고, 결혼해도 애 키우기가 어렵고, 아프면 의료비로 망할 수도 있는 사회라면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모든 민생 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순 없지만 최소한 기초생활에 필수적인 부분에서는 복지제도 확충을 통해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올해 총선과 대선 등 두 차례 큰 선거가 있는데,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이며 정치권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 지 고민할 때 저희 기획시리즈가 도움 되셨으면 합니다. 단비뉴스 창간특집 기획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여기서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비뉴스>의 특집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은 도서출판 오월의 봄(대표 박재영)에서 단행본으로 곧 출간할 예정입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