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사진전’ 찢어진 마음 봉합에 나서다

사진작가와 인류학자가 빛 바랜 기억 속에서 되살려낸 것

“두 노처녀가 설에 무슨 일을 벌이나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저희는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거나 결과를 내려는 게 아니에요. 설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과 강정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아, 우리가 이렇게 화목하게 살았었지’하고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사진도 모두 마을사람들 것이고 사진에 나온 사람들도 다 강정마을 사람들이죠.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진전이에요.”

설 전날인 22일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찾았다. 설 연휴에 한파가 몰아치면서 바닷가 마을의 체감기온은 더욱 뚝 떨어졌다. 도로도 한산했다. 풍림리조트를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가자 4미터는 됨직한 하얀 벽이 버티고 있었다. 해군기지건설 부지를 에워싸고 있는 벽이다. 밑에는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들뜬 마음으로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방문을 환영하는 글귀 대신 갈등의 흔적만 확인했을 터이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강정마을 훼미리마트 앞에 다다랐다. 두 여인이 바람에 날릴세라 사진 전시대를 부여잡고 있었다. 사진작가 이성은(43)씨와 한국해양대 연구교수인 인류학자 안미정(42)씨다.

 

▲ '강정마을 사진전'을 공동주최한 안미정(왼쪽) 해양대 연구교수와 이성은 사진작가. ⓒ 양호근

이 작가와 안 교수는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강정마을 새해맞이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사비를 털어서 연 전시였다. 해군기지건설의 찬성측이든 반대측이든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제는 ‘가까운 옛날에서 찾다: 우리 일강정’이다.

안 교수의 고향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다. 설을 맞아 고향을 찾을 겸 사진전을 준비했다.

“저는 인류학 연구교수예요. 마을을 조사하는 게 직업이라 강정마을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작년 10월부터 참여관찰을 하면서 강정마을 주민들을 만났고, 이번에 사진전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사진전을 언론사에 홍보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는데…”

안 교수는 잠시 말을 끊더니 오로지 마을사람들을 위해 소박하게 전시회를 열고 싶었다고 했다.

“저희 사진전이 다시 갈등의 씨앗을 만든다면 사진전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찬반의 이분법이 아니라 사진전을 통해 마을사람들이 거울을 본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조한혜정 교수의 책 <다시, 마을이다>를 보고 느낀 게 많았어요. 강정마을이 갖고 있던 탄탄한 공동체 정신을 마을사람들이 다시 보길 바랄 뿐이죠.”

 

▲ 강정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해군기지건설 부지 주변을 둘러싼 하얀 벽과 마주친다. 벽 아래에는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단체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 양호근

경북 후포가 고향인 이 작가는 우도에서 3년째 살면서 해녀 사진을 찍고 있다. 해녀 사진을 찍으면서 자연스레 강정마을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해녀를 연구하는 안 교수와 인연이 돼 공동으로 사진전을 준비해왔다. 사진작가지만 이번 사진전에 그의 작품이 없다. 오롯이 마을사람들이 갖고 있던 옛 사진들을 모아 전시했다. 하지만 사진을 선별하고 배열하는 데는 이 작가의 시각과 남다른 해석이 가미됐다. 이번 설에 어머니가 있는 대구에도 못 가고 전시에 집중했다.

“제주에 있는 동안 강정마을에 자주 왔어요.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기록일 뿐 전시의 성격은 아니었어요. 사진전시회 얘기를 하니까 노인회장님이나 마을 사람들이 흔쾌히 도와주면서 사진들을 주셨어요. 사진전을 보러 온 주민 중에는 자신의 어머니가 나왔거나 가족이 나왔다며 전시가 끝나면 사진을 주면 안 되겠냐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것이 저희가 바라던 거예요. 강정마을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보면서 옛 모습을 그리워하는 거죠.”

“옛 사진 보니 옛 정이 그립네”

이 작가와 안 교수가 강정마을에서 무언가를 해보자고 마음 먹은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강정마을 사람들의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12월 23일 사진전을 열기로 결정하고, 1월 7일부터 강정마을에 내려와 본격적으로 전시회를 준비했어요. 이왕 하는 거 설날에 맞춰서 하기로 했거든요. 준비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죠.”

 

▲ '강정마을 사진전'이 1월 20~25일 강정마을 훼미리마트 앞에서 열렸다. ⓒ 안미정

사진전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사진을 구하는 데 마을주민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 마을 안에 있는 농협과 새마을금고 사이에 전시공간도 확보했다. 주민들 왕래가 잦아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게다가 통 유리로 돼 있는 건물이라 전시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딱 저희들을 위한 전시공간이었어요. 한 달 정도 비워둘 건물이라 하더라고요. 운이 좋다고 생각했죠. 저희는 해군기지건설의 찬성측과 반대측 주민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을 원했거든요. 그래서 마을회관 등 여러 곳에서 전시하라는 제의도 거절했어요. 농협과 새마을금고는 주민 누구나 이용하는 곳이니 그 사이에 있는 건물이라면 최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사진전은 하루 만에 벽에 부딪혔다. 주민들 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빈 건물 소유주가 해군기지건설 ‘찬성이다’, ’반대다’ 하며 마찰이 생겼다. 그 정도로 주민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 작가와 안 교수는 난감했지만 마을 안에서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장소를 옮기게 된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강정마을 훼미리마트 앞에서 전시를 하게 됐다.

 

▲ 1990년 1월 27일 설날 아침, 강정마을 주민들이 합동세배를 하고 있다. 강정마을에는 해마다 설날 아침이면 합동세배를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올해에는 그마저 하지 않았다. ⓒ 이성은(강정마을 제공)

“훼미리마트는 외지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해군기지건설에 찬성도 반대도 아니더라고요. 사진전을 하는 것도 흔쾌히 승낙했고, 주민들도 별다른 얘기가 없었어요. 일종의 절충지대 같은 곳이죠. 길가에 있는데다 찬반측 어디에도 열려있으니 주민들은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사진전을 보게 됐어요. 24시간 편의점이라 전시 시간도 제한이 없었어요. 우연히 찾게 됐지만 운명 같은 곳이죠.”

강정마을 갈등을 상징하는 곳 중 하나는 코사마트와 나들가게다. 언론에도 보도됐지만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코사마트와 찬성하는 나들가게는 도로를 경계로 장사를 하고 있다. 해군기지 반대측 주민들은 코사마트만 이용하고, 찬성측 주민들은 나들가게만 이용한다. 이 아이러니 속에 절충지대인 훼미리마트가 존재하는 것이다.

500년 공동체가 5년 갈등에 깨질 수는 없다는 희망

강정마을은 500년 가까이 되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제주도에서 ‘일강정’이라 불리며 토양이 좋고 해산물도 풍부해 살기 좋은 마을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해군기지건설 문제가 터지면서 마을이 산산조각 났다. 지난해까지는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합동세배를 하더니 올해는 아예 합동세배도 하지 않았다.

강정마을 훼미리마트 앞에 ‘고향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갈등의 현수막들 사이에 훈훈한 현수막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자세히 살펴보니 마을조직에 노인회와 어촌계가 빠져있었다. 이들은 해군기지건설에 찬성하는 단체들이다. 환영 현수막은 설에도 갈라설 수밖에 없는 마을의 현실을 더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 강정마을의 고향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 아래에 노인회와 어촌계가 빠져있다. ⓒ 안미정

“해군기지건설 찬성측이나 반대측 모두 처음에는 저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어요.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너희들 어느 쪽이냐’, ‘우리 편인 줄 알았더니 저쪽 편이냐’는 식으로 선을 그으려 했죠.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진전의 목적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그들이 서로 마음을 열어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그들은 사진전을 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은 강정마을에도 분명한 접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5년간 불신의 장벽을 쌓아왔지만 500년 가까운 세월 그들은 하나였다는 사실을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이 마을의 마지막 체육대회 사진이 있어요. 줄다리기하는 사진인데, 같은 팀에 해군기지건설 찬성측하고 반대측 주민이 섞여 있어요. 몇 주민은 사진을 치우라는 얘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그분들께서 다시 오셔서 음료수도 주시고, 먹을 것도 사주시고 고생한다고 위로도 해주시더라고요.”

 

▲ '강정마을 사진전'에는 2006년 강정마을 마지막 체육대회 사진이 전시됐다. 줄다리기하는 각 팀에는 나중에 해군기지건설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로 갈라지는 주민들이 섞여 있다. ⓒ 양호근

이 작가와 안 교수는 강정마을 사람들이 다시 옛날의 정다운 이웃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마을 안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 같은 명절만이라도 찬반을 떠나서 서로 인사를 하고, 서로 의견만 다를 뿐 같은 마을사람이고 형제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사진전을 통해서 답을 내거나 마을이 갑자기 하나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경계지점에서 처음으로 건네는 한 송이 작은 꽃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이런 움직임이 시작돼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거칠 것 없이 불어 닥치는 외풍에 서로 마음을 꽁꽁 닫아걸었던 강정마을 주민들. 언제나 그들이 마음을 열지 모르지만, 추운 겨울에도 땅속에서는 싹 틔울 준비를 하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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