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극진한 조상 모시기에 지역별 개성 물씬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김종길의 시 ‘설날 아침에’가 떠오르는 음력 새해 첫날, 각 가정엔 일가친척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茶禮)를 올린다. 임진년이 시작된 23일 아침, 전국의 각 가정에서 정성껏 차린 차례상은 지역의 특산물과 가문의 전통에 따라 같은 듯 다른 모습이었다. <단비뉴스>는 전국 주요지역의 차례상이 어떤 특색을 보이는지 실제 상차림을 비교했다.

전라도 “홍어가 빠지면 섭섭하죠

 

▲ 전라북도 김제시 행주 기씨 기병채(80)씨 집 차례상. ⓒ 김희진
▲  전라도 차례상에 올라가는 참조기와 홍어찜. ⓒ 김희진

곡창지대와 해안이 넓어 먹을 거리가 풍성하고 음식문화도 발달한 전라도에서는 차례상에 다채로운 음식이 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게 홍어다. 홍어는 양념무침, 홍탁(삭힌 홍어), 탕, 찌개, 포 등 먹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제사상에는 찜을 해서 올린다. 양쪽 몸체의 결을 따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솥에 넣어 쪄낸다. 이와 함께 병어와 낙지, 꼬막처럼 지역에 흔한 어패류가 상에 많이 오른다. 

 

▲ 군산 해망동 수산시장에서 판매하는 홍어. ⓒ 김희진

경상도 “통째로 익힌 문어와 돔배기로 통 크게

바다로 둘러싸인 경상도 지역에서도 생선류가 차례상에 많이 오른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로 '돔배기'라 부르는 상어고기가 안동 등 경북 일부 지방에선 필수적이다. '납새미'(가자미), 민어 등도 많이 쓰는 편이다. 문어와 닭은 통째로 쪄서 올리는데, 과거엔 찜닭을 올리는 집이 많았으나 요즘은 점점 이런 풍습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안동 지방에서는 간고등어를 올리는 것도 특징이다. 내륙 지역인 안동의 선조들이 해안 지역에서 산 고등어를 싱싱하게 보관하기 위해 소금을 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 부산광역시 경주 김씨 김광수(58)씨 집 차례상에는 상어고기와 통째로 익힌 문어를 올린다. ⓒ 김강민

충청도 “꿩 대신 닭으로 계적 올립니다

충청도 차례상에서는 통째로 삶아낸 닭 위에 달걀 지단을 올리는 ‘계적’이 눈길을 끈다. 원래 꿩고기를 올려야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닭고기를 올리던 풍습이 계적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닭마저도 못 구하는 경우에는 계란을 쓰기도 했다고.

 

▲ 닭으로 만든 ‘계적’이 올라간 충청남도 공주시 함평 이씨 이모(65)씨 차례상. ⓒ 진희정

옛날부터 차례상에는 하늘과 땅, 바다에서 각기 나는 고기나 생선을 굽거나 지져 ‘적’을 만들어 올렸는데, 닭으로 만든 것을 계적, 쇠고기로 만든 것을 육적, 생선을 통째로 사용한 것을 어적이라고 한다. 이 중 날개가진 것을 대표해서 꿩을 올린 것인데, 귀한 꿩을 구하기 어려운 집은 닭을 썼다는 것이다. 충청도에서는 요즘도 명절이 다가오면 재래시장에서 생닭을 수북이 쌓아놓고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설을 맞이해 충청도 시장에서는 생닭을 판매한다. ⓒ 진희정

강원도 “다양한 산나물과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

 

▲ 강원도 강릉시 강릉 최씨 최종승(67)씨 집 차례상. 아래는 가오리찜. ⓒ 엄지원

강원도는 영서와 영동, 즉 내륙과 해안지방의 차례상 분위기가 다르다. 해안 지대인 강릉의 경우 생선류를 많이 쓰고 산지에서 나는 버섯과 나물류도 다양하게 요리한다. 내륙 지방인 원주의 경우 산악지대가 많아 논보다 밭농사가 발달한 탓에 각종 나물과 배추, 무 같은 고랭지 작물들이 제사상에 많이 오른다. 메밀로 부친 전을 상에 올리는 경우도 많다.  

 

▲ 강원도 원주시 청주 이씨 이흥찬(79)씨 집 차례상. 시계 방향으로 고사리 무침, 도라지 무침, 배추 메밀전, 녹두전. ⓒ 엄지원

경기도 “통북어와 녹두전으로 다산과 풍요 희망

 

▲ 통북어와 녹두전이 돋보이는 경기도 양주시 광산 김씨 김모(60)씨 차례상. ⓒ 김윤정

경기도에서는 차례상에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통북어를 올리는 데 신경을 쓴다. 또 녹두를 갈아 배추를 고명으로 넣고 만드는 녹두전도 필수 품목이다.  생선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적게 올리는 편이다. 

 

▲ 김씨 집에서는 3대까지 차례를 지내는데 조상에 따라 떡만두국과 술잔을 교체한다. 보통 북부지방은 만둣국을, 남부지방은 떡국을 올리는데 중간 지점인 경기도에서는 떡만두국을 상에 올린다. ⓒ 김윤정

제주도 “옥돔, 한라봉 등 지역 특산물로 극진하게

 

 ▲ 제주도 제주시 제주 양씨 양은철(40)씨 집 차례상. 옥돔, 한라봉 등 제주도 특산품을 상에 올린다. ⓒ 양호근

제주도 차례상에는 옥돔이 꼭 올라간다. 제주도에서는 옥돔만 생선이라 부르고 다른 어류는 고유 이름으로 부를 만큼 옥돔을 특별하게 여긴다. 반드시 마른 옥돔을 구워서 진설하고, 때로는 생옥돔으로 국을 끓여 함께 올리기도 한다.
 
과일로는 감귤이 올라가는데, 신품종으로 한라봉이 개발되면서 값이 비싼 한라봉으로 차례상에 정성을 들이는 집들이 많다.


 

* 이 기사의 취재에는 김강민, 김윤정, 양호근, 엄지원, 진희정 기자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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