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명함을 돌리고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의 처음으로 내 이름을 달고 나간 기사가 있었다. 평범한 트렌드를 보여주는 기사였지만 ‘첫 경험’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듯 내게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인터넷에 올라간 기사의 댓글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숨이 멎는 듯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내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겠다.’

독자일 때는 편했다. 정말 ‘기사’라는 생물을 창조하는 것이 이렇게 천지창조만큼이나 어려운 일인지는 몰랐다. 그저 쏟아지는 관급 보도자료만 받아쓴다면 모를까? 새로운 기사를 발굴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나름대로 어렵게 발품을 팔아 확인하고 쓴 기사였는데 그런 취급을 당하니 속이 상했다.

그렇게 ‘기사 만들기’가 어렵다보니 갖가지 기사가 다 쏟아진다. 매일매일 세상을 찬찬히 뜯어보고 나름의 시각과 촉수로 ‘뉴스’를 건져 올리지 못하는 기자는 무능력자 취급을 받게 되니 더욱 열심히들 기사 찾기에 나선다. 천안함 침몰로 백령도 취재를 갔을 때도 그랬다. 확실하지 않은 기사들이 진실인 양 쏟아졌다.

그나마 오보는 낫다. 오보를 해명하는 단계에서 새로운 팩트가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신념’을 갖고 어떤 사실을 규정지으려 들면 또 못 할 것도 없는 것이 기사다. 본인들은 확신을 갖고 썼다 해도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주제에 맞게 잘 배열해 무언가 의미 있는 기사처럼 억지를 쓰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식으로 말하면 “세상에는 옳은 결과를 초래하는 옳지 않은 선택도 있으며, 옳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옳은 선택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래도 “그건 옳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쯤 되면 도대체 기자라는 사람들이 쓰기 위해 사는지, 살아남기 위해 쓰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예전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들었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라 PD가 직접 입력해 넣은 기계음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시크하고 멋진 도시남성’을 자처하는 이 ‘윌슨’이라 가상의 인물이 저녁마다 방송을 마칠 때 쏟아내는 말이 예술이다. ‘여러분, 살아남으세요. 저도 살아남을게요.’ 기자 생활을 하다보면 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오늘은 살아남았나, 내일은 무엇을 가지고 살 수 있나. 아침 조간을 펼칠 때마다 두근두근한다. 같은 출입처에 나오는 다른 이들은 어떤 기사를 썼나? 나는 같은 사회현상을 보고도 무엇을 놓쳤나? 매일매일 살아남아야 하는 투쟁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오버’와 ‘오보’가 튀어나온다.

물론 나도 여기서 100%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런 말들을 늘어놓을 자격이나 주제가 되는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단비뉴스>를 창간하는 여러분께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독자들에게 ‘배부른데 더 먹이는 기사’는 쓰지 맙시다. 저도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하루하루 더듬이를 세우고 참회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세상의 기자 중 10%만도 안 되는 이들만이 진짜 ‘기자’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기자가 된 지 한 달이나 채 됐을까. 어느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다. ‘기자가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얼싸안아 주면서 귤을 손에 쥐어 주던 그 따뜻한 손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차마 그 분들에게 ‘취재만 온 것이고 기사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너무 부끄럽고 할 말이 없어서 그 분들과 함께 밤을 새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 풋내기인 지금, 어느새 그런 분들의 하소연에 무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부끄럽다.

세상에는 정말 쓸 게 많은데 여러 가지 이유로 기사화하지 못 하는, 기사화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지어내지 않아도 무리하지 않아도 기사거리는 어딘가에 널려 있을 것이다. 언론사는 부지기수로 늘었는데 내용은 점점 획일화해 가고 있다.

이런 모순들을 여러분과 함께 조금씩이나마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정말 순진한 생각일지라도, 기사를 써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일지라도, 그래도 잊지 말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자 여러분과 하는 약속이다. ‘여러분, 정말 ‘기자’로 살아남으세요. 저도 살아남을게요.’

황경상 /경향신문기자(1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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