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조의표명 미흡’ 사설은 의제설정자 아닌 관전자
‘퍼주기’ 재개 등 평화공존과 실리의 대북정책 견인해야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당나라 역사책인 <구당서>에는 백제 무왕이 죽어 의자왕이 상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당 태종이 소복을 입고 곡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 태종은 또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살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해 당나라에서 고구려 정벌론이 대두하자 “상을 당한 틈에 정벌하고 싶지 않다”며 일단 조문사절을 보내고 보장왕을 인준한다. 그러나 나중에 당나라가 삼국의 분열을 틈타 상당한 영토를 탈취한 것은 다 아는 바와 같다. 중국의 외교정책은 그럴듯한 명분과 별도로 철저히 실리를 추구하는 전통이 뿌리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중국은 최고 지도부 9명 전원이 베이징 북한대사관으로 찾아가 조문하고 어느 나라보다 먼저 김정은 체제를 인정했다. 조문외교에서 주도권을 확보한 중국은 식량지원과 함께 경제협력을 가속화할 것이라 한다.

그러나 남한은 가장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동족국가이면서도 명분과 도덕을 기준으로 외교를 한다. 정부는 북한 주민에게만 위로의 뜻을 전하고 민간인 조문도 엄격히 제한했다. 상주가 아닌 문상객에게 조의를 표하고, 문상 가겠다는 사람을 말리는 꼴이니 실은 도덕과도 거리가 멀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최고 책임자에게 조의를 표할 수 없을뿐더러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는 전략이라는데, 그거야말로 명분에 치우쳐 남북관계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태도이다. 개인이 상가에 갈 때도 망자와 안면도 없으면서 상주를 위해 문상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평소 껄끄러운 관계도 상가에서는 쉽게 풀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조문 국면에서 정부뿐 아니라 <한겨레>의 역할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겨레>는 창간 때부터 민족을 앞세우는 전향적 보도로 남북 화해와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데 힘써왔다. 김일성 주석 사망 때 극심했던 ‘남남 갈등’이 이 정도나마 누그러진 데는 <한겨레>의 역할이 작지 않았을 터이다. 이번에도 보수 편향의 적대적 보도를 희석시키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다.

그러나 지난 1주일 <한겨레> 보도는 아쉬운 부분도 꽤 있었다. 특히 첫날인 20일치 사설은 <한겨레>만의 시각을 보고자 했던 독자들을 실망시켰을 듯하다. 김일성 사망 때 경험에 비추어 조문이 핵심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한데도 통단 사설에 ‘조의 표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식으로 한 줄 걸치고 넘어갔을 뿐이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조의 표명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별도로 내보내 이슈화를 시도했다. <중앙일보>는 보수신문이면서도 사설에서 조문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을 정부에 주문하고, 논설위원 칼럼에서도 ‘대북 조문, 굳이 막을 일 아니다’라며 발 빠르게 치고 나갔다. <한겨레>는 조문단 방북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다음날에야 미흡한 조의 표명을 비판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조의·조문에 관한 한 <한겨레> 사설은 의제설정자가 아니라 관전자의 위치에 머물고 만 셈이다. 외교도 의제설정도 시의성과 구체성이 핵심 아닌가?

<한겨레>가 24일치 사설에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남북관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평가한 대목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이 사설은 정부의 미숙한 조문외교를 질타한 22일치 1면 머리 ‘한반도 조문외교 한국이 안 보인다’ 등 일련의 기사와 내용 자체가 상충한다. 사설의 의도야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고 있다”는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후속 조처를 촉구하려는 것이지만,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4년간의 행적과 이번에 저지른 정부의 실수들이 너무나 뼈아팠다.

조의 표명과 유엔 총회장 묵념 거부까지 미국과 공조하는 한국의 태도가 북한과 중국에 어떻게 비쳤을까? 막상 미국은 공조에서 벗어나 직접 북한과 식량지원을 논의하고 있다. 주변국은 모두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데 우리만 ‘혈맹’인 ‘영원한 우방’을 짝사랑하겠다는 건가? <한겨레> 사설까지 칭찬을 하니 대통령 입에서 “북한도 우리가 이 정도까지 하리라 생각 못했을 것”이라는 자화자찬이 나올 만도 하다.

이 국면에서 진보언론은 어떤 보도태도를 취할 것인가?첫째, 쏟아지는 북한 관련 뉴스에 다른 이슈들이 묻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집중보도가 불가피하다 해도 ‘디도스 공격’과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 시국사건들이 요즘처럼 홀대받아서는 안 되리라.

둘째, 북한 체제 비판에 성역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 시기에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정부에는 외교적 실책이 되겠지만 언론은 다르다. 북한의 실상을 파헤치고 개혁과 개방을 촉구하는 것은 진실규명과 인도적 차원의 문제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은 좌파 신문이지만 북한을 신랄하게 파헤치고 모험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셋째, 남북을 막론하고 보수강경파의 득세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대치관계가 기득권 유지에 유리한 그들은 남북 관계의 해빙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미·중·일 강대국들도 툭하면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가는 남과 북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가 쉽다.

넷째,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도 거부하고 있는데, 지금이야말로 ‘퍼주기’를 재개할 때라고 본다. ‘퍼주기’를 둘러싼 ‘남남 갈등’이 심했지만, 이는 시혜가 아니라 우리가 도움을 받는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이다. 남아도는 쌀을 퍼주고, 남북 경협으로 남한의 자본·기술이 북한의 토지·노동과 결합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한다면 ‘퍼주기’가 아니라 ‘퍼오기’가 아닌가? 방위비와 통일비용 절감, 국가신용등급 상승 등은 따라오는 보너스다.

다섯째, 이런 모든 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남남 갈등’은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다. ‘남남 갈등’을 무조건 덮으려는 시각이 있는데, 갈등의 노출은 해결로 가는 시발점이다. 진보언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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