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벌고 영어도 배우려 이태원에 몰려들지만…

"Okay, fifty two thousand won. Thank you. (네, 52,000원입니다. 감사합니다.)"

대학교 3학년 김완기(25)씨는 이태원 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집과 레스토랑까지는 1시간 30분 거리. 아르바이트 시간까지 합하면 10시간 넘게 투자하는 셈이다. 하루 중 절반 가까운 시간이지만 외국인 밀집지역인 이태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영어 실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결심했다.

“영어가 아니고서야 이곳까지 와서 아르바이트를 할 이유가 없죠. 전체 손님 중 70%가 외국인이에요. 돈 벌면서 영어공부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일부러 이태원으로 왔어요.”

최근 대학생들에게 외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지역의 아르바이트가 인기다. 대부분 취업이나 어학연수를 앞두고 있는 대학생들이다. 보통 아르바이트는 거주지나 학교 주변에서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태원, 홍대 등 외국인이 많은 지역은 예외다. 외국어 능력을 필수로 요구하는 요즘 돈도 벌면서 회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 이태원의 한 인도레스토랑 입구에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는 광고가 붙어있고, 그 앞으로 외국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 서동일

아르바이트 중개업소 알바몬 영업마케팅팀 안수정씨는 “외국인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지역의 일자리는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며 “이태원뿐 아니라 홍대, 종로 등 게스트하우스가 밀집된 지역의 아르바이트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르바이트 중개업소인 알바인에 등록된 채용정보는 총 17만여 건. 이 중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4천여 개로 전체의 2.4%다. 인기에 비해 일자리는 많지 않아 경쟁도 치열하다.

이태원의 편의점에서 4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치현(20)씨는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좋아 방학 중에는 주변에서 아르바이트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학기 중에도 주말에는 자리가 없다”며 “지금 자리도 발품을 팔아 겨우 구했다”고 말했다.

알바인 기획서비스팀 신정은씨는 “외국인을 많이 상대하는 아르바이트의 경우 주문이나 계산, 전화대응 등 간단한 회화 수준을 요구한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외국어 실력을 향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영어 학원비를 부담스러워 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어실력향상 큰 도움 안 되고 학업에 큰 지장

영어를 직접 쓸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실제로 영어 회화능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경험자들도 많다. 외국인과 말할 기회는 좀 있지만 계산이나 주문 관련 대화가 대부분인 탓이다.

 

▲ 1980년대를 전후로 한국을 대표하는 쇼핑타운으로 급성장해, 서울에서 처음으로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태원은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

1년 6개월 째 이곳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고 있는 고상희(21)씨는 “메뉴를 말하고 주문을 받는 게 거의 전부일 정도로 같은 영어만 반복한다”며 “주문 외 대화라 해봤자 '소스를 더 달라'거나 '휴지를 달라'는 요청에 '예스'라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태원 아르바이트는 주로 밤시간에 오래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낮에 공부하는 데 큰 지장을 받기도 한다. 레스토랑에서 3개월 째 아르바이트 중인 대학생 오수영(22)씨는 “집이 멀어 일하는 시간에 오가는 시간까지 합하면 심할 때는 하루 14시간을 밖에서 보낸다”며 “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어 오히려 학업에 지장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밤에 손님 서비스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학교 과제를 못해 가거나 수업시간에도 졸다 보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도대체 내가 학생인지 뭔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안 되는데도 대학생들이 몰리는 이유는 등록금 마련과 영어 공부 중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영어 성적을 필수로 요구하지만 등록금과 생활비에 매달 20만원이 넘는 영어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런 현실이 이태원에서 타개되는 것도 아니다. 그룹 유브이(UV)는 <이태원 프리덤>에서 '젊음이 가득한 세상'으로 이태원을 노래했지만, 거기서 아르바이트 하는 대학생들에게는 딴 세상 얘기일 뿐 자유가 없다.


* 이 기사는 <한국경제> 기자 채용 서바이벌 게임인 '나는 기자다 2011' 본선 1차 경연에서 '대학가 풍속도'를 주제로 쓴 것입니다. 서동일 기자는 1,2,3차 경연을 모두 통과했으나 채용일정이 겹쳐 <동아일보>에 입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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