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귀농은 낙향이 아닌 전직(轉職)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인 농업이 새로이 각광을 받고 있다. 농촌은 '떠나야 할 곳', 농업은 '사양산업'이란 말도 이제 옛말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3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던 이성희(31ㆍ충남 서천)씨는 반복되는 일상에 회의를 느껴 귀농을 결심했다. 버섯을 재배하기로 마음먹고 여러 농장을 다니며 재배 기술과 농장경영 방법을 익혔다. 100평으로 시작한 농장은 5년 만에 1800평 규모로 커졌다. 작년 매출은 4억원을 넘었다. 그의 동생 이희영(28)씨도 3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했다. 형과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일도 배우면서 자신만의 농장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손해보험사 지점장으로 근무하며 7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던 권영신(50ㆍ경남 하동)씨는 2006년 귀농했다. 바쁜 도시생활을 접고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농촌일은 전혀 몰랐다. 귀농학교에 다니면서 3년간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를 했다. 귀농 5년째인 권씨는 블루베리와 매실을 재배해 1억원이 넘는 연매출을 올린다. 심리적 안정이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익도 얻었다.

▲ 연도별 귀농귀촌 현황 (단위: 가구). ⓒ 서동일

귀농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1년 800가구이던 귀농가구가 2009년 4000가구를 넘어섰다. 한 해 평균 1만명 이상이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있다. 사오십대 베이비붐 세대들은 제2의 직업으로, 이삼십대 젊은 세대들은 취업난을 피하고 자신만의 '블루오션'을 개척하기 위해 농업을 택한다.

이성희씨는 "농업은 어렵고 힘들다는 편견 탓에 다들 기피하지만 농업만큼 큰 가능성을 가진 분야도 없다"며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영신씨 역시 "농업으로도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고 도시보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농업인들 친환경·SNS 활용 ···복합산업으로 발전

농업도 변하고 있다. 식품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기농, 친환경 등 고품질 전략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많아졌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정보화 기술이 발달해 홍보도 훨씬 쉬워졌다. 농가와 소비자의 직거래도 늘어나 유통과정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젊은 농업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1차산업에만 머무르던 농업이 농촌체험마을 등 관광·서비스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며 복합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 정촌유기농원의 김민구씨. 그는 복합영농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지난 2000년, 26살이란 늦은 나이에 한국농업대학교에 입학했다. ⓒ 서동일

유기농 딸기를 재배하는 박연순(40ㆍ경북 고령)씨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를 함께 운영한다. 농장 홍보효과뿐 아니라 직거래량도 늘어나 일석이조다. 백화점에 납품할 때는 교통비와 하차비 등을 농가에서 부담했지만 SNS를 이용하고부터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박씨는 "중간 유통과정을 생략해서 생기는 이익을 소비자와 생산자가 나눠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섣부른 귀농은 실패 위험 커

귀농이 꼭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농촌을 경험해보지 못한 도시민은 농지 마련, 재배 작물 결정, 유통 등 많은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겪는다. 귀농인들 모두가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실패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이두선(30ㆍ서울)씨는 지난 2009년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경북 의성으로 귀농했지만 1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이씨는 "농업도 잘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귀농했지만 준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귀농을 생각한다면 귀농지원센터, 전국귀농운동본부 등 다양한 단체를 적극 활용해 재배 노하우나 농촌에 정착하는 방법 등을 충분히 공부한 뒤 내려갈 것을 당부했다.

농촌경제연구원 성주인 농촌발전팀장은 "지난 2001년 신규 취업농민 중 귀농인은 5% 남짓이었지만 최근 30%를 넘어 농업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귀농인이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이디어를 갖고 농업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귀농인이 많아 농업혁신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농업도 얼마든지 유망한 직업이 될 수 있으며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음을 귀농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이 기사는 <한국경제> 기자 채용 서바이벌 게임인 '나는 기자다 2011' 본선 3차 경연에서 '직업'을 주제로 쓴 것입니다. 서동일 기자는 1,2,3차 경연을 모두 통과했으나 채용일정이 겹쳐 <동아일보>에 입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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