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권동현 세명대 10대 총장, 취임사 대신 PPT로 비전 발표

“공부는 한 명이 하고, 연애는 두 명이 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은 세 명(세명대)이 합니다.”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2일 오후 충북 제천시 세명대학교 컨퍼런스홀. 세명대 제10대 총장 권동현 박사가 무대에 올랐다. 프레젠테이션 리모컨을 손에 쥔 채 곧바로 새 슬로건 ‘재미있는 경험-세명대학교’를 발표했다. 지난달 21일 이사회에서 총장으로 선임된 권동현 총장의 취임식이다. 

▲ 권동현 박사가 취임식에서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 이예진

학생이 머무는 재밌는 학교

올해 43살로 세명대 설립자인 고 권영우 전 총장의 아들인 권동현 총장은 취임식에서 젊은 감각을 보여줬다. 임명장 수여와 교기 이양, 취임사 같은 통상의 의례적 절차는 없었다. 대신 권 총장이 직접 20분 동안 학교 비전을 발표했다. 넓은 강당에 내외빈 500여 명이 참석하던 기존 취임식과 달리 행사 규모도 크게 줄였다. 행사장에는 주요 보직자 등 교직원 80여 명만 참석했다. 외부 초청인사의 축사는 영상물로 대체했고, 대부분의 교직원들은 온라인으로 취임식을 지켜봤다.

▲ 세명대학교는 코로나19 등을 감안해 현장 참석을 최소화하고 온라인으로 행사를 중계했다. ⓒ 이예진

권 총장은 지방대학의 어려움을 젊은 감각으로 헤쳐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지방대가 너무 어렵고 세명대도 예외가 아니”라며 “기존 모토인 ‘학생 경험 중심 대학’에서 재미를 더해 학생들이 재미를 느끼는 대학교, 겨우 수업을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대학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권동현 총장은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할 정도로 연중 이벤트를 열겠다고 밝혔다. 무엇을 할지는 학생이 정한다. 학생으로만 구성된 ‘13명 위원회’(열‘세명’위원회)를 이달 안에 만들어 위원회가 이벤트를 제안하면 캠퍼스에서 이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권 총장이 이미 기획한 이벤트도 많다. 학교 안에 버스를 한 대 들여와 학생이 세 명 이상 모여 있으면 버스에 태워 어디든 떠나거나, ‘할머니와 화투 세 번’ ‘엄마와 세 시간 쇼핑’처럼 임무를 수행하면 세명대 굿즈(상품)를 주는 식이다. 모든 이벤트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중계한다.

권 총장은 대학 환경도 바꾸겠다고 밝혔다. 캠퍼스 내 공원 이름을 ‘뭐든지 광장’으로 바꿔 13명 위원회가 추진하는 이벤트 공간으로 만들고, 모든 학교 건물 1층에 카페를 만들어 학생들이 쉬며 머물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또 학교 안에 있는 골프연습장을 활용해 교양수업으로 골프 강좌를 개설하고, 새로 짓는 체육관에서 수영을 배우게 하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 학생들의 '재미'를 강조한 취임식 컨셉에 맞춰 인기 드라마 '오징어게임' 제목 디자인에서 따온 이벤트용 로고. ⓒ 이예진

‘재미있는 학교’ 학령인구 감소 극복할까

“설립자가 생전에 했던 말이 있습니다. '호적은 바뀌어도 학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학적도 바뀌는 시대입니다. 학과가 바뀌고, 내가 다니는 학교가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학적에 영원히 '세명'이라는 이름을 쓰면 좋겠습니다.”

절박함이 느껴지는 말이다. 신임 총장 취임식에서 공공연히 '학교가 사라지는 시대'가 언급되는 건 지금 지방대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충원율이 급락하며 눈앞의 현실이 된 지방대 위기에서 세명대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학령인구가 크게 줄고 있는 게 큰 원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50만 명이 대학에 입학했다. 10년 전 61만 5000명에 비하면 무려 11만 명이 넘게 줄어든 것이다. 수도권까지 포함해서 지난해 전국 336개 대학 충원율이 91.4%다. 미충원 규모는 전국적으로 4만 명이 넘었다. 이 가운데 75%인 3만 명이 세명대를 포함한 비수도권 대학이 차지하는 상황이다.

▲ 지난해 발표된 대학 입학정원과 입학생 수 추이. 최근 몇 년 사이 입학정원은 눈에 띄게 줄지 않은 데 비해 입학생 수는 크게 떨어졌다. ⓒ 교육부

전국의 지방대가 위기를 맞은 가운데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대학'이 되는 것만으로 세명대가 어려움을 벗어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권 총장은 고등학생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꿈 실현 장학금'을 주겠다며 신입생 확보 방안도 제시했다. 물론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입학을 장담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권 총장은 장학금 재원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자신이 사비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 혁신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이병준 기획실장은 “구체적인 대상과 장학금 액수와 지급 방법을 정해 이르면 다음 학기에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교육과 연구, 산학협력 등 대학의 기본적인 사업 전반에도 활기를 불어넣는 체제 개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경험’을 앞세운 40대 총장의 실험이 이제 막을 올렸다.


편집: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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