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수술•중병치료 어려운 지역 많아...의료민영화 땐 더 심각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4부] 아프면 망한다

서울 생활을 청산한 뒤 귀농할 꿈을 안고 충북 단양에서 거주할 황토집을 직접 짓던 박찬남(60・가명)씨는 지난 달 14일 갑자기 불어온 강풍에 합판이 떨어지면서 왼쪽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급히 택시를 타고 단양에서 유명하다는 정형외과를 찾았지만 병원 측은 응급처치만 해준 뒤 ‘더 이상 치료는 불가능하니 큰 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박씨는 일단 임시숙소인 공사현장 옆 컨테이너에 돌아가 쉬다가 도저히 통증을 견딜 수 없어 사흘 만에 강원도 원주시의 원주기독병원으로 갔다. 이곳은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부설로 817개의 병상을 보유한 대형 병원이다. 박씨는 부러진 뼈를 잇는 수술을 받고, 지금은 통원치료 중이다.

“단양에도 꽤 큰 병원이 있어요. 하지만 환자가 없더라고요. 이 병원에 비하면 거기 의사들은 인턴(견습의사) 수준밖에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우왕좌왕하고 치료도 제대로 못 하고........자기네들도 큰 병원을 권하더라고요.”

지역병원서 치료 못 받아 큰 병원 가야하는 환자들

단양서 원주까지 오가는 일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박씨의 차로 오가는 데 3시간이 걸린다. 지난달 22일 <단비뉴스>와 만난 박씨는 이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 오전 9시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정오가 넘도록 병원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병원 한 번 다녀가는데 하루를 다 보내게 생긴 셈이다. 한 번 병원에 오면 진료비 외에 교통비, 식사비 같은 부수적인 돈도 꽤 들어간다. 도로통행료와 기름값만 해도 3만 원 정도 든다. 4시간 넘게 주차하면 30분 당 800원의 주차비도 내야 한다. 

“불편하죠. 가까운데서 치료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여기 와야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할 수 없죠. 실밥을 뽑을 때까지는 당분간 매주 한 번 와야 한대요.”

▲ 다리 수술 후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박씨(좌)와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원주병원을 찾은 쌍둥이 남매와정씨(우). ⓒ 윤성혜

정미진(30・가명・충북 음성)씨는 한 살배기 쌍둥이 남매가 감기에 걸려 동네병원을 몇 번 찾았지만 증상이 계속 심해져 원주기독병원으로 왔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다녔는데 낫질 않아요. 덜컥 겁이 나서 이리 왔어요. 여긴 유명한 의사선생님도 있고, 쌍둥이도 이 병원에서 낳았거든요.”

정씨는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집에서 가까운 의원에서 낳을까 했지만 ‘우린 겁나서 못 받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어 원주까지 왔다고 말했다. 정씨 동네의 산모들 중에는 쌍둥이가 아닌데도 원주까지 와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곳에선 의사도 아이 받기를 겁내고, 산모들도 의사를 못 미더워하기 때문이란다.

정씨는 이 병원에 올 때 마다 친정아버지가 운전해 주는 승용차를 타는데, 왕복 3시간에 기름값과 도로통행료 등 교통비로 5만 원을 쓰고 진료비로 4만 원 정도가 든다고 말했다. 정씨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편과 따로 살고 있는데, 현재 아무 수입이 없어 전적으로 친정 부모의 신세를 지고 있다. 한부모 가정이라 정부에서 매달 한 아이 당 5만원씩 지원해 주는 것 외엔 분유값, 기저귀값, 병원비 등 월 100만 원 이상의 양육비를 부모 도움에 의존한다. 아이들이 한 번씩 아플 때마다 정씨의 마음은 천근처럼 무거워진다.

“안 그래도 죄송한데 쓰지 않아도 될 돈까지 나가니 너무 미안하고, 삶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성에도 실력 있는 의사들이 있어서 멀리 안 나와도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지난 달 12일 위암수술을 한 조영석(64・가명・충북 제천)씨도 제천에는 암 수술을 해줄 의사가 없어 원주병원을 택했다고 말했다. 수술 후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왕복 2시간 거리를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며 오가고 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왕복 2만원씩 드는 교통비도 부담이지만, 왔다 갔다 하는데 힘이 빠져서 항암치료가 더욱 힘들다고 호소한다.

▲ 조씨가 2박3일동안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꾸려온 짐들. ⓒ 윤성혜

“큰 병원은 수도권이나 큰 도시에만 집중돼 있는 게 불만이에요. 우리 지역에도 좋은 병원이 있으면 이렇게까지 고생하고 힘들진 않겠죠.”

원주기독병원 외에 강원도에서는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과 강릉아산병원이, 충청도에서는 충남대병원과 대전성모병원 등이 거점 병원의 역할을 한다. 난치병 등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수술 등의 경우 이런 대형병원이 맡는 게 당연할 수 있지만 응급환자치료나 임산부의 출산, 일반화된 외과수술조차 맡아줄 병원이 없는 지역이 많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역 거점 병원들에 비해 서울 쏠림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고속철도(KTX) 노선이 늘어나 서울로의 접근성이 훨씬 나아지면서 쏠림현상은 가속화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분석에 따르면 ‘빅4'로 불리는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의 지방 환자 비율은 2002년 41.2%에서 2007년 48.5%로 늘었다.

많은 환자들이 서울 등 대도시 병원을 선호하면서 지방병원과의 불균형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일단 지역병원들은 경제적인 타격이 크다. 전국의 지방공사의료원 34곳 중 31곳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부채규모가 2007년 4196억 원에서 2010년 4826억 원으로 늘었다.

의사들이 근무 여건과 처우가 좋은 대형병원을 선호하고 중소도시 등 지역으로는 가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의료 인력의 쏠림현상도 뚜렷하다. 통계청의 의료직종 전체 인력 조사에 따르면 대도시 지역 의사 수는 2005년도 100병상 당 98.2명에서 2008년 153.7명으로 대폭 증가한 반면 중소도시는 79.2명에서 102.1명으로 소폭 증가했을 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2009년 지역별 의사 1인당 담당인구’에서도 대도시와 여타 지역의 차이는 컸다. 의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 평균이 서울 456명, 부산 565명인 반면 울산은 902명 경북은 851명으로 2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의사들이 대도시에 몰리니 지방 환자들이 더욱 서울 등 대도시 병원으로 쏠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도시와 중소도시지역의 전체 의료인력(위), 지역별로 의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의 수(아래).

이 같은 ‘지역의료 공동화현상’은 이미 심각하지만 앞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영리병원, 즉 투자개방형의료법인이 도입될 경우 더욱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영리병원 체제에서는 ‘돈벌이’가 되는 대도시, 대형병원으로의 투자 및 의료인력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환자 '생명'보다 이윤추구가 우선인 영리병원

영리병원이란 병원을 세우고 운영하는데 외부자본을 끌어 쓸 수 있고, 병원 사업으로 낸 이윤을 외부투자자들에게 배분할 수 있는 의료법인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법에는 의사 개인이 자영업으로 개업을 하거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단체가 병원을 설립운영하거나, 학교법인•사회복지법인 등 비영리법인이 병원을 설립운영하는 세 가지 경우만 허용이 된다. 즉 의사 개인 소유가 아닌 민간병원은 모두 비영리법인인데, 이들 병원은 수익금을 반드시 병원 내에 재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영리병원(투자개방의료법인)의 경우,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서 시설개선 등의 투자를 할 수 있고, 이익이 나면 투자자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줄 수 있다. 한 마디로 병원이 보다 적극적인 ‘돈벌이’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와 한나라당은 의료산업에 외부 자금이 수혈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경쟁 원리를 도입하면 의료부문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하고, 기술과 서비스 수준이 높아지고, 의료관광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의료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 경제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9월 ‘투자개방형의료법인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를 통해 세계 의료관광 규모가 2004년 400억 달러(약 44조원)에서 2012년 1000억 달러(약 110조 원) 규모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영리병원 도입을 통해 국내 병원들의 경쟁력을 높이면 태국, 싱가포르, 인도처럼 해외 환자를 대거 유치해서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원은 의료서비스가 핵심 산업으로 부상할 경우 제약업, 의료기기제조업, 위생서비스업 등의 동반성장을 이끌 수 있어 이들 분야에서 약 18만 7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국회에는 영리병원 도입을 위해 ‘경제자유구역 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법’의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경제자유구역 특별법 개정안은 외국 영리의료법인의 개설 절차를 구체화하고 원격의료 등 운영상의 특례조치를 정한 내용이며, 제주특별자치법 개정안은 제주도 내에 의료 특구를 지정하고 내국인 투자개방형의료법인의 개설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정부 내에서는 그동안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등 경제부처가 영리병원 도입에 찬성하고 보건복지부가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올 9월 지식경제부 출신인 임채민 장관이 보건복지부를 맡게 됨으로써 ‘걸림돌이 제거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과거 직장과 지역 건강보험을 통합하는 작업에 반대했다가 면직당한 이력이 있는 김종대씨가 최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임명됨으로써 통합 건강보험체계도 함께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의료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정부여당의 이런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박형근 제주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영리병원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만큼 환자들이 치러야 할 비용도 높아지게 된다”며 “이는 결국 점진적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압박하고 민간의료보험 확산으로 이어져 심각한 의료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리병원이 도입돼 의료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장 경쟁에 노출되면 병원들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비급여’ 검사와 치료를 늘리는 방법 등으로 의료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엄격하게 의료비 지급을 통제하는 건강보험제도하에서는 큰 돈을 벌기 어려워 불만을 가진 병원과 민간보험사들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즉 모든 병의원에 건강보험환자를 받도록 의무화한 제도를 무력화하려 하거나,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돈 많은 사람들은 개별적인 민영의료보험 가입을 통해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지만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은 종전 보다 훨씬 높아진 의료비 부담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와 서민층의 의료 불안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적의료보험이 없고 민영보험이 보편화된 미국에서 현재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등 의료민영화(영리병원과 민영의료보험 등의 확대)에 반대하는 전문가집단과 시민단체들은 우리 현실에서 시급한 것은 ‘의료의 시장화’가 아니라 ‘의료의 공공성 높이기’ 즉 의료복지의 강화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병상수를 기준으로 국공립병원의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인 10% 남짓에 불과하고,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공공지출의 비중도 55.3%로 OECD평균인 72.5%에 훨씬 못 미친다. 전국민건강보험의 체계는 잘 갖춰졌지만, 건강보험이 책임져주는 의료비 비중, 즉 보장성 수준이 60%에 불과해 중병에 걸리면 파산하는 가정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또 병의원의 시설 및 인력 투자가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역의료공동화가 심각하다. 따라서 의료개혁의 방향은 이런 문제들은 더 심화시킬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의료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우리나라 공공지출 비율은 55.3%로 OECD평균인72.5%에 비해 현저히 적다.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영리병원이 서비스의 수준을 높일 것이라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가 매년 발표하는 미국 병원 순위를 보면 2010년 최상위 10개 병원 모두 비영리 병원이 석권했다. 공공성이 높은 병원들이 서비스의 수준에서도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학자 김명희 등이 펴낸 ‘의료 사유화의 불편한 진실’에 따르면 미국 학자들이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성과를 비교한 논문들을 분석한 결과 69편의 논문 중 41편이 ‘비영리병원이 우수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8편만이 영리병원의 손을 들어 줬다.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 간의 사망률 차이를 비교한 논문은 영리병원에서의 사망률이 비영리병원보다 2% 포인트 가량 높은 것으로 보고한다. 영리병원의 경우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간호 인력 등에 대한 비용을 줄여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장기요양시설을 기준으로 영리시설이 비영리시설보다 간호 인력을 약 31.7% 적게 고용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가 발표한 2010~11년 미국 병원 순위를 보면 비영리 병원이 1위에서 10위까지를 차지했다.

의료개혁, 민영화 막고 공공의 책임 높이는 방향으로

의료민영화 대신 의료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복지선진국인 영국, 스웨덴, 독일 등의 의료체계를 우리가 참고해야 할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현재의 우리나라보다 훨씬 국민소득수준이 낮았던 수십 년 전부터 보편적인 의료복지체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튼튼하게 했다는 것이다.  

영국은 1948년부터 전국민 무상의료 시스템인 ‘국가보건서비스(NHS)’를 가동하고 있다. 특정 치과치료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질병을 국가에서 무료로 치료해 준다. 물론 OECD평균보다 높은 29%의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 대비 조세 비중)이 보여주는 것처럼 국민들이 세금을 많이 내고, 국가가 의료비 지출을 꼼꼼하게 통제한다. 영국의 의사들은 1차 의료를 담당하는 개원의(GP•자영업)와 2·3차 병원의 월급쟁이 의사들로 나뉘는데, 국민들은 개원의 중 한 사람을 자신의 주치의로 두고 지속적으로 질병치료, 건강 상담 및 관리를 받는다. 개원의들은 자신이 맡은 환자의 질병예방실적, 즉 당뇨나 혈압의 사전관리 등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보상금)를 받기 때문에 국민 건강증진에도 도움이 되고 의료비지출도 절약하는 방향으로 진료가 이뤄진다. 정부의 의료비 지급은 총액계약제와 포괄수가제에 따른다. 총액계약제는 의료기관별로 연간 진료비를 총액으로 계약해 지불하는 방식이고 포괄수가제는 병명에 따라 치료비한도를 정하는 방식인데, 과잉진료와 진료비 부당청구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영국 NHS제도의 단점은 응급상황이 아닌 일반 환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8년 이후 토니 블레어 총리의 의료예산 증액 등 개혁정책의 결과 최근에는 대기환자 수가 현격하게 줄고 의사들의 처우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도 민간의료영역이 있지만 전체 의료비 중 민간의료보험의 지출 규모는 3.3%에 불과하다.

역시 정부가 의료를 책임지는 스웨덴은 암에 걸려도 1년 진료비와 약값이 우리 돈으로 약 50만 원을 넘지 않도록 상한을 정해두고 있다. 스웨덴의 국민의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9% 선을 차지하는데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비결 역시 총액계약제와 포괄수가제다. 스웨덴은 의료서비스의 수준도 높다. 2008년 '유로 건강소비자 조사(EHCI)'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의 의료서비스 수준은 유럽 31개국 중 5위였다. 스웨덴에는 ‘0-7-90-90’ 규칙이 있어서 1차 진료는 곧바로, 일반의 진찰은 7일, 전문의 진료는 90일, 수술 등은 90일 안에 시행하는 것을 보장한다. 환자는 직장에서 병가가 인정되면 사회보험청에서 평소 소득의 80%를 수당으로 지급받는다. 물론 이런 혜택은 스웨덴 국민들이 35%라는 높은 조세부담률을 수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 민간 의료서비스평가기관인 '의료소비자 파워하우스'가 발표한 '유로 건강소비자 조사(EHCI)'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의 의료서비스 수준은 유럽 31개국 중 5위, 독일은 6위를 차지했다.

사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독일 역시 본인부담 상한제가 있어 아무리 진료비가 많이 나와도 1년에 소득의 2%까지만 환자가 부담하면 된다. 역시 포괄수가제와 총액계약제를 운영해 과잉진료를 막고 진료비를 줄이고 있다. 독일의 조세부담률은 23.1%로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낮은 편인데, 대신 독일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소득의 7.5%를 의료보험료로 낸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공공형’인 유럽식과 ‘시장형’인 미국식의 중간쯤에 있다. 이 지점에서 정부는 영리병원 허용을 시작으로 미국형 시장주의를 따라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하면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도입되고, 경제자유구역이 확대되는 추세에 맞춰 영리병원이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측은 이렇게 될 경우 마이클 무어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에서 고발한 것처럼 돈 없이 아픈 환자는 죽을 수밖에 없고, 보험회사와 의료기관 등은큰 돈을 버는 ‘의료의 정글’이 장차 이 땅에서 현실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의료민영화를 막고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건강보험하나로 시민회의’는 이를 위해 건강보험가입자들이 1인당 1만 1000원씩을 더 내서 현재 60%인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90%수준으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현행법상 직장 가입자가 건강보험료 1만1000원을 더 내면 사용자도 1만1000원을 더 내야하고 정부가 4400원을 국고지원을 통해 더 내야하므로 연간 건강보험 재정이 12조원 정도 늘어나게 된다. 이 재정으로 치료비, 입원비, 초음파 진단 등의 비급여 항목을 줄이고, 환자들은 어떤 질병이든 연간 100만원만 부담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상한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회의 등은 영국, 스웨덴, 캐나다 등 의료복지선진국의 경우 공공병원 비중이 90%를 넘고 미국도 30%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10%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방을 중심으로 국공립의료시설을 늘려 공공병상비율을 30%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구 사무처장은 “공공병원이 늘어나면 과잉진료가 없어지고 의료재정낭비가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건강보험재정의 낭비를 막기 위해 현재 행위별수가제(개별 진료행위마다 비용 청구)가 적용되고 있는 의료비 지급체계를 선진국들이 적용하고 있는 포괄수가제 및 총액계약제로 전환하고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 체계적으로 국민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영국과 캐나다의 공공병원 비중이 98%인 것에 반해, 우리나라는 고작 7%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하면 의료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자리도 실질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전체 보건의료인의 47% 정도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지방병원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경영난에 처한 지방의 민간병원을 공공의료기관으로 전환하는 방법 등으로 시설과 인력 투자를 늘리면 상당한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제주의대 박형근 교수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은 의료민영화가 되지 않게 적절한 규제를 가하면서 동시에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함으로써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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