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론은 상대 주장 왜곡해 자기 입지 강화하려는 선동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미국 사회·경제체제 도입 막아야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상대방의 논리를 깨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왜곡하는 데 있다.’ 무슨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근거한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을 살펴보면 얻을 수 있는 결론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공방전에서 이명박 정권은 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을 구한말의 쇄국론자나 북한의 폐쇄경제 지지자쯤으로 몰아붙였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금 쇄국정책을 하자는 거냐”며 “에프티에이 반대론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매국노라 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 협정에 관한 한 노무현 대통령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과오가 있다. 그 또한 “쇄국하자는 거냐”며 상대방을 몰아붙인 적이 있다. 그러나 보수진영이 그를 끌어들인다면 억울한 부분도 있다. 그는 2008년 퇴임 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재협상을 주장했지만, 이명박 정권은 오히려 미국 요구를 더 반영한 협정안에 합의해버렸다.

자유무역협정은 결국 ‘개방이냐 쇄국이냐’ 논쟁으로 가버렸는데 그것은 논쟁이 아니었다. 평등한 양국관계와 경제주권 보장, 개방의 속도, 풀거나 지킬 것 등을 논의하면 되는데, ‘쇄국’ 얘기를 하는 것은 상대방 주장을 과장·왜곡해 자기 입지를 강화하려는 흑색선전이다.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도 “개화하는 데는 지나친 자의 폐해가 모자라는 자보다 더 심하다”며 조선 실정에 맞는 자주적 개화를 주장했는데, 요즘 ‘개화파’는 거침이 없다.

이번 협정의 이해득실은 어떻게 될까? 비교 방법은 간단하다. 한쪽에서는 쾌재를 부르는데 다른 쪽에서는 ‘잘했네 못했네’ 하며 집안싸움이 났다면 득실은 뻔한 것 아닌가. 미국의 요구로 시작된 재협상이 지난해 12월 타결됐을 때 미국 언론은 “한국이 놀라운 양보를 했다”고 보도했고, 협정 이행법안이 미 의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10월13일 이명박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에서 45차례나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최루탄이 터진 가운데 통과된 비준안이 극심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협정을 둘러싼 보도를 모니터링 해보니, 우리 보수/진보언론은 완전히 상반되지만, 외국 언론은 거의 다 미국의 이해관계가 관철된 것으로 보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의 대미 흑자가 줄어들 것이라 했고, <비비시>(BBC)는 한국 등 아시아에 대한 미국 수출이 100억달러쯤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요점은 흑자가 줄어드는 데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협정과 함께 미국의 법률과 국가모델이 한국에 강요된다는 데 있다. 미국은 경제뿐 아니라 의료·사회보장 등 사회시스템까지 망가진 걸로 판명된 지 오랜데 우리가 답습하자는 말인가? 칼 폴라니가 말한 ‘사회적 관계가 경제 시스템 안에 포함되는’ 사태가 도래한 것이다.

 

한-미 협정은 불평등하기도 하다. 우리는 협정에 어긋나는 국내법들을 대거 개정했고, 미국은 이행법 102조에서 한-미 협정 내용 중 미국법에 어긋나는 것은 무효라고 규정해놓았다. 우리 헌법은 조약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해 특별법인 협정이 우선이지만, 미국은 그것을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헌법은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이 있어 미국보다는 선진적인 헌법이다. 국가를 능가하는 일부 대재벌의 힘 때문에 사문화한 측면은 있지만, 경제 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법’이나 중소-대기업의 협력을 위한 ‘상생법’이 어렵사리 마련됐는데, 자유무역협정은 그것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제 민영 의료보험 규제도 어려워지고 공공서비스 민영화도 되돌릴 수 없는 추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벌 규제는 말할 것도 없다. 삼성 등 일부 대재벌이 계열 경제연구소와 언론사 등을 통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현안들을 미국의 힘을 빌려 일거에 해결한 결과가 됐다. 대기업 위주 ‘고용 없는 성장’은 계속될 것이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처럼 대대적인 사회변화를 초래할 협정 비준안이 통과된 다음날 <한겨레>가 1면 머리기사로 ‘통상주권 날치기 당했다’고 제목을 단 것은 시야가 좀 좁아 보였다. 통상만 문제되는 게 아니라 ‘경제주권’이 넘어간 것이고 미국식 경제·사회체제가 도입되고 우리 헌법정신이 침해된 것이다. 이상득 의원이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에게 귀띔했다는 표현을 빌리자면 ‘뼛속까지 친미’인 이 대통령과 행정부가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침해하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문제가 많은 협정이 그대로 비준에 이른 데는 반대편 주장을 왜곡·과장한 보수진영의 담론이 상당히 먹혀들어간 면도 있지만, 야당과 진보언론이 잘못 대응한 탓도 있다. 민주당은 애초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만 재협상하면 비준에 동의할 뜻을 비침으로써 마치 다른 부문에는 별문제가 없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한겨레>도 민주당 프레임을 따라간 측면이 없지 않다. <한겨레>는 또 비준안 처리가 ‘12월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해설기사(18일치)를 내보내 본의 아니게 22일 기습처리에 ‘연막탄’이 됐다.

노무현 정부 때 경제관료가 주축인 민주당 협상파는 전력 분산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안희정과 송영길 같은 당시 참모급들은 참여정부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보수진영에 이용당하는 ‘내부의 적’이 되고 말았다. 물론 <한겨레>는 한-미 협정의 문제점들을 꾸준히 파헤쳐왔고 16·17일에도 재협상이 미국과 우리 정부의 립서비스임을 지적하는 등 나름대로 큰 몫을 했다.

그러나 보수진영에 의해 <한겨레>가 마치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매도된 점은 향후 의제활동의 파급효과를 위해서도 한번 뒤돌아봤으면 한다. 선진국이 자본과 상품의 이동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후발국에 강요하면서 후발국이 가진 노동의 이동은 질서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는 게 세계화의 모순이라면, 진보 담론은 마치 교역 확대를 우려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보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주장하면서 맞받아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비준안 기습처리 때 박희태 국회의장은 구한말 개화파인 박규수의 묘소를 참배했다. ‘선각자의 고뇌’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박규수는 실은 자주적 개화파였다. 그는 평양감사 때 불법으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불지른 장본인이기도 했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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