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정혜정

▲ 정혜정 기자
대학에 테니스장이 있는데 테니스부원과 일반학생이 코트를 이용하려 한다면 누구에게 우선권을 주는 게 옳을까? 사물은 존재하는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를 좁게 해석한다면 테니스부원이 코트를 사용하는 게 옳다. 테니스장은 테니스부원들을 위한 것이고 그들 자신이 테니스를 위해 존재하니까. 그러나 테니스장의 설치목적을 넓게 해석해 선수양성이 아니라 일반학생의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한다면 일반학생이 사용하는 게 옳다.

정의를 추구하는 데 중요한 것은 어떤 사물이나 제도 또는 조직이 존재하는 목적을 특정하는 일이다. 어떤 기관의 적임자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조직은 목적을 갖고 있으며 그에 적합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정의롭다. 정치판이라면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사람, 곧 늘 정치를 해온 정당정치인이 우선 적임자로 떠오른다. 그러나 우리 정치판에서 기성 정치인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면 매우 회의적이다.

한나라당은 복지 등 대중의 욕구충족에 인색할 뿐 아니라 엊그제도 한미 FTA를 강행 처리하는 등 힘의 논리에만 의존해 정치실종의 주역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고 진보정당들은 사분오열돼 대안정당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와는 무관하던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가 돌풍을 일으킨 것도 기성 정치인들이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를 해본 적 없는 이들이 정치판에 뛰어들자 일부 계층과 보수언론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박원순 씨가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때 그들은 끊임없이 네거티브 공세를 폈다. 안철수 교수가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을 실행에 옮긴다”며 사회에 1500억 원을 환원한 데 대해서도 삐딱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장관은 안 교수의 기부를 ‘정치적 행보’로 규정하며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말라고 비난했다.

보수언론에서는 안 교수가 재산 환원을 정치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았다. “만약 그가 정치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면 똑 부러지게 대답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며 프로정치인이 아닌 박원순 변호사에 이어 안 교수가 정치권에 들어올까 우려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에 대한 박원순 시장의 대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를 닮았다. “저는 원래 정치하려던 사람이 아닙니다. 정치가 잘 돌아가고 최 장관 같은 분들이 잘하고 있었다면 정치할 생각을 안 했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정치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원순 시장의 당선은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런 돌풍이 한때의 바람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면, 우리 정치판이 엊그제 국회 같은 참담한 꼴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