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게스트 발빠른 섭외 불구 준비 부족으로 싱거운 진행
[지난주 TV를 보니:11.9~11.15]
"국회의원 되기 어렵지 않아요. 국회의원이 되고 싶으면 여당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하면 돼요.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먹으면 돼요. 공약을 얘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든가 지하철역을 개통해준다든가, 아~ 현실이 너무 어렵다고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돼요."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닌데, 이것으로 개그맨 최효종은 졸지에 민주투사 반열에 올랐다. 웃자고 한 풍자개그에 죽자고 달려든 강용석 의원의 역할이 컸다. 자신에게 적용된 ‘아나운서 집단모욕죄’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하려 맞받아 친 것이라고 하지만 ‘셀프 빅 엿’을 먹어버렸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풍자개그를 '국회의원 집단모욕죄'로 형사고소까지 하다니.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요즘 같은 세상이다 보니 웃음 하나로 국민영웅이 탄생하기도 한다 싶다.
자사 예능 프로에서 피소심정 최초 공개
그 덕에 당사자 최효종은 두말 할 것 없고, KBS <개그콘서트>와 <승승장구>가 최효종 특수를 누렸다. <개그콘서트>는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아드는 네티즌들이 늘어나면서 제2의 전성기에 접어들었다는 소리까지 듣고 있고, <승승장구>는 당사자 최효종을 발 빠르게 섭외해 사건 이후 최초로 그의 심경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방송을 내보냈다. 제작진은 피소사건을 이용해 시청률을 끌어 올리려는 것은 아니라고 했으나, 기존의 톱스타급 출연진과 비교해보면 최효종의 지명도가 상대적을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최효종이 출연한 22일 <승승장구>의 시청률은 10.9%(AGB닐슨 리서치 수도권 기준)로, 전 주(7.7%)에 비해 3.2%나 깜짝 상승했다.
"아무 생각 없이 개그 하는 것은 재롱이다. 개그는 뼈가 있어야 한다."
피소심정을 묻자 최효종이 꺼내든 답변이다. 자신의 개그 철학을 말하는 최효종의 ‘대인배 다운’ 태도에서 우리는 그를 고소한 국회의원의 좀스러운 모습을 대비할 수 있었다. 그 역시 국회의원 풍자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논란을 예상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개그를 보고 기분 나빠하면 진짜 '그런'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해 주저 없이 무대에 올렸단다. 회심의 어퍼컷이 아닐 수 없다. 형사고소 당한 것 보다, 오히려 대중이 자신을 정치개그맨이라는 무거운 이미지로 기억할 것을 우려한 최효종. 이제 막 인지도를 높여가던 신인 개그맨은 그의 재기발랄한 연기가 법의 쇠고랑에 걸릴 위기를 겪으면서, 앞으로 그가 구사할 개그의 색깔이 한쪽으로 쏠려 보일까 걱정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 경망한 국회의원님 때문에 말이다. 그래도 그는 다짐했다. '웃겨드리는 것에만 충실하겠다'고.
최효종 활용 못하기는 <승승장구>도 매한가지
이번 사건에 대한 최효종의 응수가 의연하다 못해 예상보다 담담해서 녹화를 진행하던 <승승장구>의 제작진도 당황스러웠을 게 분명하다. MC들은 ‘개그맨 최효종’을 분석하다가도 ‘국회의원에게 고소당한 개그맨 최효종’으로 연신 화제를 돌리곤 했다. 최효종식 개그가 사회비판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비추려고 애쓰는 게 역력했다. 파문이 일기 전 보도된 한 주간지 인터뷰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딱 중간에 있다. 지금 사는 세상이 충분히 좋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아주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 있게 ‘디스’한다.” <승승장구>에서도 최효종은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을 뿐, 자신의 개그에 찔리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다. 오히려 최효종식 개그를 사회성, 정치성으로 포장하려한 <승승장구>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출연진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을 미리 선정해 대중의 반응을 엿보는 <승승장구>의 '대국민투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코너는 이번 최효종 편이 얼마나 성글게 준비됐는지를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 이미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나 ‘사마귀 유치원’ 등의 코너로 연신 인기몰이 중인 최효종을 요즘 개그의 대세라고 말해놓고선, 정작 <승승장구>는 최효종에게 궁금한 것을 ‘그의 개그가 웃긴다 VS. 안 웃긴다’로 양분하여 네티즌들에게 물었다. 특유의 유머감각과 독특한 아이디어로 이미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를 두고, 더구나 최근 논란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그의 개그를 두고, 이제 와서 ‘웃기는가, 안 웃기는가’로 검증하겠다니. '웃기다'에 몰린 96%라는 압도적인 투표 결과는 그의 인기를 보여주는 지표임과 동시에, 뻔한 질문으로 자충수를 둔 <승승장구> 제작진의 허술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했다.
‘논란의 최효종’ 말고는 '재벌설' 관련 해명만을 쫓아 해맸던 <승승장구>. ‘개그맨 최효종’을 제대로 보여줄 아까운 기회를 놓쳐버린 <승승장구>. 그 모든 이유는 제작진의 준비 부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요즘 한창 ‘감’ 좋은 그가 보여준 입담과 개그가 아니었다면 어쩔 뻔 했는가. 태풍의 눈 최효종을 데려와 이번 주 시청률은 반짝 ‘승승장구’했을지 몰라도, 최상의 재료를 제대로 요리하지 못한 <승승장구>는 토크쇼로서 한심한 역량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변명할 셈이라면 <승승장구>가 승승장구하는 날은 어쩌면 더 멀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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