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게스트 발빠른 섭외 불구 준비 부족으로 싱거운 진행
[지난주 TV를 보니:11.9~11.15]

"국회의원 되기 어렵지 않아요. 국회의원이 되고 싶으면 여당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하면 돼요.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먹으면 돼요. 공약을 얘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든가 지하철역을 개통해준다든가, 아~ 현실이 너무 어렵다고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돼요." 

▲ 최효종은 10월 2일 방영한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 코너에서 구사한 '국회의원 되기 어렵지 않아요' 개그 때문에 강용석 국회의원에게 고소당했다. ⓒ KBS 홈페이지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닌데, 이것으로 개그맨 최효종은 졸지에 민주투사 반열에 올랐다. 웃자고 한 풍자개그에 죽자고 달려든 강용석 의원의 역할이 컸다. 자신에게 적용된 ‘아나운서 집단모욕죄’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하려 맞받아 친 것이라고 하지만 ‘셀프 빅 엿’을 먹어버렸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풍자개그를 '국회의원 집단모욕죄'로 형사고소까지 하다니.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요즘 같은 세상이다 보니 웃음 하나로 국민영웅이 탄생하기도 한다 싶다.

자사 예능 프로에서 피소심정 최초 공개

그 덕에 당사자 최효종은 두말 할 것 없고, KBS <개그콘서트>와 <승승장구>가 최효종 특수를 누렸다. <개그콘서트>는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아드는 네티즌들이 늘어나면서 제2의 전성기에 접어들었다는 소리까지 듣고 있고, <승승장구>는 당사자 최효종을 발 빠르게 섭외해 사건 이후 최초로 그의 심경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방송을 내보냈다. 제작진은 피소사건을 이용해 시청률을 끌어 올리려는 것은 아니라고 했으나, 기존의 톱스타급 출연진과 비교해보면 최효종의 지명도가 상대적을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최효종이 출연한 22일 <승승장구>의 시청률은 10.9%(AGB닐슨 리서치 수도권 기준)로, 전 주(7.7%)에 비해 3.2%나  깜짝 상승했다.

▲ 최효종은 22일 <승승장구>에 출연해 최초로 피소심정을 밝혔다. ⓒ KBS 홈페이지

"아무 생각 없이 개그 하는 것은 재롱이다. 개그는 뼈가 있어야 한다."

피소심정을 묻자 최효종이 꺼내든 답변이다. 자신의 개그 철학을 말하는 최효종의 ‘대인배 다운’ 태도에서 우리는 그를 고소한 국회의원의 좀스러운 모습을 대비할 수 있었다. 그 역시 국회의원 풍자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논란을 예상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개그를 보고 기분 나빠하면 진짜 '그런'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해 주저 없이 무대에 올렸단다. 회심의 어퍼컷이 아닐 수 없다. 형사고소 당한 것 보다, 오히려 대중이 자신을 정치개그맨이라는 무거운 이미지로 기억할 것을 우려한 최효종. 이제 막 인지도를 높여가던 신인 개그맨은 그의 재기발랄한 연기가 법의 쇠고랑에 걸릴 위기를 겪으면서, 앞으로 그가 구사할 개그의 색깔이 한쪽으로 쏠려 보일까 걱정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 경망한 국회의원님 때문에 말이다. 그래도 그는 다짐했다. '웃겨드리는 것에만 충실하겠다'고.  

최효종 활용 못하기는 <승승장구>도 매한가지

이번 사건에 대한 최효종의 응수가 의연하다 못해 예상보다 담담해서 녹화를 진행하던 <승승장구>의 제작진도 당황스러웠을 게 분명하다. MC들은 ‘개그맨 최효종’을 분석하다가도 ‘국회의원에게 고소당한 개그맨 최효종’으로 연신 화제를 돌리곤 했다. 최효종식 개그가 사회비판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비추려고 애쓰는 게 역력했다. 파문이 일기 전 보도된 한 주간지 인터뷰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딱 중간에 있다. 지금 사는 세상이 충분히 좋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아주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 있게 ‘디스’한다.” <승승장구>에서도 최효종은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을 뿐, 자신의 개그에 찔리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다. 오히려 최효종식 개그를 사회성, 정치성으로 포장하려한 <승승장구>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 <승승장구> MC들은 '고소당한 최효종'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정작 '개그맨 최효종'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 KBS 홈페이지

출연진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을 미리 선정해 대중의 반응을 엿보는 <승승장구>의 '대국민투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코너는 이번 최효종 편이 얼마나 성글게 준비됐는지를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 이미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나 ‘사마귀 유치원’ 등의 코너로 연신 인기몰이 중인 최효종을 요즘 개그의 대세라고 말해놓고선, 정작 <승승장구>는 최효종에게 궁금한 것을 ‘그의 개그가 웃긴다 VS. 안 웃긴다’로 양분하여 네티즌들에게 물었다. 특유의 유머감각과 독특한 아이디어로 이미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를 두고, 더구나 최근 논란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그의 개그를 두고, 이제 와서 ‘웃기는가, 안 웃기는가’로 검증하겠다니. '웃기다'에 몰린 96%라는 압도적인 투표 결과는 그의 인기를 보여주는 지표임과 동시에, 뻔한 질문으로 자충수를 둔 <승승장구> 제작진의 허술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했다. 

▲ 개그맨 최효종(왼쪽)과 그를 '국회의원 집단 모욕죄'로 고소한 강용석 국회의원. ⓒ KBS 홈페이지

‘논란의 최효종’ 말고는 '재벌설' 관련 해명만을 쫓아 해맸던 <승승장구>. ‘개그맨 최효종’을 제대로 보여줄 아까운 기회를 놓쳐버린 <승승장구>. 그 모든 이유는 제작진의 준비 부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요즘 한창 ‘감’ 좋은 그가 보여준 입담과 개그가 아니었다면 어쩔 뻔 했는가. 태풍의 눈 최효종을 데려와 이번 주 시청률은 반짝 ‘승승장구’했을지 몰라도, 최상의 재료를 제대로 요리하지 못한 <승승장구>는 토크쇼로서 한심한 역량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변명할 셈이라면 <승승장구>가 승승장구하는 날은 어쩌면 더 멀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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