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해리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볼테르 ‘캉디드’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는 ‘낙관주의자’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주인공 캉디드는 스승 팡글로스에게 현재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이라는 낙관주의를 배운다. 캉디드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게 정말 좋은 세상인지 물을 때도 팡글로스의 답은 같다. 1000대 매를 맞지 않았다면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고, 도망치지 않았다면 노파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노파가 주는 빵으로 허기를 달래지 못했을 것이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는 것이 팡글로스의 낙관주의다.

미국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가 인도인의 소 경배 의식을 재해석하자 팡글로스 같은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어리석은 미신을 최선의 상태라고 옹호했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세계에서 소가 가장 많고, 병들고 노쇠한 소도 가장 많다. 전체 소 절반은 거리를 방황하는 쓸모없는 존재다. 인도에서는 4600만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도 소를 먹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인 일로 보인다. 해리스는 이런 해석을 반박했다. 

▲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표지. ⓒ 한길사

인도 소들은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먹으며, 반 정도 굶주린 상태로 쓰러져 죽을 때까지 쟁기질을 한다. 소똥은 인도의 주요 거름이자 연료다. 우리가 쓸모없다고 하는 소도 가난한 농민에게는 생명의 젖줄이다. 쇠고기 금기는 소수 브라만이 고기 소비를 독점하는 대신 다수 민중이 밀 수수 등 주로 식물성 식품을 먹는 식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쇠고기 금기는 필수 영양분 섭취의 불평등을 감소시켰다. 해리스는 다른 학자들로부터 현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데도 효율성을 근거로 합리화한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해리스를 낙관주의자가 아니었다.

해리스는 인도의 쇠고기 금기를 옹호한 적이 없다. 그것이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이라는 생각을 거부할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현 체제의 근거를 이해하지 못하면 더 나은 체제를 만들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도의 쇠고기 금기를 미신으로 치부하고 없애려고 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인류의 역사는 낙관주의의 역사다. 우리는 항상 최선의 선택이 있다고 믿었으며, 선택의 순간 망설이지 않았다. 닭고기 혁명이 대표적이다. 닭은 가장 효율적으로 단백질을 제공하는 동물이다. 소고기 1kg을 얻는 데 사료 5.5kg이 드는데, 닭고기 1kg을 얻는 데는 사료 2kg이 든다. 인류는 닭고기가 줄 풍요를 낙관했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축으로 기르는 닭은 210억 마리로 인류보다 3배 많다. 또한 종자 개량을 통해 닭가슴살을 위한 닭을 만들기도 했다. 이론상 1년을 키우면 몸무게가 200kg 가까이 는다. 그러나 닭고기 혁명은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인 상태일까?

앞으로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다. 유전적 다양성은 종의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유전자가 다양할 때 그 종이 건강하게 유지될 확률이 높아진다. 아일랜드 기근은 수확량이 높은 한 가지 품종의 감자만 재배하면서 발생했다. 감자잎마름병이 퍼지자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있던 감자는 살아남지 못했다. 감자가 주식인 아일랜드 사람 1/4이 아사했다. 매년 발생하는 조류독감(AI)은 닭의 멸종 위기를 알리는 경고등일 수 있다.

인류의 낙관주의는 산업화 시대 이후 심해졌다.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다. 풍요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이라 굳게 믿었다. 그렇다면 당장의 닭고기 생산력만 보더라도 굶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굶주리는 닭은 없는 반면, 굶주리는 사람은 8억 명이다. 

기나긴 시련 끝에 캉디드에게 남은 것은 작은 집과 추녀가 된 공주, 팡글로스를 비롯한 식솔들과 농사지을 수 있는 작은 밭뿐이다. 팡글로스는 그 순간에도 지금이 왜 가장 좋은 때인지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조용히 듣고 있던 캉디드는 이렇게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우리 밭을 갈아야 합니다.” 낙관주의란 장막을 거둬들이고 현실을 돌아봐야 할 때다.

▲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자> 표지. ⓒ 열린책들

편집 : 김대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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