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4등'

경쟁은 흥미롭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일은 긴장과 동시에 쾌락을 일으킨다. 많은 이가 게임을 하며 얼굴 모르는 상대와 경쟁을 즐긴다. 다른 이가 벌이는 경쟁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올림픽과 월드컵부터 미국 메이저리그, 영국 프리미어리그 등 스포츠 대회 관람을 즐긴다. 어르신이 많이 모이는 공원에서도 바둑 한판이 벌어지면, 그 주위에 구경꾼이 모여든다.

경쟁은 승패가 명확하게 갈려야 재미있다. 시합 내내 열심히 축구공을 쫓아 뛰어다녔는데, 경기 뒤 선생님이 ‘모두가 승자’라고 선언해서 김이 빠지는 경험을 해본 이가 있을 것이다. 골을 많이 넣은 팀이 승자, 골을 적게 넣은 팀이 패자라는 명확한 구분이 경쟁을 흥미롭게 만든다. 패자가 없는 경쟁은 재미가 없다. 경쟁에는 반드시 패자가 필요하다. 질문이 따라온다. 경쟁에서 패한 이도 경쟁이 즐거울까?

정지우 감독이 2016년 연출한 영화 <4등>은 경쟁을 다룬다. 참가하는 수영 대회마다 4등에 머무는 준호(유재상 분), 준호를 1등으로 만드는 일에 집착하는 엄마 정애(이항나 분), 국가대표 출신 수영 코치 광수(박해준 분)가 주요 인물이다. 정애가 광수를 코치로 소개받으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영을 좋아하지만 맞기 싫은 준호, 맞는 것보다 1등이 중요한 정애, 맞아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는 광수 사이 갈등이 영화 스토리의 골격을 이룬다.

▲ 준호는 수영 대회마다 4등을 하지만, 수영을 좋아하고 자신이 수영에 소질이 있다고 믿는다. 수영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수중 촬영과 경영을 촬영한 장면이 볼거리다. ⓒ ㈜프레인글로벌

4등인 준호는 패배자다

준호가 등장하는 첫 번째 시퀀스, 준호는 남자 초등부 자유형 200m 결승에서 0.72초 차이로 4등에 머문다. 하지만 준호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대회가 끝난 뒤, 또래 친구 여럿과 모여 있는 탈의실에서 준호는 가위바위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준호의 해맑은 표정, 깔깔거리는 웃음은 준호가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집에 가려고 준호가 엄마 정애와 함께 차에 탄 씬이 이어진다. 준호와 정애의 첫 대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야, 준호. 너 바보야? 어?”

준호를 향한 정애의 첫 대사다. 준호의 만년 4등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정애다. 이어서 정애는 준호를 “야, 4등”이라고 부른다. “나 너 때문에 죽겠다” “너 꾸리꾸리하게 살 거야, 인생을?” 정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준호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4등인 준호가 패배자가 되는 순간이다. 8명 중에 4등, 3등과 0.72초 차이였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 수영 대회가 끝나고 준호는 정애에게 된통 혼난다. 정애는 과자를 먹는 준호에게 “지금 먹을 게 입으로 들어가니?”라고 말하며 준호를 달달 볶는다. ⓒ ㈜프레인글로벌

준호의 1등은 정애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준호가 수영 대회에서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기 전, 정애는 준호의 남동생 기호(서환희 분)와 함께 절을 찾는다. 기호가 정애에게 뭘 빌었냐고 묻자 정애는 “준호 형 메달 따게 해 달라고”라고 답한다. 정애는 이어서 기호 좋은 대학 가고 아빠는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답한다. 기호가 묻는다. “엄마는?” 잠깐의 침묵 끝에 정애가 답한다. “없어” 정애가 없다고 답한 자리에 ‘1등 하는 준호’가 들어선다. 준호의 4등은 준호의 패배이자 엄마의 패배다.

가치는 오직 등수에서 나온다

준호의 가치는 등수에서 나온다. 준호가 첫 2등을 기록한 뒤 준호 가족은 식사 자리를 갖는다.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식사하는 첫 장면이다. 정애 표정도 영화 중 가장 밝다. 정애는 잡채를 하고, 준호 아빠 영훈(최무성 역)은 케이크를 사 온다. 네 식구가 둘러 앉아 만찬을 즐긴다. 정애는 “준호, 다음에 1등”을 외치지만, 준호의 성적에 만족하는 눈치다.

▲ 준호 가족이 만찬을 즐긴다. 영화 중 정애의 표정이 가장 밝은 순간이다. ⓒ ㈜프레인글로벌

준호의 가족과 달리 코치 광수는 1등을 놓친 준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경기 직후, 전광판에서 기록을 확인한 정애는 준호를 향해 “거의 1등”이라고 소리친다. 준호의 기록은 1등과 0.02초 차이였다. 잘했다며 기뻐하는 정애와 달리 준호를 보는 광수는 표정이 어둡다. 양팔로 자유형 발차기하는 시늉을 하며 준호에게 짜증을 낸다. 이어지는 탈의실 씬, 대회에 참가한 또래 친구와 떠들던 준호에게 광수가 찾아온다. 광수는 1등을 놓친 준호에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집중도 하지 않았다며 꾸지람을 한다.

“내는 옛날 생각 하면 감독 선생들한테 제일 아쉬운 게 뭔지 아나?”

대회 직전, 광수는 준호를 마사지해주며 옛날 이야기를 꺼낸다. 1등이라 대접받았던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 놓는다. 광수는 경기가 끝나고 선배들이 ‘빠따 맞고 대가리 박고’ 있는 동안, 사무실에서 간식을 먹었다고 말한다. 좋은 기록을 유지하고 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광수는 섬뜩한 한 마디를 이어간다.

“아, 그때 좀, 내가 기록을 내도 좀 때리고, 어?”

광수는 선생들이 자신을 강하게 키웠으면 더 많이 성공했을 거라고 말한다. 강하게 키운다는 건 ‘빠따’를 말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광수는 준호가 은메달을 따기 전 연습에서 준호를 여러 차례 때린다. 더욱더 놀라운 건 아들이 맞으며 운동한다는 걸 알고도 정애는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이다.

▲ 광수는 훈련 도중 준호를 여러 차례 때린다. 광수에게 체벌은 다 준호를 위한 일이다. ⓒ ㈜프레인글로벌

결과가 폭력을 정당화한다

“자기야, 난 솔직히 준호 맞는 거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 영훈은 광수를 만나 돈 봉투를 건네며 준호를 때리지 말라고 한다. 차로 돌아온 광수는 정애에게 다른 코치도 알아보자고 말한다. 정애는 이유를 물으며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것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 ㈜프레인글로벌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1등이라는 결과만 내면 모든 과정이 정당하다. 광수가, 정애가, 준호마저 폭력을 용인하는 과정이다. 광수가 준호를 처음 때린 날, 연습이 끝나고 광수는 준호를 분식집에 데려간다. 광수는 준호에게 튀김과 핫도그를 사주며 손찌검에 대해 핑계를 댄다. 네가 미워서 때린 게 아니라 집중 안 하고, 시키는 대로 안 해서 때렸다고 말이다.

준호가 첫 2등을 기록한 뒤 네 식구가 모인 식사 자리, 기호의 말실수로 준호가 맞으며 연습한다는 사실을 아빠 영훈이 알아차린다. 영훈은 준호를 방으로 데려가서 몸 곳곳에서 맞은 흔적을 확인한다. 한숨을 쉬는 영훈에게 준호가 말한다.

“그게 아니라… 내가 정신을 안 차리고 하니까 그렇게 된 거야. 집중해야 하는데”

아이러니는 국가대표 중에서도 실력이 월등했던 광수도 수영을 그만둔 이유가 감독의 가혹한 체벌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첫 시퀀스는 1998년 광수가 수영 선수였던 시절을 보여준다. 실력만큼 노는 것도 좋아했던 광수는 무단으로 11일 늦게 태릉선수촌에 들어간다. 화가 난 감독은 광수에게 100대 맞으라며 몽둥이를 들었고, 광수는 17대까지 맞고 몽둥이를 빼앗아 집어 던진다. 그 길로 선수촌을 나온 광수는 16년 뒤 그저 그런 코치로 생활을 연명한다.

▲ 광수 역시 폭력의 피해자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을 앞둔 국가대표 소집에 11일간 무단 이탈한 광수는 감독으로부터 매질을 당한다. 참지 못한 광수는 선수촌에서 뛰쳐나온다. ⓒ ㈜프레인글로벌

광수가 실패한 원인은 자신의 나태가 아니다. 폭력의 부재다. 기록이 좋아도 자신을 때려가며 ‘강하게’ 키워주는 선생님을 아쉬워한다. 폭력이 있었으면 더 성공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광수는 이런 논리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준호를 ‘강하게’ 키우는 자신은 좋은 선생님이다. 자신의 체벌은 준호의 1등을 위한 행위다.

경쟁 안에 사람 있어요

준호는 광수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수영을 그만둔다. ‘1등 하는 준호’가 소원이었던 정애가 노발대발하지만, 준호는 수영복을 입지 않는다. 정애의 싸늘한 눈빛과 좋아하는 수영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준호는 ‘도둑 수영’을 감행한다. 한밤중 불 꺼진 수영장에 몰래 들어가 수영을 한다. 이내 경비원에게 들키고 정애가 준호를 찾으러 온다. 왜 그러냐며 꾸중을 하는 정애에게 준호가 묻는다.

“난 수영에 소질이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해. 엄마는 정말 내가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어? 내가 1등만 하면 상관없어?”

▲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냐고 묻는 준호의 질문에 정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프레인글로벌

영화는 광수의 가르침 없이 준호가 대통령배 수영 대회에서 1등을 하며 끝난다. 준호와 준호의 가족으로서는 해피엔딩이다. 씁쓸함이 남는다. 경쟁은 계속되고 준호와 함께 경쟁을 펼친 누군가는 패배자가 된다. 준호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 1등을 기록하고 수영장을 빠져나가는 준호에게 동생이 묻는다. “형, 1등 하면 기분이 어때?” 이 동생도 준호처럼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경쟁은 끝나지 않고 모두는 경쟁에 뛰어든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이유로 경쟁에 참여한다. 재미있어서,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수영을 계속하고 싶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동물과 식물도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한다. 이들은 정말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한다. 사람이 동식물과 똑같이 ‘죽기 살기로’ 경쟁에 임해야 할까?

▲ 영화 마지막에 준호는 1등을 기록한다. 가운데 레인에서 헤엄치는 게 준호다. ⓒ ㈜프레인글로벌

경쟁 안에 사람이 있다. 폭력을 거부한 준호는 이를 이해했다. 1등을 한 대회에서 준호는 자유형을 하던 도중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자유롭게 헤엄친다. 누워서 돌핀킥을 하고, 수영장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레이스를 마친 준호는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듯 수면 위로 튀어나온다. 영화는 이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준호의 시선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거친 숨소리와 정신이 없는 준호의 시선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준호의 '환희'를 표현한다.


편집 : 신현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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