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 이정욱 회장

초등학생 대상 학원강사로 일하다 결혼한 그는 딸이 지적장애와 시각장애를 동반한 뇌병변 1급 판정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주부였다. 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면서, ‘세상은 안 되는 일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활동가가 됐다. 사단법인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중애모)에서 560여 회원과 함께 ‘안 되는 일 되게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이정욱(55) 회장을 지난 6월 10일 서울 성산동 중애모 사무실에서 만나고, 지난 12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중복 장애인의 불편과 고통에 무심한 사회

서울 성산동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정욱 회장.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는 회비와 후원사업으로 운영된다. ⓒ 현경아
서울 성산동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정욱 회장.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는 회비와 후원사업으로 운영된다. ⓒ 현경아

뇌병변은 뇌의 기질적 손상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중추신경 장애다. 그중 지체·지적·시각·뇌전증 등 여러 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사람을 중증중복장애인이라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약 25만 명의 뇌병변장애인이 있고 이 중 60% 정도가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이다. 이들은 일상 활동부터 제약이 많은데, 이 회장은 ‘신변처리(먹는 것과 대소변 처리)’의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변기에 앉을 수 없어 누운 상태로 기저귀를 교체해야 한다. 하지만 공중화장실에서 성인이 이용할 수 있는 기저귀 교환대는 찾기 어렵다.

이 회장은 스무 살이 넘은 딸과 함께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 갔다가 신변처리를 위해 기도실을 이용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남이섬에 딸을 누일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 없었던 탓에, 아랍권 관광객을 위해 마련된 기도실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곳엔 넓은 공간과 샤워실이 갖춰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관광지는 물론 서울시청, 국립미술관과 같은 국·공립시설에도 중증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공간은 부족하다. 그래서 보통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동행인이 가려 준 상태로 신변처리를 해야 한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평생 사용하는 기저귀값도 부담이 크다. 이 회장 딸이 사용하는 기저귀와 물티슈 가격은 한 달에 15만 원, 연간 180만 원에 이른다. 중애모는 기저귀 비용을 건강보험급여로 처리해 달라고 당국에 건의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기저귀는 의료용품으로 볼 수 없는 일회성 소모품이라는 게 담당자의 설명이었다. 중애모는 대신 서울시에 장애인 복지 지원사업으로 대소변흡수용품 구입비 지원을 제안했다. 그 결과 2018년부터 서울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기저귀 구입비용을 1인당 월 5만 원까지 지원하기 시작했다.

▲ 2021년 뇌병변장애인 대소변흡수용품 구입비 지원사업 공고문. 서울시 거주 만 3~54세 뇌병변장애인이 대상이다. ⓒ 서울시장애인복지관협회

담당 공무원 ‘몰랐다, 미안하다’에 엄마들 분발

“사실은 ‘이것만 해놓으면 되겠다’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들끼리 시작한 건데, 부족한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공무원들이 ‘몰랐다, 미안하다’라고 하는 말에 저희가 깨달은 건 ‘알려야 하는구나’ 였어요."

뇌병변장애인들은 성장할수록 몸에 변형이 생긴다. 근육이나 관절이 수축하면서 굳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통이나 팔다리를 잡아주는 보조용구가 필수품이다. 이 회장의 딸이 7살이 되던 2000년, 자세보조용구를 제작하는 사람은 전국에 단 한 명뿐이었다. 장인의 수작업으로 딸에게 필요한 보조용구를 제작하니, 휠체어까지 합해 비용이 350만 원이나 됐다. 아이가 자라면서 성장한 몸에 맞는 보조용구를 다시 큰돈을 들여 사야 했다.

휠체어는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지만 보조용구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 회장은 6개 특수학교 학부모회 대표들을 모아 중애모를 발족했다. 서울시청과 의회를 오가며 사정을 호소하자 공무원과 정치인들은 ‘(장애인 가족의 사정을)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4년 동안 고군분투한 끝에 건강보험급여가 확정됐다. 이제 100만 원의 자세보조용구를 구입하면 90%를 지원받고 10만 원만 자비로 부담한다. ‘자세보조용구’라는 용어도 공식화했다. 이 회장은 이 일을 중애모 활동에서 가장 큰 쾌거의 하나로 꼽았다.  

▲ 시중에서는 판매하지 않아 중애모에서 직접 제작한 방한신발. 발에 보조용구를 착용한 장애인은 신발을 신기 어려워 추운 겨울에 외부 활동이 어려웠다. ⓒ 현경아

부족한 재활병원, 실제 치료 아동 6.7%뿐 

장애인 보호자들은 어려서부터 자녀의 재활에 매달린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팔이라도 뻗을 수 있도록, 한 걸음이라도 더 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성장기를 재활의 ‘골든타임’이라고 하지만, 뇌병변 장애인들에게 재활은 전 생애주기에 걸쳐 필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비장애인에 비해 신체 기능이 더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재활치료가 필요한 아동 29만 명 중 실제 치료를 받는 아동은 1만9000여 명으로 6.7%뿐이다. 병원이 부족한 탓에 장애인 부모들은 여러 병원에 대기를 걸어두고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이 회장의 자녀도 6년을 기다린 끝에 올해 서울 은평구 서울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됐다. 

이 회장은 2019년 서울시의 시민제안 창구 ‘민주주의서울’에 공공재활병원 건립을 제안했다. 민간에서는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생애 주기별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병원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한 공론화가 이루어져 2020년 6월 30일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직접 유튜브를 통해 공공재활병원 건립 추진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그해 7월 박 시장이 사망한 후 이 정책은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새로운 시장 체제에서도 이 사업이 꼭 실현되기를 희망했다. 

▲ 2019년 6월 <민주주의서울>의 공공재활병원 건립 지원 발표 영상에 출연한 이정욱 회장. ⓒ 민주주의서울

뇌병변장애인 보호자들은 오랜 돌봄노동 탓에 근골격계 질병을 자주 앓는다. 아이를 반복해서 들어 올리다 보면 허리 디스크나 어깨 힘줄 안에 석회가 쌓이는 석회성 건염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보호자가 아플 때 잠깐이라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가 있지만 중증뇌병변장애인들은 휠체어·침대 등 공간이 많이 필요해 이용하기가 어렵다. 다리가 부러져도 보호자들은 입원치료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적 고통도 크다. 아이의 평생을 곁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그래서 이 회장은 박 시장 재임 시기에 ‘뇌병변장애인 지원 마스터플랜(2019~2023)’ 수립에 참여했다. 뇌병변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건강지원, 긴급 돌봄 인프라 등을 구축하는 정책이다. 이와 관련한 성과 중 하나로 지난 3월 전국 최초로 서울 마포구에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가 개관했다. 이 센터는 특수학교를 졸업한 후 갈 곳이 없는 중증뇌병변장애인들에게 교육과 돌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 지난 3월 개관한 마포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 입구. ⓒ 연합뉴스

자원봉사 대학생과 장애 아동의 정서적 교감 

중증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대부분 동정이 어려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중증장애인과 시간을 함께 보낸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장학금 신청 등을 위해 필요한 자원봉사 시간을 채우려고 주간보호센터에 방문했다가, 졸업을 한 후에도 계속 자원봉사를 오는 대학생도 있다. 비행청소년이 지체특수학교 봉사활동 명령을 받고 방문한 뒤 자성하는 모습도 보았다고 한다. 한 활동보조사는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다“고 이 회장에게 털어놓았다. 

“우리 아이들이, 남들이 볼 땐 자기 역할을 못 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어서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사회와 인연을 맺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어요.”

비전센터가 지자체마다 건립되면 지역사회와 장애인의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다. 비전센터를 오가는 중증장애인을 거리에서 쉽게 마주해야 비장애인들이 그들의 존재를 실감하고 이웃으로 인식할 수 있다. 곁에서 지켜줄 보호자가 없어도 뇌병변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온전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생애 주기별 재활치료와 권역별 시설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 이 회장은 “중증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받을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 : 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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