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이용마 지음/창비/1만6000원

한국의 공영방송은 오랫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난을 겪었다. 건강한 공론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시민들에게 비난받고 끝내 외면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유튜브와 대안 언론들까지 등장하면서 공영방송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가고 있다. 안팎으로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공영방송 구성원 가운데는 좋은 언론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온 이들도 많다. 이 책의 저자, 이용마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암에 걸렸다. 5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어야 16개월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어린 두 아들을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책을 쓰면서 한국 사회를 더 정의롭고 인간미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소망을 담아 쓴 그의 삶과 한국 사회에 관한 기록이다.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시작한 기자 생활 

1987년 대학에 입학한 저자는 온몸으로 한국 사회의 변화를 겪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기자 생활까지 자신이 몸소 겪은 생생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삼아 한국 사회를 이야기한다. 법학과에 진학해 고시를 보려 했던 그의 인생은 정치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크게 바뀐다. 그는 대학 입학 전까지 한국 사회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고 고백한다. 나라를 고민하는 선배들 속에서 공부하면서 그는 자신의 앞날만 생각했던 생각에서 벗어나 사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표지. ⓒ 창비

그는 4·13호헌 조치 직후 우연히 선배를 따라갔다가 가두 투쟁을 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한국 사회 현실을 마주하면서 사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부터 님 웨일스의 <아리랑>, 송건호 등이 쓴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책을 비롯해 허영만의 <오! 한강>과 같은 만화까지 온갖 책을 읽었다. 그는 정치학과에 다녔지만, 한국 현대사만큼은 강의실보다 책과 친구들을 통해 배운 게 더 많았다. 그의 대학 시절에는 시위가 많았다. 민주화에 관한 열망이 커지면서 그 역시 거리에서 시위하며 보내는 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심포지엄 팀에 가입해 선배, 동기와 함께 열심히 공부했다. 입대도 뒤로하고 인생과 역사, 사회에 관해 고민했다. 대학 시절 치열한 공부 끝에 그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인간미가 넘치는 사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꿈꾸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이후 그는 대학원에서 사회 과학 연구에 몰두했다.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군 생활을 마치고 기자가 됐다. 이론과 실천을 겸비할 수 있는 직업으로 기자를 선택했고 문화방송(MBC)에 입사하게 됐다. 그는 여러 군데 언론사 입사 시험을 치르며 경험한 것에 대해서도 책에 적었다. 예비언론인이라면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소신을 지켜온 기자의 삶             

그는 1996년 입사 뒤 경찰서 수습기자 생활을 하며 기자로서의 기본태도를 몸으로 익혔다. 기자는 시민의 대표이기에 상대가 누구든 당당해야 한다. 그는 수습 기간 출입처에서는 큰소리를 치면서도 선배 지시에는 아무 말 못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잘 터득한 이와 터득하지 못한 이는 훗날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또한 강자에게 강한 모습을 제대로 익힌 이는 회사에서도 비굴하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수습기자 생활 이후 사회부 경찰 기자로 본격적인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군대 조직처럼 경직된 경찰 기자 특성상 합리적인 대화나 토론이 어려웠다. 어느새 그는 선배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기자가 돼버렸고 전국부로 밀려났다. 신참 기자 때부터 ‘할 말은 하는 기자’였다. 부서 이동에서 밀려났지만 그는 전국부에서 근무했을 때 오히려 좋은 기사를 많이 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마침내 사회부 경찰 기자를 거쳐 경제부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취재 부서를 옮겨가며 그가 겪은 일들은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서는 볼 수 없고 이 책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다.

경제부 기자로 활동하며 바라본 한국사회의 큰 변화에 대해서도 책에 적었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세계 흐름에 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에 관해 친절하게 서술했다. 한국 사회의 변화와 경제를 두루 이해하고 싶은 이는 이 부분을 집중해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좋은 기자, 좋은 언론에 관한 고민

그는 팩트 앞에서 타협하지 않았다. 정치 권력이든 자본 권력이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꼭 기사로 쓰려고 노력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는 조직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온갖 부서를 이동하며 축출되기 일쑤였다. 상사의 지시여도 잘못된 것이면 따르지 않고 일일이 따지고 들었으니 한직으로 매번 밀려났다.

언론은 시민들에게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대신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많은 이들이 언론의 객관성을 말하는 와중에 여러 언론은 저마다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그에 맞는 사실들을 끌어다 쓴다. 그가 말하는 객관은 기계적 중립을 뜻하지 않는다. 객관은 사회적 다수와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다. 그는 언론이 권력에 대해서는 엄격한 시각을 유지하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인간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너지기 시작한 공영방송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진보했는데 언론은 퇴보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유능하고 존경받던 김중배 사장이 갑자기 물러났다. 사장 교체 이후 MBC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사장이 바뀌면서 보도본부장도 교체됐다. 삼성 관련 기사는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다. 보도국 내부 게시판에 삼성과 관련해 벌어지는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도 보도국은 조용하기만 했다. 또한 당시 MBC 뉴스는 조선일보를 베껴 정부와 대통령 개인을 과도하게 비판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보도국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자들 사이에서 갖가지 불만이 터져 나왔다. 보도국 익명 게시판이 만들어졌고, 기자회장을 기자 전체 투표로 뽑기로 하고 새로운 기자회를 꾸렸다. 이용마는 기자회보 편집장을 맡았다. 이어 새로운 사장이 선임됐다. 그러나 새로운 사장 역시 삼성 관련 보도는 껄끄러워했다. ‘돈 없이는 공정 보도도 어렵다’는 게 새 사장의 공공연한 신조였다고 한다.

▲ 지난 2017년, 이용마 기자는 파업을 이끌다 해고된 지 5년 만에 복직했다. ⓒ KBS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고 김재철 사장이 임명되자 노동조합은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한다. 2010년 39일 파업은 성과 없이 끝났고, 2011년 노조가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재파업에 돌입했다. 이용마는 아무도 노조에 가려고 하지 않던 때에 홍보국장 제안을 수락한다. 많은 동료가 왜 노조 가기를 거부하지 않았냐는 말에 그는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그렇게 그는 2012년, 170일 동안 파업했다.

공영방송, 독립된 언론 돼야

언론은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공론장을 형성한다. 언론 자유가 보장돼야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언론이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 등 권력에서 자유로워야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의제를 말할 수 있다. 그는 언론사 사장 임명권을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대리인단 제도 등을 통해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큰 병을 안고도 세상에 관해 원망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경제 개혁과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며 비록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가지 못할 길은 아니라고 말한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만큼 한국 사회를 사랑한 그는 끝까지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독자에게 소리 높여 주장하지 않는다. 막연한 긍정이나 실체 없는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말한다. 그래서 그의 말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된다.

▲ 지난 2019년 8월, 이용마 기자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 사회를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드는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 KBS

그는 2019년 여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한국 사회와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다. 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야기했던 문제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숙제로 남아있다. 이 책은 20여 년 동안 기자로 살아온 그가 자신의 삶과 한국 언론, 그리고 한국 사회를 성찰한 끝에 남긴 마지막 편지다.

100자 평
아빠가 들려주는 삶과 한국 사회, 그리고 언론 이야기. 저자가 두 쌍둥이 아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 어렵지 않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썼다. 저널리즘에 관한 이론이나 새로운 통찰 같은 것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아쉬울 수 있다.

편집 : 최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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