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엘 클라시코' 스타는 전용기 타고 다닌다

9만여 관중이 운집한 캄프 누(FC 바르셀로나 홈구장),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가 리오넬 메시의 정강이를 거칠게 걷어찬다. 주심은 급하게 경기를 중단하고 퇴장을 선언한다. 메시의 동료 선수들이 모여들어 라모스에게 항의하지만,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카를레스 푸욜의 뺨을 가격하고 만다.

2010년 11월 29일 라리가 13라운드에서 벌어진 이 초유의 사건은 ‘엘 클라시코'(전통의 경기)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뺨을 맞은 푸욜은 스페인 대표팀의 부주장으로 라모스에게는 고참 격 선수다. 엘 클라시코가 뿜어내는 열기와 중압감은 대표팀 동료 사이마저 원수지간으로 만든다.

▲ 레알 마드리드가 5:0 스코어로 뒤지고 있는 상황, 거친 태클로 레드카드를 받은 라모스가 항의하러 온 푸욜의 뺨을 밀치고 있다. 스페인 국민은 대표팀의 사기 저하를 우려했고, 결국 라모스는 12월 2일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 경기 장면 갈무리

유럽 축구에서 더비 매치는 각 지역의 고유한 응원 문화를 형성하며 축구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엘 클라시코는 지역을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콘텐츠가 됐다. BBC에서 추산한 잠재적인 총시청자 수는 약 6억5천만 명. 월드컵을 제외하면 단일 경기로는 최다 시청자 수를 자랑한다. 로컬에서 시작한 이 더비 매치가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엘 클라시코, 그 분노의 역사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어우러진 다문화 국가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이슬람의 침략까지 받으며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카탈루냐, 나바라 등 여러 가톨릭 왕국으로 분열됐다. 이들은 이슬람에 빼앗긴 이베리아반도를 되찾기 위해 ‘레콘키스타(711년~1492년)’ 운동을 시작했다.

무려 700여 년간 지속한 이 운동은 15세기 말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연합 왕국’의 페르난도 2세가 결혼 동맹으로 에스파냐를 통일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긴 시간 분열되어 있던 각 왕국은 쉽게 융합되지 않았다. 영토 대부분을 차지한 카스티야가 주도권을 잡자 카탈루냐와 발렌시아, 해안가 등지를 통치하던 아라곤 연합은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 에스파냐를 통일한 이사벨라 1세와 페르난도 2세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콜럼버스를 맞이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함께 에스파냐는 새로운 패권 국가가 됐고, 유럽 중심의 세계화 시대가 열렸다. ⓒ 위키피디아

이후 즉위한 카를로스 5세와 펠리페 2세는 에스파냐를 철저한 카스티야 중심 국가로 개편했다. 그에 따라 아라곤 연합의 수도인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카탈루냐 문화권이 형성됐다. 근대에는 1936년 쿠데타로 집권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카탈루냐를 본격 탄압했다. 카탈루냐 고유의 언어와 자치정부, 자치의회, 경찰권 등 대부분 권한을 박탈한 것이다.

국내에 알려진 바와 달리 프랑코 정권은 레알 마드리드를 직접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프랑코가 왕실의 비호를 받았던 레알을 지원했다는 것은 낭설이다. 레알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영입한 뒷배경에 프랑코 정권이 있었다는 설도 확인된 바 없다. 다만 바르샤에 가한 탄압은 사실로 밝혀졌다. 일례로 1943년 6월 13일 코파델레이(국왕컵) 4강전에서 레알이 11:1 대승을 거둔 사건이 있었다. 프랑코 정권의 보안부장이 바르샤 라커룸을 찾아 협박한 결과였다. 정작 우승팀은 아틀레틱 빌바오였고, 레알의 우승을 위한 공작은 아니었다.

▲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로 주급을 받지 못한 디 스테파노는 유럽 행을 결심한다. 바르샤가 먼저 제안했으나, 독주를 우려한 레알이 협상 테이블에 난입했고, 여러 과정을 거쳐 바르샤는 보상금을 받고 권리를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 위키피디아

카탈루냐인의 분노는 스페인 내전과 정치적 탄압에서 비롯됐다. 축구는 그 분노를 표출하는 창구다. 그런 점에서 가장 강경한 아틀레틱 빌바오는 오로지 바스크인 선수만 받는 ‘올 바스크인’ 정책을 펴고 있다. 선수층은 얇아도 독보적인 지역 대표성과 충성도를 자랑한다. 비단 엘 클라시코뿐만 아니라 카탈루냐 문화권에 있는 다수의 클럽이 축구로 민족 정체성을 표출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석유재벌 구단주는 사양합니다

레알과 바르샤 구단의 소유구조는 조합원 ‘1인 1표’ 원칙을 고수하는 협동조합 형태다. 조합원은 6년 임기의 클럽 회장을 직접 선출하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총회에 참석해 연간 보고서와 장기계획, 예산 등을 의결할 수 있다. 최근 석유재벌들이 영국 ‘맨체스터 시티 FC’와 프랑스 ‘파리 생제르망 FC’ 같은 대형 클럽을 인수해 운영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두 클럽은 조합원이 직접 클럽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상적인 소유구조를 갖는다.

왕족을 뜻하는 ‘레알’ 칭호는 1920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가 하사했다. 레알 마드리드뿐만 아니라 레알 소시에다드와 레알 마요르카 등 왕정의 지원을 받는 다수의 클럽이 레알 칭호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는 현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로피언컵 출범(1955년)과 함께 5년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명실상부 세계 최고 클럽에 등극했다.

그들은 협동조합의 장점을 발휘해 세계 최고의 클럽이 되겠다는 ‘일류주의’ 노선을 취한다. 조합원들이 마련한 자본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스타 선수를 영입하고 상품성을 창출해 구단의 가치를 제고한다. 조합원이 직접 선출한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은하수를 뜻하는 ‘갈락티코’ 정책을 내세워 스타 선수들을 차례로 영입했다. 2009년에는 갈락티코 2기가 출범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카, 사비 알론소, 벤제마, 이과인 등 두꺼운 선수층을 구축했다. 페레즈 회장 부임 이후 레알이 지출한 이적료 총액은 11억5천만 유로(1조5510억 원), 선수 연봉까지 포함하면 지출액은 천문학적이다.

▲ 직접 프리킥을 앞두고 레알의 가레스 베일, 하메스 로드리게스, 호날두, 토니 크로스가 벽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이적료 총합은 3억 유로(4017억 원)에 달한다. 갈락티코 선수들이 만드는 벽은 인터넷에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벽’이라는 유머로 쓰인다. ⓒ 경기 장면 갈무리

레알은 선수 영입 시 초상권 수익의 40% 이상을 구단이 챙긴다는 조항을 둔다. 광고와 행사 계약 등으로 벌어들이는 개인 수익의 상당 부분을 구단이 챙기는 것이다. 스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지출하는 막대한 비용은 이런 선순환으로 충당한다. 레알 서포터즈도 지출하는 만큼 성장하는 클럽의 정체성에 열광한다. 2009년 호날두 입단식에는 8만여 명의 서포터가, 2018년 에당 아자르 입단식에는 5만여 명의 서포터가 운집했다. 검증된 선수를 영입해 최고의 팀을 꾸리는 것은 그들의 꿈이자 정체성이다.

한편 바르샤는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카탈루냐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결속을 도모한다. 이는 113년 동안 이어왔던 전통이다. 그들은 자본에 휘둘리지 않도록 창단 때부터 2013년까지 상업 유니폼 후원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2006년 후원 목적(구단 수입의 0.7% 기부)으로 유니세프 광고를 게재한 일 외에 유니폼 광고는 전무하다.

축구 산업이 점차 머니 게임이 되어 가면서 바르샤의 113년 전통은 깨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유소년 선수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칸데라’ 시스템을 전통적인 정체성으로 내세운다. 토탈싸커의 창시자 요한 크루이프가 감독 재직 중에 만든 축구학교 ‘라 마시아’는 스타의 산실이다. 리오넬 메시를 비롯해 사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푸욜 등 스타 선수 대부분이 라 마시아 출신이다. 지난 40년간 라 마시아가 배출한 500여 명의 선수는 바르샤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다.

▲ 2019년 11월 1일 바르셀로나는 라 마시아 40주년을 맞아 기념벽화를 공개했다. 골키퍼 빅토르 발데스(맨 왼쪽)부터 페드로(맨 오른쪽)까지 경기장에 있는 11명 선수 모두가 라 마시아 출신으로 구성된 경기를 기념했다. ⓒ 바르셀로나 홈페이지

바르샤의 서포터즈가 라 마시아에 거는 기대감도 상당하다. 유소년 때부터 발을 맞춘 선수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티키타카(짧은 패스를 반복적으로 연결하는 전술)로 불리는 바르샤 특유의 점유율 축구를 구사한다. 2012년 11월 25일 레반테전은 바르샤의 출전명단 11명을 라 마시아 출신으로만 채운 기념비적인 경기였다. 바르샤 서포터즈는 카탈루냐에서 육성된 선수들이 캄프 누에 서는 기적을 지켜보며 클럽의 정체성에 매료되었다.

'메호대전' 장대한 영웅서사를 이어가다

오랜 역사와 사건을 고루 간직한 엘 클라시코는 ‘이야기'보다 ‘서사시'에 가깝다.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이 서사시는 삼국지처럼 수많은 영웅 이야기의 집합체다. 시대마다 수용집단이 갖는 공동의 기억과 기대는 서사시를 끊임없이 재구성한다. 대를 이어 구전된 이야기는 종국에 하나의 텍스트를 완성하는데, 현재 엘 클라시코는 메호대전(메시와 호날두의 대결)의 장을 막 끝낸 상태다.

▲ 메호대전은 축구 콘솔 게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 회사의 메인 모델로 이어진다. 일레트로닉 아츠의 스포츠 게임 피파 시리즈는 메시를, 게임 회사 코나미의 위닝 시리즈는 호날두를 메인 모델로 내세운다. 그들의 대결은 경기장 밖에서도 상징적이다. ⓒ EA sports, KONAMI

현대식 영웅의 산실은 스포츠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올림픽 메달 수를 두고 경쟁했고, 스포츠 스타들은 국위 선양의 선봉에 섰다. 미디어는 스포츠 스타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미국프로농구의 마이클 조던은 시장경제에서도 성공한 대표적인 영웅이다. 조던은 80~90년대 흑인 사회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흑인들은 제2의 조던을 꿈꾸며 농구공을 들었고, 농구 코트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평평한 운동장이 되었다. 당시 조던 운동화는 자기 꿈과 미래를 투사하는 상징이었다.

축구에도 영웅은 있었다. 과거 펠레는 축구의 황제로, 마라도나는 축구의 신으로 불리었다. 황제와 신은 같은 시대에 활약하지 못했지만, 엘 클라시코는 달랐다. 2009년 호날두가 레알에 입단하면서 메호대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설을 써 내려가는 두 영웅이 매 시즌 2경기 이상  맞붙었다. 시의적절하게 등장한 두 전설은 10여 년 동안 각각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지역을 대표하는 영웅으로 맹활약했다.

호날두의 영웅서사는 불우한 성장기에서 시작한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 형은 마약 중독자였다. 어머니 혼자 청소부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2002년 포르투갈 축구 클럽  스포르팅 CP'에서 데뷔한 그는 이듬해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의 눈에 띄어 세계적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07-08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견인했고, 2008년 축구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로 명예로운 상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갈락티코 2기 출범을 계획하던 레알은 호날두를 영입하기 위해 당시 최고 이적료 9600만 유로(1250억 원)를 지불했다.

▲ 2009년 7월 7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호날두 입단식을 보기 위해 8만여 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경기가 없는 날에 경기장을 가득 메울 만큼 관중이 모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사상 최대의 입단식은 그의 스타성을 입증한다. ⓒ 레알 마드리드 홈페이지

바르샤는 메시라는 영웅을 세웠다. 메시는 불과 11살에 성장호르몬 장애 판정을 받아 성인이 돼도 신장이 150cm를 넘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치료법은 매일 밤 자기 전에 피하주사로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한 달 900달러 정도의 치료비. 메시의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메시의 잠재력을 눈여겨보던 바르샤는 치료비 전액을 지원했다. 이후 그는 169cm까지 성장했고, 21년째 원클럽맨으로 바르샤를 지켰다. 최근에는 바르샤 운영 문제가 불거져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했다.

최고 이적료로 최고의 스타를 영입하는 레알의 ‘일류주의’가 호날두를 새로운 시대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1950년대 디 스테파노가 있었다면, 2010년대에는 호날두가 있다. 메시는 카탈루냐가 애지중지 키워낸 아이돌이다. 작은 체구로 아슬아슬 전진하는 그의 드리블은 카탈루냐가 겪었던 치욕스러운 역사를 통쾌하게 치유한다. 두 클럽은 각자 방식대로 영웅을 규정하고 새로운 서사시를 써 내려간다.

요즘 영웅은 전용기 타고 다닌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영웅서사의 패턴을 발견하고 그것을  ‘원질신화’라 명명했다. 칼 융의 원형이론에 기반해 영웅서사를 무의식의 내면세계로 진군하는 개인화 과정으로 본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영웅이 존재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사회는 무수한 개인의 총체다. 개인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고 영웅의 삶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현대식 영웅은 철저히 자본주의에 근거해서 만들어진다. 엘 클라시코를 별들의 전쟁으로 만든 것도 자본이다. 영웅이 없으면 흥행도 없다. 일례로 영국프리미어리그의 로즈더비(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의 더비 매치)는 리즈의 파산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리즈의 스타들이 대거 이적해 재기불능의 침체에 빠진 탓이다. 그들의 서사시는 전성기를 뜻하는 ‘리즈시절’이라는 말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할 뿐이다.

▲ 두 선수는 구단에서 받는 연봉뿐 아니라 광고 등 수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호날두는 1900만 유로(244억 원)의 제트기를, 메시는 1200만 유로(170억 원)의 전용기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웅으로 활약한 결과는 금전적 보상으로 이어진다. ⓒ 호날두, 메시 SNS

살아있는 서사시 엘 클라시코가 리즈시절이 되지 않으려면 자본의 전쟁에서 승자가 돼야 한다. 거대 자본을 투입해 영웅을 세우고, 흥행에 성공하면 또 새로운 시대의 영웅을 도모한다. 자본의 규모가 클수록 영웅의 탄생은 극적이다. 세계인을 상대로 끊임없이 스펙터클을 판매하는 것이다. 혹여나 메호대전이 끝났다고 슬퍼 마라. 자본의 굴레 속에서 영웅은 끊임없이 탄생할 것이고, 그들에 의해 쓰이는 서사시는 영원할 것이다.


편집 :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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