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1년 퓰리처상 수상작 - 타협 불가

퓰리처상은 미국 내 언론과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이들에게 주어진다. 언론 분야는 공익 보도, 탐사 보도, 해석 보도 등 여러 부문으로 나뉘는데 지난해 퓰리처상 위원회가 '오디오 보도(Audio Reporting)'를 신설하면서 총 15개 부문이 됐다. 퓰리처상 위원회의 설명을 보면, 새로운 사실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공익에 기여한 오디오 보도에 상이 주어진다.

그 첫 번째 수상작은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National Public Radio·이하 NPR)의 주간 라디오 프로그램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This American Life)>의 '밀려난 사람들(The Out Crowd)' 보도였다. 멕시코 국경 임시 난민 수용소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이 개인에 삶에 미친 영향을 드러냈다.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의 진행자 아이라 글래스(Ira Glass)는 지난해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퓰리처상 위원회가 오디오 매체의 강점을 인식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글래스가 말하는 오디오 매체의 강점은 전달 방식에 있다. 시각적 요소 없이 내용을 전달해야 하므로 듣기만 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취재 내용을 정교하게 재구성한다. 특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실을 서사 중심으로 전달하여 청취자를 매료시킨다. 오디오 매체가 신문, 영상 등과 차별화한 저널리즘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 2021년 퓰리처상 오디오 부문 수상작인 <타협 불가(No Compromise)> 대표 이미지. ⓒ Guns&America 누리집 갈무리

'총기규제 타협 불가' 외치는 극우 단체를 추적하다

역대 두 번째 시상인 올해 퓰리처상 오디오 보도 부문 수상작은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NPR)의 심층보도 팟캐스트 <타협 불가(No Compromise)>다. 총 6회에 걸쳐 극우 총기규제 반대 단체를 추적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총기규제에 관해 크게 두 진영이 대립한다. 총기 난사 사건 등으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진영과 총기규제는 수정헌법 2조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진영이다. 후자는 총기 소지를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본다.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이하 NRA)는 총기 소지 권리를 옹호하는 대표적 단체다. 그런데 이러한 전미총기협회(NRA)조차 비판하면서 총기규제에 일절 타협하지 않겠다는 극우적인 단체도 있다.

애런 도어(Aaron Dorr), 크리스 도어(Chris Dorr), 벤 도어(Ben Dorr) 등 도어 형제(Dorr Brothers)는 미국 십여 개 주(州)에 극우 총기 권리 보호 단체를 설립해 운영한다. 펜실베이니아 주 총기협회(Pennsylvania Firearms Association), 미주리 주 총기연합(Missouri Firearms Coalition), 조지아 주 총기소유자단체(Georgia Gun Owners) 등 주별로 이름은 상이하다. 도어 형제는 페이스북으로 세력을 키워왔다. 각 단체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라이브 스트리밍, 사전 제작 영상, 밈(메시지를 재밌게 전달하는 그림, 사진, 또는 짧은 영상) 등으로 지지자와 소통한다.

▲ 벤 도어(상단 왼쪽), 크리스 도어(상단 오른쪽), 애런 도어(하단 가운데)가 온라인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Georgia Gun Owners 유튜브 갈무리

도어 형제가 회원과 지지자를 결집하는 도구는 '분노'다. 먼저 정부에 관한 분노를 강조한다. 정부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폭력적 존재로 정의한다. 정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총기규제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도어 형제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비리를 강조하며 전미총기협회(NRA)에 관한 반발심을 극대화해 지지자를 모은다. 도어 형제가 이끄는 단체야말로 투명하고 진정성 있는 총기 권리 보호 단체라고 주장한다. 총기 권리 옹호자들은 도어 형제의 분노에 공감하며 결집한다. 도어 형제가 운영하는 십여 개의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워를 모두 합하면 약 200만 명에 이른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NPR)의 지역국에서 일하는 리사 헤이건(Lisa Hagen)과 크리스 헤셀(Chris Haxel) 기자는 도어 형제를 주목하여 심층 보도했다. 리사 헤이건 기자가 도어 형제를 알게 된 계기는 총기규제 반대 시위가 아니었다. 지난해 4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헤리스버그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격리 지침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도어 형제는 이 시위에 참여했다.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왜 코로나 격리 지침까지 반대하는 것일까. 이것이 헤이건 기자가 품은 의문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파헤친 진실

두 기자는 도어 형제에 관한 사실을 수집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도어 형제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도어 형제가 총기 권리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선동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도어 형제와 오프라인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도 인터뷰했다. 도어 형제가 만든 비영리 단체의 보고서를 통해 이사진으로 등록된 사람들을 찾아갔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도어 형제에 관해 알아내고, 극우 총기 권리 옹호 단체의 뿌리를 드러냈다.

도어 형제는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 허위조작정보를 퍼뜨리기도 했지만, 지지자들은 도어 형제와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해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두 기자는 도어 형제의 가족이 반정부, 반공교육, 반낙태, 반동성애 등을 주장하는 기독교 재건주의자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극우 총기규제 반대 운동도 기독교 재건주의 운동의 일환이었다. 두 기자는 도어 형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사를 쓴 언론사 배후에 도어 형제가 있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타협 불가> 취재 뒷이야기를 전하는 추가 에피소드에서 크리스 헤셀 기자는 총기규제 반대뿐 아니라 다른 이슈와 주제에 관해서도 도어 형제의 전략이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어 형제처럼 분노를 무기화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편향된 의견을 형성하며, 진실을 교묘히 가리는 전략은 어느 주제, 어느 진영에서든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뜻이다.

▲ <타협 불가>를 제작한 리사 헤이건(왼쪽)과 크리스 헤셀 기자다. 두 기자는 취재 과정을 있는 그대로 녹음해 보도했다. ⓒ 퓰리처상 누리집 갈무리

현장감과 정교한 구성으로 몰입도 높여

6회에 걸친 <타협 불가> 보도의 회당 평균 분량은 40분이다. 시각적 요소 없이 40분 동안 소리로만 들으면 지루할 것 같지만 의외로 시간이 금방 간다. 현장감을 살린 정교한 구성으로 청취자를 몰입시키기 때문이다.

두 기자가 다양한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를 검토해 알아낸 사실들은 인물 중심의 이야기로 엮인다. 주인공은 리사 헤이건과 크리스 헤셀 기자다. 줄거리는 두 기자가 도어 형제를 추적하며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다. 기자가 사실을 수집하고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했던 일련의 행동이 모두 소리로 전달된다. 기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실이 등장해 놀라고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어떤 사실을 밝혀낼지 궁금해진다.

소리로만 엮인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살아있는 대화 가운데서 현장감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기자는 취재 과정의 거의 모든 부분을 녹음했다. 취재원을 어떤 음식점에서 만났고 어떤 메뉴를 먹으며 인터뷰했는지도 보도에 담았다. 기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실제 주고받은 대화를 녹음해 보도에 활용했다.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취재 과정을 듣다 보면 어느새 기자와 유대 관계가 쌓이고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디지털 전환, 시각화뿐 아니라 청각화도 시도해야

<타협 불가>는 팟캐스트 형태로 보도됐지만 한국인이 알고 있는 팟캐스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팟캐스트는 혼자 또는 여러 명이 스튜디오에서 시사 현안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는다. <타협 불가>는 한국형 팟캐스트와 전혀 닮지 않았다. 오히려 ‘오디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미국의 언론사는 팟캐스트를 심층 보도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타협 불가>를 제작한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NPR)은 오디오 심층보도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오디오 매체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는 조직도 따로 두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더 데일리(The Daily)>라는 일일 뉴스 팟캐스트를 제작하는데, 평일 아침마다 한 가지 이슈에 집중해 20~30분 동안 보도한다. 해당 이슈를 취재한 기자가 게스트로 출연해 취재 과정을 들려주고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심층적인 분석을 제공한다. <더 데일리>는 매일 40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 오디오 국장을 지냈던 에릭 보렌스타인(Erik Borenstein)은 <더 데일리>를 뉴욕타임스의 새로운 1면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층적 내용을 전달하는 뉴스 팟캐스트가 인기를 끌자 월스트리트저널은 <더 저널(The Journal)>을, 워싱턴포스트는 <포스트 리포트(Post Reports)>를 제작하고 있다. 미국에서 오디오 보도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독자를 모으는 주요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한국 언론사들도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하는 오디오 심층보도를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해볼 만하다. 

<타협 불가>는 여기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 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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