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안과 밖, 피해자가 가려진 공간] ① 처벌에 방점 둔 학폭 사안 처리

이른바 ‘학폭 미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21년 현재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단비뉴스> 학폭취재팀은 피해 학생이 소외되는 학교폭력 현실을 조명하고, 미흡한 제도를 살펴봤다. 이 시리즈는 <한국일보> 주최 제2회 기획취재물 공모전에서 학생 부문 우수상으로 선정됐고, <한국일보> 지면과 홈페이지를 비롯해 네이버 뉴스에 3주에 걸쳐 보도됐다. 일부 내용을 보완해 단비뉴스에 게재한다. (편집자주)

① 학교폭력, '피해자 회복'이 우선이다

② 학폭 피해 호소해도 선생님은 '묵묵부답'

③ 기숙학교는 한 곳, 특별교부금으로 연명

학교폭력은 폭력을 당했을 당시에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피해의 심각성 여부를 떠나 사건을 인지한 직후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해야 하며, 전담기구를 통한 피해자 보호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 다수의 전문가는 피해자가 과거 학교폭력을 당했을 당시 적절한 조치가 없어 충분한 회복이 이뤄지지 못해, ‘학폭 미투’와 같이 가해자를 고발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 학교폭력은 가해자의 처벌보다 피해자의 회복이 우선시 돼야 한다. ⓒ 게티이미지뱅크

20여 년간 중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올해 2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강민정 의원은 지난 5월 인터뷰에서 ‘학폭 미투’에 대해 “학생들의 피해 복구와 치유를 위한 인력 등 환경적인 기반이 부족한 것 같다”며 “미투는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극복이 안 됐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피해 극복이 피해 학생 개인에게 떠맡겨져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4월 20일 푸른나무재단 문용린 이사장도 기자회견에서 ‘학폭 미투’를 두고 “지금까지 우리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 처벌을 중심에 놓고 부모들끼리 싸우다 결국 경찰과 검찰을 거쳐 판사한테 맡겼다”며 “가해자가 벌을 받게 되면 학교폭력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지만, 피해자의 마음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겨져 미투 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모두 ‘학폭 미투’의 이유로 학교폭력의 해결 과정에 주목했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피해자의 회복은 제외된 채 가해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중심에 두고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서 왜 피해 학생이 보호받지 못하는지 살펴봤다.

▲ 푸른나무재단은 4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 조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학교폭력 피해자인 김시원(가명)씨도 참석했다. ⓒ <단비뉴스>

외부 전문가 늘려 전문성 확보했다지만

지난해 3월부터 기존에 단위 학교별로 설치돼 운영했던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로 이관돼 운영되고 있다. 이는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서 발생했던 학폭위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심의위는 가해 학생에 대한 선도나 징계, 피해학생 보호 여부 등을 심의하는 법정 위원회다. 

이전 학폭위의 경우 5~10명의 위원으로 구성했는데, 학부모대표가 과반을 차지했다. 이때 학부모대표가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과 연관된 경우가 많아 학폭위의 실질적인 독립성과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전문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교육부 학교생활문화과 팽주만 교육관은 “전문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교육지원청 심의위를 만들고 외부 전문가의 비중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 기본적인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처리 절차는 교육부가 발행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개정판이 나온 상태로 위는 기본 절차를 요약한 표다. ⓒ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참고

그렇다고 전문성 지적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 예방 등의 활동을 하는 민간 기관인 ‘더나은미래연구소’ 이해준 소장은 지난해 5월 아들이 학교폭력을 당한 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심의위의 전문성에 큰 의문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뚜렷한 처벌기준이 없어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이 피해 학생의 피해 정도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힌 학생과, 전치 2주의 피해를 준 학생에 대해 각각 출석정지 10일과 7일이라는 비슷한 처벌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에 따르면 판정 점수에 따라 가해 학생에게 어떤 조치를 결정할지에 관한 기준은 있지만, 처벌의 정도는 구체적인 양형기준 없이 개별 심의위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팽 교육관은 “피해 학생의 피해 정도만 가지고 가해 학생 조치 결과를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심의위에서는 학교폭력의 지속성·반성 정도 등을 다 고려해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심의위에 대해 이 소장이 제기하는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먼저 당시 심의위가 아들에게 한 질문들이 너무 형식적이었고, 폭행당한 경위를 묻는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다는 것이다. 가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자신과 아들에게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는데도 심의위원장은 반복적으로 화해와 용서를 권고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대구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전담교사로 일했던 A씨는 지난해 하반기 교육청 연수에서 심의위원들이 서류만으로는 제대로 된 정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워 담당 교사를 불러 질문하는 일도 생기고, 사건이 너무 많아 위원들이 개별 사안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가해 기록은 금방 사라져”···반성 없는 가해자들

대부분의 가해 학생 이력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거나, 졸업 후 2년이 지나면 없어진다. 피해 학생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치유되지 못한 채 남아 있지만, 가해 학생의 잘못은 공식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 학생과 가족은 가해 학생의 이력이 삭제되는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는 학교폭력 이력을 삭제하는 전제 조건 가운데 ‘반성의 정도에 따라 졸업 시 삭제 가능’이라는 항목에 대해 “이 항목을 평가할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회복되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가해자 학생의 태도에 따라 학교폭력 전담교사가 판단한 뒤 형식적인 심의를 거쳐 대부분 삭제가 된다”며 “담당 선생님은 피해자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 지난 2월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생활기록부 이력 삭제 권한을 피해자에게 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학교폭력 이력이 생활기록부에 평생 남는 것은 가해 학생에 대해 제9호 조치인 퇴학 처분이 내려질 때뿐이다. 하지만 중등교육까지는 의무교육이어서 가해 학생에게 퇴학 처분을 내릴 수 없다. 결국, 가해 학생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는 사실상 제8호인 전학 처분이다. 출석정지나 교내 봉사에 해당하는 조치를 받게 되면 가해 학생은 여전히 피해 학생과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고, 오히려 피해 학생이 이를 못 견뎌 전학 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해 학생이 심의위의 조치 결정에 불복하는 바람에 문제가 될 때도 있다. 가해 학생 측이 강제전학 처분에 대해 행정심판을 청구하며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경우 피해 학생과의 분리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3월 10일 “강제전학 처분에 맞서 버티는 가해학생,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보도자료에서 언급한 ‘권투연습 핑계 폭력’사건이 바로 이런 경우다. 강제전학 처분을 받은 가해 학생이 불복하고 버티다 ‘권투연습’을 핑계로 다른 동급생을 폭행해 의식불명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규정된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가운데 강제전학 등의 조치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으로부터 가해 학생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가해 학생 쪽에서 전학을 거부하며 시간을 끌거나 심지어는 해당 기간에 추가 폭력을 가하는 일이 발생하곤 해 피해자 보호와 회복 지원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강균석 교사는 “전학 조치가 나올 정도의 심각한 학교폭력이라도 가해 학생이 이를 거부해 소송에 들어가면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가 중지된다”며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리기도 하는데, 피해 학생은 전학 조치를 받은 가해 학생과 같은 학교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미숙한 ‘학교장 자체 해결제’

2019년 9월부터 시행 중인 ‘학교장 자체 해결제’는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학교의 교육적 해결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3조2에 따라 경미한 학교폭력의 경우 학교의 장은 학교폭력사건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교육지원청 심의위를 열지 않는 대신 재산상의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등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며, 피해 학생과 보호자가 자체 해결에 동의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 원만한 합의가 가능한 사안에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A씨는 ‘학교장 자체 해결제’에 대해 “현장에서는 경미한 사안이 아닌데도 무리하게 ‘학교장 자체 해결제’를 적용하기 위해 양측 학부모를 설득해 피해 학생을 더욱 상처 입히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학교장 자체 해결제’를 무리하게 적용할 경우 가해 학생은 자신이 잘못이 없어서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 당당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그것이 피해 학생에게 2차 가해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학교장 자체 해결로 종결된 사안은 원칙적으로 피해학생과 보호자가 동일 사안에 대해 심의위원회 개최를 요구할 수 없다. 다만 ▲피해 학생이 받은 재산상 손해를 가해학생과 보호자가 복구하기로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않은 경우 ▲해당 학교폭력사건의 조사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사실이 추가적으로 확인된 경우에는 심의위 개최가 가능하다.


편집 : 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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