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9년 한국기자상 수상작 –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제3자의 언어로 말하는 진실이 독자에 가닿지 못하는 일이 있다. 2018년 <한겨레>는 노인 요양 문제의 진실을 시민들의 마음에 가닿게 할 저널리즘을 시도했다. 권지담, 이주빈, 정환봉, 황춘화 기자가 요양문제를 취재했다. 권지담 기자는 한 달간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모두 3부작으로 구성된 기사의 ‘1부 요양orz’는 요양원에 사는 노인들과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목소리를 담았다. ‘2부 요양원 비리’는 제도 문제를 다뤘다. ‘3부 대안’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국내외 모범사례를 다뤘다.

▲ 탑골공원 담벼락을 따라 길게 놓여 있는 장기판 주변에 노인들이 몰려 있다. Ⓒ 임예진

2018년 한국의 노령인구는 14%를 넘었다. 2025년에는 노령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가 된다는 예측도 나와 있다. 하지만 나머지 80% 사람들에게는 나중 일일 뿐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이 10%가 넘지만 내가 환자를 부양하지 않으면 그 심각성을 알기 어렵다. 요양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돌봄 노동을 하는 요양보호사가 아니면 일이 고되다는 것을 모른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이 아니라면 한국인의 죽음이 존엄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9개월의 노력 끝에 4명의 기자들은 2019년 5월부터 13개 기사로 구성된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를 독자에게 선보였다. 이 기사는 2019년 ‘한국기자상 기획보도 부문’, 관훈클럽에서 선정하는 ‘관훈언론상’, 언론인권협회에서 수여하는 ‘인권언론상’과 ‘인권보도상’, 한국기독언론인연합회의 ‘한국기독언론대상’ 등을 휩쓸었다.

당사자의 언어로 쓰는 기사

▲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권지담 기자. 노인들의 기저귀를 가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유튜브 채널 한겨레 TV ‘한겨레 권지담 기자, 요양보호사로 일하다’ 방송화면 갈무리

권지담 기자는 한 달간 요양원에서 일했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요양보호사는 국가공인자격증을 따야 한다. 전문교육기관에서 이론, 실기, 실습과정 240시간을 이수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요양보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권 기자는 12월에 자격증을 취득했고, 1월 24일 요양원에 취업했다. 요양보호사는 요양원에 근무하는 보호사와 방문요양보호사로 나뉜다. 방문요양보호사가 되려고 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 요양원에 취업했다. 기자 신분은 숨겼다.

이를 잠입취재(Undercover report)라 부른다. 기자가 신분을 위장하고 한 집단에 들어가 취재하는 저널리즘의 한 형태다. 기자는 내부자 또는 당사자가 된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밝힐 수 없는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1887년 뉴욕 월드가 보도한 ‘정신병동에서의 10일’이 있다. 여성 기자 넬리 블라이는 정신 이상자 행세를 해서 뉴욕 블랙웰스 섬의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10일 간의 잠입취재 끝에 정신병원의 환자 학대와 열악한 환경을 폭로했다. 그의 기사는 반향을 일으켜 미국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요양원에 잠입한 한겨레 기자들의 취재에는 전사(前史)가 있다. 한겨레는 2009년 ‘노동OTL’시리즈로 잠입취재를 구현했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 기자 4명이 안산 난로공장, 인천 감자탕집, 마석 가구공장, 강북 대형마트에 취직해서 한 달간 일했다.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 예단하지 않았다. 당사자가 된 기자의 오감을 동원해 파견직과 저임금 노동자들의 현장을 취재했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파견직 노동자의 언어를 담아 기사를 썼다.

글로 쓴 다큐멘터리

잠입취재가 아니라면 발견할 수 없었을 사실들을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권지담 기자는 똥을 보기 전에 똥냄새부터 맡았다. 후각은 시각보다 빨랐다. 요양 보호사로 일했기 때문에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냄새는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 대부분이 기저귀를 차고 생활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기저귀를 벗기자 한 겹 더 있었다. 요양보호사들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더러워진 기저귀만 갈아 끼웠다. 냄새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때그때 씻을 수 없다. 목욕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기저귀만 깨끗해질 뿐 몸은 더러운 채로 있으니 욕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요양보호사들은 요양원을 ‘고려장’이라고 불렀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장수 기원이 ‘덕담’이 아닌 ‘욕’이 되는 이곳.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다. (1부 1회 ‘숨 멈춰야 해방되는 곳…기자가 뛰어든 요양원은 ‘감옥’이었다’ 본문 가운데)

낙상 때문에 입소한 할머니는 비교적 건강한 축에 들었다. 요양보호사를 격려하고 다른 노인들을 살뜰하게 살폈다. 그 할머니의 입에서는 “나 빨리 죽고 싶어”란 탄식이 나왔다. 요양은 휴양하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국 요양원에는 요양이 없었다.

기자는 한달 동안 요양보호사로 일했지만 ‘돌봄’을 제공하진 않았다. 그저 딱 필요한 만큼의 ‘처치’만 이뤄졌다. (1부 1회 ‘숨 멈춰야 해방되는 곳…기자가 뛰어든 요양원은 ‘감옥’이었다’ 본문 가운데)

▲ 입소 노인의 시간표. 시간표에 따라 요양보호사들은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 Ⓒ 한겨레 누리집 갈무리

요양보호사는 게으를 틈이 없다. 요양보호사 한명이 노인 7~8명을 관리한다.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침대 시트를 간다. 노인의 손발톱을 깎고 면도를 한다. 면도를 거부하는 치매노인의 욕설과 폭력이 요양보호사에게 날아든다. 면도가 끝나면 청소, 빨래, 점심준비 식사 도움, 양치 도움, 설거지, 빨래 널기, 간식 준비, 간식 도움, 일지 쓰기, 저녁 준비, 저녁 도움, 이동 변기와 쓰레기통 비우기가 남아있다. 저녁이 되면 신발이 작아진다. 발이 붓기 때문이다.

▲ 방문 요양보호사들의 손. 류머티즘 관절염, 방아쇠 증후군 등을 앓고 있다. Ⓒ 한겨레 누리집 갈무리

요양보호사도 각자 이야기가 있다. 대부분 중년 여성이다. 저임금 노동을 했다. 한 중년 여성은 자격증 학원에 매번 지각했다. 자녀를 등교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공인자격증을 받으면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현실은 달랐다. 학원에서 의료 행위는 안 된다고 배웠지만, 막상 요양원 현장에서는 의사나 간호사의 지시를 받아 주사를 놨다. 책임은 요양보호사 몫이다. 어쩌다 방문한 자녀들로부터 노인 학대를 의심받기도 한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야기는 독자들이 현실에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독자들은 댓글과 메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요양원에는 치매 걸린 어머니가 있었고, 거동이 불편한 장모가 있었다. 모시려 했지만 현실적 여건에 부딪혀 부모를 요양원에 보낸 사연도 있었다. 기자가 발굴한 진실이 시민들의 삶에 가닿은 것이다.

잠입취재의 윤리

다만 잠입취재는 윤리 문제를 안고 있다. 취재원은 상대방이 기자라는 것을 모른다. 권지담 기자는 후일담에서 기사가 나간 다음에야 동료 요양보호사들이 그가 기자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요양원 원장도 면접 보러온 사람이 기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권 기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경계심을 가지지 않은 취재원에게 특정 발언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었다.

잠입취재가 정당화되는 몇몇 조건이 있다. 우선 잠입취재를 도모해야만 밝힐 수 있는 진실이 있어야 한다. 만일 다른 취재방법이 있다면 잠입취재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 보도가 오직 중대한 공익을 위한 것일 때만 잠입취재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취재하는 기자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신분을 숨기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기사의 내용이 잠입취재의 결과임을 보도 과정에서 충분히 밝히고, 왜 잠입취재를 했는지도 독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한 내용을 함부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언론학자들은 이러한 조건을 두루 충족하는지에 대해 기자들이 상급자 및 전문가와 사전에 충분히 검토한 뒤에 잠입취재를 시도할 것을 권고한다.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는 이러한 윤리적 이슈를 비교적 잘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권지담 기자는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만 썼다. 공익적 목적의 보도라는 중심도 잃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요양원의 부패를 방치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미국과 유럽 전문가들을 취재하여 해외의 대안적 제도를 소개했다.

좋은 언론이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기자들을 기다리지 말라’는 중앙일보 칼럼에서 한겨레에 “눈물 겹게 고맙다”면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기사를 베끼는 현실을 고백했다. 기자들은 현장에 가는 대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 사이 한국 언론의 언어는 자기들끼리만 알 뿐 시민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됐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신뢰관계는 깨졌다. 구독률과 열독률의 하락이 미디어 환경 변화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좋은 기사보다 자극적인 기사가 더 많이 팔리는 시대이다. 이를 알고 있는 기자들도 자극적 기사를 베낀다. 한겨레의 기자들은 그런 세태를 거슬렀다. 땀 흘리는 기자만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시민들도 열렬히 읽고 댓글을 달았다. 독자들이 좋은 기사를 찾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는 어떤 언론이 좋은 언론인지 질문을 던지는 기사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 이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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