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새뮤얼 프리드먼 지음/조우석 옮김/미래인/1만원

진실 추구는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동시에 저널리즘의 가장 혼란스러운 원칙이다. 언론은 사실만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이를 풀어 설명할 해석을 덧붙여 총체적 진실에 접근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사실 보도보다 선정주의에 가까운 주장 저널리즘이 독자·시청자의 이목을 끄는 현실에서 객관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장과 해석의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제안도 있다.

한국 언론의 문제 가운데 대부분은 사실 보도를 가장한 의견 저널리즘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과 의견을 따로 배치하고 사실 전달에 적합한 기사 형태를 취하는 등 형식적으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을 '선택 및 편집'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드러낸다. 해석 이전에 사실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진실 추구라는 저널리즘의 제1원칙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기자 지망생을 위해 쓰인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는 현직 기자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보낸다. 저자 새뮤얼 프리드먼은 언론의 객관주의 전통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사실 보도가 저널리즘의 위기를 타개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파한다. 객관성에 집중해 진실을 총체적 맥락 속에서 드러내는 '사실 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표지. ⓒ 미래인

주장이 넘칠 때 깨달은 저널리즘 전통

책은 사실보도라는 저널리즘 전통의 위대함을 설명하면서, 그것에 기초하여 예비 언론인에게 조언을 건넨다. 사실보도에 충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와 관련한 저널리스트의 태도와 자세, 취재 요령과 윤리, 사실 중심 기사쓰기, 기자의 경력관리 방향 등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설명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동시에, 혹독한 조건에서도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는 기자로 살아남는 생존법을 알려준다.

프리드먼은 1975년 미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보도가 우선이며, '의견 내지 가치는 취재 과정에서 얻어지는 사실을 토대로 끊임없이 검증되고, 새롭게 수정되어야 한다'는 저널리즘 전통이 강했던 시기였다. 동시에 주장과 해석을 앞세운 '뉴저널리즘'이 등장하여 전통적 언론관에 도전하던 때이기도 했다. 저자는 뉴저널리즘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사실 보도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프리드먼이 정의하는 저널리스트는 정보의 생산과 유통의 매듭에 서 있는 성실한 자세의 사람이다.

사실보도 전통을 지키는 지침

이 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도덕성 대목이다. 기자라면 도덕성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생각이다. 그는 월터 리프먼의 <자유와 언론>을 인용하면서, 기자의 활동은 '민주주의 시대에 성직자들의 활동'이며, 신문은 '민주주의의 경전'이라고 비유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하는 현실, 팩트와 의견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 이런 역할이 훨씬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장으로 간주하지 않는 태도는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기자가 갖춰야 할 또 다른 조건이다. 프리드먼은 어떤 이슈를 선과 악으로만 나눌 수 없다면서, 복잡한 사회에선 선과 선 사이의 충돌을 충분히 조명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시카고 빈민촌의 구제 활동가 라조 리버스에 관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를 ‘선과 선의 충돌’에 대한 대표 사례로 소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앨릭스 코틀로위츠 기자는 라조 리버스가 ‘빈민을 돕는 복지의 대모’였지만 복지 지원금을 두 아들을 위해 쓰는 등 사적 이익을 챙겨왔다는 점을 취재로 밝혔다. 저자는 "기존 이미지와 상반되는 팩트가 취재 과정에서 튀어나왔을 때 그것을 '불편한 진실'이라고 판단해 슬그머니 버리지 않고 모두 균형을 잡아 서술했다"고 이 기사를 평가했다.

저자는 이외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인간의 가슴'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기자가 소속한 집단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취재원과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등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 예비 언론인들이 기자 출신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들과 대화하고 있다. 전·현직 기자·PD의 조언은 예비 언론인에게 생생한 '저널리즘 핸드북'이다. ⓒ 단비뉴스

풍부한 디테일로 저널리즘 역할 강조

사실 보도만 하면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해석을 전달해야 독자에게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언론학자도 있다. 미첼 스티븐스는 <비욘드 뉴스: 지혜의 저널리즘>에서 사실 보도가 정치 혐오와 사회에 관한 무관심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프리드먼은 스티븐스의 반대편에 서있다. 프리드먼은 해석과 통찰이 아니라도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기사 쓰기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프리드먼은 조지 오웰의 산문 <정치와 영어문장>을 읽어보라고 조언한다. 오웰은 구체적인 언어를 건강한 언어로 규정하고, 비민주적인 정치를 거부하는 신념은 건강한 언어와 문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애매하고 완곡한 표현이 득세하는 세상에서는 진리와 사회 정의가 사라지므로 세상을 구하는 것은 구체적인 언어다.

이런 생각은 취재 및 기사쓰기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저자 프리드먼은 세상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눈과 귀 뒤편에 있으며, 안 보이고 안 들리는 영역에 있다"면서,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는 것이 취재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뉴욕타임스> 미치코 가쿠타니 기자가 쓴 공연 기사를 사례로 들었다. 기사는 공연 내용, 무대, 배우 등에 초점을 둔 여느 공연 리뷰와 달리, 유명 음악가인 아버지로 인해 겪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갈등과 상처를 밝혀 그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했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들어, 취재는 인간적인 영감과 공감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한다.

인물의 내면뿐 아니라 버릇이나 행동으로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터뷰를 전면 거부하는 유명인을 취재한 게이 탤리즈 <에스콰이어> 기자를 사례로 들었다. 기자는 인터뷰 일정을 잡는 데 열중하는 대신, 해당 인물이 나타나는 현장 주변을 여러 차례 나가 작업하는 모습, 술자리, 영화 촬영 현장 등을 관찰했다. 그렇게 모인 디테일로 기사를 쓰며 한 인간을 포착해낼 수 있었다고 저자는 밝혔다.

기사쓰기 대목에서 프리드먼은 기자라면 '스토리텔러' 역할에 충실해야 하며 자기 목소리를 절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 즉 취재원의 목소리를 우선 전하라는 것이다. "기자가 원하는 감정이나 메시지를 독자 스스로 움켜쥐었다고 생각하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유도하는 것이 좋은 기자, 좋은 이야기의 정답"이라고 설명했다. 강제 퇴거 조치를 받은 뉴욕 브루클린 구역의 한 일가족을 치밀하게 묘사했지만, 기사의 마지막에 '비극'이라는 표현을 써서 타박을 받은 피트 해밀 <뉴욕포스트> 기자, 체첸 사태를 기사로 쓰면서 감정을 절대 드러내지 않은 크리스 치버스 <뉴욕타임스> 기자 등을 사례로 들었다.

급변하는 언론 환경에서 읽어야 하는 책

2018년 프리드먼은 한국에 방문해 삼성언론재단이 주관한 <제9회 한국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현직 기자들에게 강연했다. 그는 오늘날 기자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지면서도 저널리즘 전통을 수호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을 찾고 검증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그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매초 마감의 압박을 받으며 전세계 언론과 경쟁하"는 환경에서 "[손쉽게] 보도하는 것보다 정확히 보도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건강한 언어로 저널리즘의 역할을 설파한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는 미국에서 2006년 처음 출간됐지만, 2021년을 살아가는 한국의 예비 기자, 그리고 현직 기자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감과 깨달음을 제시한다.

100자 평
저널리즘의 생존을 고민하는 모든 이가 볼 만하다.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원칙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과 비교해 읽기 편하고 수월하다. 다만 한국 상황과 맞지 않은 내용도 있음을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


 


편집 : 심미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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