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K 양극화' ③ 지역

나를 포함해 고등학교 친구들 12명이 모인 단체 채팅방이 있다. 우리는 전라북도 군산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12명 중 9명이 학업과 직장을 이유로 서울에 왔다. 남은 3명 중 2명은 같은 이유로 군산 인근 대도시로 떠났고, 1명만이 온전히 군산에 남아있다. 대학 때문에 군산에서 서울로 갔다가, 직장 때문에 전라도 전주에 사는 친구 A는 서울에 있는 직장을 잡으려 틈틈이 입사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최근 이직에 성공했다. 전주로 대학을 간 친구 B는 취직을 서울로 했고, 월세가 비교적 저렴한 관악구에 자취방을 구했다. 군산에서 대학을 다닌 친구 C는 서울로 취직을 해 3년째 서울에 홀로 살고 있다. 대전에서 대학을 다닌 친구 D는 서울에서 1년간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다시 대전으로 갔다. 군산을 떠난 다른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 군산시 인구는 2013년 27만8562명으로 정점을 찍고 나서 줄어들고 있다. 지난 1월 기준으로는 26만9779명이다. 군산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라북도의 14개 지자체 중 군산, 익산, 전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소멸위험지수가 0.5 아래인 소멸위험지역이다. 숫자가 작을수록 해당 지역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 김현주

모두가 군산에 살던 시절, 살던 동네는 달랐지만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기도 하고 공원에서 만나 산책을 하기도 했다. 실없는 농담을 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각자 뿔뿔이 흩어진 우리에게 ‘집 근처에 새로운 떡볶이집이 생겼다’는 대화는 이제 의미가 없다. 우리가 떠올리는 떡볶이집 사장님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은 12명 다 같이 여행을 떠나자는 약속도 지키지 못한 지 몇 년째다. 12명 중 시간이 맞는 친구 몇몇을 만나 웃고 떠드는 일은 아직도 즐겁고 행복하지만, 심심하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 배드민턴을 치고 근처 와플 가게에 가서 간식을 먹던,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던 그때와 같지는 않다.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적응해서 살아남았기에, 지금 당장 우리의 수입과 생활은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미래는 피폐해졌다.

학교의 양극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와 학교이다. 지난해 6월 통계청이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과 향후 인구전망’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9년 수도권 1인 가구는 직업, 교육, 주택을 이유로 순유입됐다. 2019년에 8만3000명이 수도권으로 옮겼는데 그 이유는 중 6만4000명이 직업, 2만1000명이 교육 때문이었다. 학업과 경제활동을 가장 활발히 할 시기인 20대의 순유입은 2000년부터 20년간 지속됐다. 

내 친구들도 12명 중 6명이 학업을 이유로 서울에 왔다.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서울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교육을 받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성적 좋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특별관리반을 운영했고, 고등학교에서는 기숙사까지 내주었다. 기숙사는 성적이 아니라 거주 지역을 기준으로 배정해야 하지만, 학교 성적을 기준으로 입사생을 뽑았다. 사실상 ‘24시간 특별 관리’를 위한 것이었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학교도 사정은 비슷했다. 당시에는 나도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지방대가 ‘인서울’보다 더 ‘잘 나가던’ 시절도 있다. 1986년에 <조선일보>에 실린 학력고사 점수에 따른 대학별 배치표를 보면 서울대 가정관리·미학과와 부산대와 경북대의 영어교육·국어교육과의 점수가 같다. 그리고 고려대 국문·사학·불문학과, 연세대 교육학과와 전남대 영어교육, 부산대 지리교육·역사교육학과의 점수가 같다. 무리하게 돈을 쓰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아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는 대신 자기가 나고 자란 지역에서 가까운 대학에 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입시와 교육은 서울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인서울’ 아니면 ‘지잡대’로 나뉘는 세상에서 지방에 사는 학생들은 서울을 꿈꾸도록 강요당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인서울’을 몇 명시키는 고등학교인지 따지고 지방대학을 비하하는 용어인 ‘지잡대’가 미디어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기 학교가 ‘지잡대’냐고 묻는 글이 올라온다. 

국가 지원도 한쪽에 쏠려있다. 지난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는 충격적이다 못해 한심하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세 대학이 지원받은 금액이 6조5600억 원이라는 게 드러났다. 전국 대학생 4% 정도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전체 교육재정의 10%가 지원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은 “경제는 인센티브에 반응한다”고 했다. 토빈이 말한 인센티브 원리는 인간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손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서울로 가는 이유도 인센티브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점수라면, 자기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얻게 될 이익이 지방에서 대학을 다닐 때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지방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은 다 서울로 가라고 나라가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 국가 교육재정의 약 10%가 전체 대학생의 약 4%가 다니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쏠려있는 현실은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를 상징한다. Ⓒ KBS

지방대학은 그 지역의 경제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곧 지역의 위기이기도 하다. <뉴시스>는 지난 2018년 전북 남원지역의 서남대학교 폐교 이후 인근 지역 상권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뤘다. 남원지역에서 1년에 100억 원에 육박하는 소비 활동을 하던 학생들이 사라지자 상가와 원룸이 폐업하고, 택시와 버스업계도 충격을 받았다. 300여 명의 교직원도 직장을 잃었다. 인구 변화 등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은 필요하지만 서울과 지방,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이중화되어 있는 대학 분포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지방대학 붕괴는 지역 붕괴로 이어진다.

서남대 사례는 특별한 게 아니다. 한국지역경제학회가 지난 2017년 발행한 ‘지역거점 국립대학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전북대학교가 전라북도에 존재하면서 생기는 생산유발효과는 전라북도 전체 예산의 9.5%에 이를 만큼 크다. 그럼에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대학 서열화가 공고해지며 지방대학 소멸을 가속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대입 정보 포털 ‘어디가’의 정시모집 결과를 전수 분석해 지방 대학의 경우 29%가 경쟁률 1대1 미만이었다고 분석했다. 지역 간 교육 불평등은 이제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심화했다. ‘서울대를 없애라’, ‘프랑스처럼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를 한 묶음으로 만들라’, ‘서울에 있는 사립대를 전부 지방으로 보내라’ 등의 과격한 주장마저 등장한 지 오래지만,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의 양극화
서울과 지역의 교육 불평등이 심화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자리 불평등 때문이다. 수도권과 지방에서는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양과 질 모두에서 차이가 난다. ‘인서울’은 대학에만 적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단비뉴스>는 ‘지방대 위기와 혁신’ 기획 기사에서 국내 최대 규모 취업 플랫폼 중 하나인 잡코리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신입 또는 경력 3년 이하 직원을 뽑는 채용공고의 45.4%가 서울에 몰려있었고, 인천과 경기도를 포함하면 78.9%의 채용공고가 서울을 소재로 한 직장에서 모집하는 것이었다. 10개 중 2개를 수도권이 아닌 나머지 시도가 나누고 있었으며 광주나 경북, 전주, 제주, 강원, 전남, 울산, 세종은 전체 채용공고의 불과 0.5~1.4%만을 차지했다. 

일자리의 양뿐 아니라 질에서도 지방은 뒤처진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간한 ‘지역의 일자리 질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보고서는 전체 지역별로 일자리의 질을 수치로 나타내 비교했다. 전국에 252개 시군구가 있는데, 고숙련-고학력-고소득 일자리가 많은 상위 39개 지역 중 82%인 32개 지역이 서울과 경기도에 있었다. 반면 하위 54개 지역에서는 단 1곳만이 경기도 연천이었고, 나머지 53개 지역은 경북, 충북, 전남, 강원 등이었다.

▲ 한국고용정보원은 2015년 기준으로 시군구별 일자리 질 지수를 비교했다. 진한 초록색일수록 고숙련-고학력-고소득 일자리가 많다는 뜻인데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몰려있다. Ⓒ 한국고용정보원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는 ‘청년인구 이동 문제 진단을 위한 청년 현실에 기초한 지역격차 분석 연구’에서 지역별로 5인 이상 사업장의 월평균 급여 수준을 비교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과 울산만 전국 평균보다 높은 급여 수준을 유지했다. 부산, 대구, 인천, 광주, 강원, 충북, 전북, 제주는 조사 기간인 8년 내내 월평균 임금에 미치지 않는 급여를 받았다. 2018년 기준으로 서울에 있는 5인 이상 사업장에선 월평균 356만3000원을 받았지만 대구에선 276만6000원, 제주에선 258만4000원을 받았다. 

심지어 취업 준비 과정에서도 지역 격차가 있다. 취업준비생들은 같은 직무를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스터디를 꾸려 공부를 한다. 스터디 모임도 서울을 중심으로 꾸려진다. 언론사 채용 관련 커뮤니티인 다음 아랑 카페에 지난 26일을 기준으로 스터디 모임 관련 게시판에 올라온 최신 글 30건을 분석해 봤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온라인 스터디 모임을 제외하고, 오프라인 모임 10건 중 9건이 서울이었고 단 1건만 부산이었다. 지방 청년들이 서울로 유출되니 지방에는 스터디 모임을 할 수 있는 인구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스터디 모임을 꾸려 준비해야 할 정도로 ‘좋은’ 일자리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으니 스터디 모임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화생활의 양극화
교육과 일자리에서 겪는 불평등 문제를 감당하고 지역에 남은 친구들은 문화생활의 양극화를 지적한다. 좋은 콘서트나 전시회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즐길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표한 ‘문예연감’에 따르면, 2019년 열린 4만4183건의 문화예술 활동 중에 1만3864건인 31.37%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경기도까지 포함하면 44.85%이다. 당연한 결과다. 지역에는 사람이 없으니 문화예술 활동도 수도권으로 집중될 수밖에. 문화생활의 양극화는 다시 지역민들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서울과 수도권은 굳이 시간을 내 특정한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주변에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다.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로 와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대학가의 화려함이었다. 군산에서 본 대학가와는 전혀 달랐다. 홍익대학교 인근에는 개성이 강한 카페나 음식점이 즐비했고, 성균관대학교 인근에서는 연극을 매일 볼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 직장 때문에 홀로 상경한 언니의 자취방에 며칠 머물던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을 봤다. 영화 보듯 일상적으로 연극을 보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했고 부러웠다. 군산에서 연극을 한 편 보려면 마음먹고 서울에 올라오거나, 인근 지역에서 공연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했다. 

▲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이 기부한 미술품과 문화재를 전시할 이건희 미술관의 건립은 서울과 지방의 문화생활 양극화를 해소할 좋은 계기였지만, 끝내 미술관 부지는 서울로 확정됐다. Ⓒ KBS

이런 상황에서 생긴 이건희 미술관 건립 파동은 상징적이다. 지자체들은 지방과 수도권의 문화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이때, 미술관을 지역에 짓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이건희 미술관을 서울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건희 미술관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며 남긴 문화재와 미술품 등을 유족 측이 기부함에 따라 짓게 되는 미술관이다. 삼성의 전신 삼성상회가 생긴 도시인 대구를 포함해 제주, 부산, 세종, 진주, 경주, 창원 등 여러 지자체가 지역균형발전 등을 이유로 유치에 나섰지만 허사였다. 해당 지자체들을 포함해, 미술계와 시민단체들은 지금도 서울 건립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전히 정부는 서울에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 서비스의 양극화
초등학생 때 식은땀을 흘릴 만큼 배가 아팠던 적이 있다. 엄마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차에 태우고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군산의료원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단순한 복통이었다. 나는 치료를 받고 별문제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군산의료원은 전라북도청 산하의 병원으로 성공한 공공의료의 사례로 종종 언급될 만큼 좋은 병원이다. 군산의 경우 군산의료원 같은 병원이 있어 다행이지만, 급한 상황에 갈 병원이 마땅치 않은 지역도 많다. 지난해 <MBC>는 응급 환자가 발생해도 한 시간 거리인 속초나 강릉까지 가야 하는 강원도 고성의 의료 실태를 보도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에 따르면 권역응급의료센터까지 1시간 넘게 걸리거나 지역응급의료센터까지 30분 넘게 걸리는 인구의 비율이 27% 이상인 응급의료취약지는 총 97곳인데, 그중 서울 지역은 하나도 없다. 인천 2곳과 경기 5곳을 제외하면 나머지 90곳이 비수도권 지역이다. 비수도권의 경우 응급환자가 생겨도 갈 수 있는 마땅한 병원이 없는 지역이 더 많다는 뜻이다.

지역사망자 중 우리 수준에서 가능한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치료가능 사망률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드러난다. 보건복지부는 5년마다 ‘보건의료실태조사’를 발표한다. 2017년 11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강원도의 치료가능 사망률은 80.7명이고 서울의 치료가능 사망률은 59.1명이다.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가 있었다면 80.7명은 죽지 않았을 것이란 뜻이다. 다른 기준을 적용한 데이터에는 서울이 44.6명, 충북은 58.5명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서는 “치료가능 사망률은 의료시스템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라고 설명한다. 즉, 서울과 지역의 의료시스템 격차가, 살릴 수 있었는데 죽어버린 사람의 숫자를 통해 드러나는 셈이다. 

▲ 보건복지부의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에 따른 치료가능 사망률은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그만큼 지역민이 열악한 의료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 김태형

지역의료 공백은 코로나19를 겪으며 더욱 분명해졌다. 열악한 지방 공공의료 문제가 다시 대두됐다. 지난해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했을 때 대구시는 병상 부족을 겪었다. 당시 유행을 비켜 갔던 전라북도 광주에서 대구 지역 확진자를 수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단비뉴스>가 ‘청년기자의 시선’에서 보도한 “이동과 치료를 ‘권리’로 주장해야 하는 세상”은 공공병원이 전혀 없는 지자체에서 적은 확진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망자가 나온 사례를 짚었다. 울산시에 위치한 양지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했지만, 울산시에는 공공병원이 없었고 다른 민간 요양병원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결국 환자들을 이송하는 데 20일이 걸렸고, 양지 요양병원에서 2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을 겪고 있는 지금도 지역 공공의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강원도는 확진자 수 급증으로 병상 가동률 86%를 넘기며 병상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충북 지역에서도 코로나 4차 유행 위기를 맞으며 의료시설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각 지역에 하나씩 거점 공공병원을 설립하고, 이에 따른 의료인력을 보강하라는 전문의료 단체의 요구는 여전히 허공을 맴돌고 있다.

양극화에서 벗어나려면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의 성장을 위한 인프라나 즐길 거리는 수도권으로 몰리고,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꺼리는 것들은 지방에 몰린다. 대표적으로 전력 사용량 대비 송전탑과 송전선로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 많다.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 등이 지방에 몰려있어 그 전력을 수도권으로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에너지 자립률은 11%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쓰는 에너지의 11%만 서울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MBC>에서는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수도권과 가까운 도시인 충북 청주에서 처리하고 있는 실태를 보도했다. 소각장 인근 마을에서는 전국과 비교해 폐암이 33% 정도 더 많이 발생하고 있었고, 식도암은 전국 평균에 비해 2배 가까이 발생했다.

지역만 피해의 대상이 아니다. 수도권은 수도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지역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수도권과 서울로 몰리니 교통은 혼잡해지고, 경쟁이 심화한다. 공급은 제한적인데, 수요가 집중되니 부동산값이 치솟는다. 제집 마련도 어려운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사람이 빽빽하게 모여있으니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재해재난 상황에 취약하다. 수도권 인구는 전체의 50% 정도인데, 코로나 확진자 비율은 70~80%를 차지한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서울-지방 양극화를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늘고 온라인 모임이 활성화하면서 지역에서의 자연 친화적 삶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됐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코로나19 이후 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옮긴 사람이 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4월, 농산어촌유토피아 특별위원회가 정부기구로 출범했다. 계기는 경남 함양군 서하초등학교의 지역 회생 성공 사례였다. 함양군 서하면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서하초등학교는 폐교위기에 몰렸을 때, 지역민과 지자체, 학교가 나서 집, 일자리 등을 제공하고 특성화 교육을 약속하는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10명에 불과했던 학생은 25명으로 늘었고, 주민 35명의 전입으로 지역은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었다. 현재 전학을 신청한 가정은 73가구에 140명이나 된다. ‘지방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작은 학교에서 제시한 것이다.

▲ 경남 함양에 있는 서하초등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폐교위기에 처했다가 집과 일자리, 특성화 교육을 내세운 ‘아이토피아’ 공약으로 ‘시골학교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 KBS

불균형이 이 시대의 불공정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게 스펙’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실질적 평등을 위해 만들어진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전형은 형식적 평등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역차별이라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언론에서는 태풍이 와도, 폭우가 쏟아져도 서울만 벗어나면 ‘다행’이라고 보도한다. 지역민들은 교육, 취업, 문화 등 사실상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인식한 채 살아간다. 지역 간 정치·경제·문화·사회적 격차는 지역 간 불공정이 됐다. 

개천에서 용을 나게 하고, 개천에 있는 용뿐만 아니라 가재나 붕어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수도권에 태어난 것 자체로 특권이 되고, 비수도권에서 태어났다고 불균형과 불평등을 감수해도 된다는 건 이 시대가 넘어야 할 대표적 불공정이다. 비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2등 시민’이 아니다. 서울과 지방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입술이 망가지면 잇몸이 시리듯, 지방이 붕괴하면 서울과 수도권도 무너진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을 이제는 비틀어야 한다. 지방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정치와 제도가 절실하다.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만 국민인 게 아니다. 지방 사람도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K 양극화’다. 코로나 팬데믹은 그동안 방치돼 온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심화했다. 가진 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어려운 이는 더욱 나락에 빠져 신음 중이다. ‘사회적 돌봄’이 코로나 이후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오늘, 청년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K 양극화’ 실상을 조명한다. (편집자)

편집 : 김대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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