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한미 원전 수출 협의' 보도 프레임 비교

올해 초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 하루 전, 청와대 관계자가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원전 협력 논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알렸다. 국민들에게 한미 협력의 구체적인 사례를 확실히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회담에서는 한미 미사일 지침 문제와 함께 원전 수출 협력 방안이 실제로 논의됐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원자력 발전 시장 진출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합의에 대해 국내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빅카인즈를 통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기사 중 ‘원전 수출’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를 검색했다. 5월 21일 이후 6월 21일까지 한 달간 양 언론은 총 39건의 기사를 보도했다. <조선일보> 26건, <한겨레> 13건으로 <조선일보>가 두 배나 많이 다뤘다.

▲ 5월 21일~6월 21일 ‘원전 수출’ 키워드가 등장한 <조선일보> <한겨레>의 기사 건수. ⓒ 김대호

“원전 수출'과 '탈원전'은 이율배반적, 탈원전 정책 재검토해야”

<조선일보>는 '원전 수출과 탈원전 정책은 이율배반적이다.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내세웠다. 기사 제목과 헤드라인에서 탈원전과 원전 수출은 모순적이라는 뉘앙스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22일 '국내선 탈원전하면서 미국 가서는 ‘원전 수출’논의' 기사를 내보냈는데, 국내 원전업계의 발언을 인용해 “자국에선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외국에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보도했다. 5월 24일과 25일 사설에서도 ‘탈원전’ ‘모순’ ‘오류’ 등의 제목을 사용해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는 국내 원전 업계와 교수 등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며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다. ⓒ 조선일보
▲ <조선일보>는 사설에서도 ‘탈원전’ ‘오류’ ‘모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 조선일보

“원전 수출 협력과 탈원전, ‘모순’ 있을 수 있어도 문제없어”

<한겨레>는 원전 수출 협력과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는 프레임을 내세웠다. 모순이 있을 수는 있지만, 탈원전 정책은 문제없다는 것이다. 환경단체의 말을 인용해 원전 수출의 모순에 대해 언급은 했으나, “원전 수출 협력과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는 정부의 입장을 옹호했다. “원전 수출에 있어서 양국 협력을 말하는 것이지, 국내에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는다는 에너지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라고 한 산업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했다. 또, "수출은 하지만 짓지는 않는다는 정부 방침이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원자력 업계와 학계, 보수진영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환경단체의 발언도 함께 실었다. 이 신문은 회담이 열리기 직전 '한-미 정상회담, ‘사거리 800km’ 미사일 지침 해제 논의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후 22일 공동성명이 나오기 전 새벽 4시 59분에는 '미사일 지침 완전 해제 여부·원전 수출 협력도 논의' 기사를 등록했다.

<한겨레>에서 ‘원전 수출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언급한 기사는 2건이다. 5월 22일 '‘탈원전’으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 ‘원전 수출’로 문 닫나' 기사에서 ‘원전 수출 협력을 약속한 것을 두고, 정부가 정권 초부터 내세운 탈원전 정책 기조와 엇박자를 내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말하면서 한쪽에선 원전을 수출하는 정책을 펴고, 나아가 이런 부분에서 미국과 협력을 하는 모습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한 기후·환경단체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부 관계자의 “국내에 원전을 짓지 않겠다는 에너지 전환 정책은 변함이 없다”는 발언도 인용하며, 양국 정상이 협력을 약속한 내용은 해외 원전 시장 진출에 관한 것이지, 국내 원전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보도했다. 이어 5월 23일 [뉴스AS] '’탈원전‘인데 원전 수출? 한·미 원전 협력 둘러싼 궁금증 4가지' 기사를 통해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는 달라진 게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이 기사에선 <조선일보>의 보도를 두고 ’탈원전 정책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한겨레>는 원전업계를 대변하는 <조선일보>가 이번 발표를 두고 ‘탈원전과 원전 수출은 모순’이라고 주장하며 탈원전 정책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

탈원전 '폐지론'과 '옹호론'

<조선일보>는 '원전 수출과 탈원전 정책은 이율배반적이니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탄소 중립 실현과 원전 업계 발전을 위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맥락이다. <한겨레>는 '원전 수출과 탈원전 정책은 별개다. 모순점이 있더라도 탈원전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프레임을 강조했다. 원전을 해외에 수출해도 국내에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는다는 탈원전 정책은 변함없다는 맥락이다. <조선일보>가 정책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도록 했다면, <한겨레>는 원전 수출 협력 발표와 국내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는 프레임을 사용해 탈원전 정책을 옹호했다.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원전 수출에 협력하기로 발표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와 <한겨레> 보도는 상충하는 입장을 보였다. 원전 가동 중지에 대한 찬반으로 모든 쟁점을 집중시키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실현한다는 국제적 흐름에 동참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탈원전’이라는 정책에 대해서만 집중해 갈등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탄소배출을 줄일 것인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토론을 해야 한다. 원전을 유지하느냐 폐지하느냐는 그 과정에서의 한 방법일 뿐이다.


편집 : 유희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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