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한드미 마을 농촌유학센터

아이들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산골 마을

‘유학’하면 흔히들 ‘해외유학’이나 하다못해 ‘서울유학’을 떠올린다. 그런데 농촌으로 ‘조기유학’을 떠나는 아이들이 있다. ‘농촌유학’이란 도시 아이들이 농촌에 머물면서 시골학교에 다니고 농촌을 체험하는 교육을 말한다. 아이들은 방과 후 지역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자연스레 익히고 자연체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 농촌에서 마음껏 뛰놀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교육이다. 

▲ 웅장한 소백산맥과 계곡이 어우러진 한드미 마을. ⓒ 왕범준

충북 단양군 한드미 마을은 농촌체험과 농촌유학을 마을 사업으로 정하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할 수 있는 농촌유학센터를 설립했다. ‘한드미’는 ‘조용하고 한적한 큰 들’을 뜻한다. 주위로 웅장한 소백산맥과 아름다운 계곡이 어우러진 한드미 마을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해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

토요일인 지난 12일에는 ‘한드미 농촌유학 가을한마당’ 행사가 열려 학부모들도 아침 일찍 마을에 도착했다. 부모들은 선생님들과 같이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배추로 김장을 했다. 어른들이 김장을 담그는 동안 아이들은 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을 차며 신나게 놀았다. 여느 시골마을의 적적한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다.

▲ 어른들은 김장을 하느라 분주한데, 뛰놀던 아이들 중 몇은 통 안의 고구마가 익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 왕범준

한드미 농촌유학센터는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서 초등학생들을 모집해왔다. 한드미 농촌유학센터장인 정문찬 대표(51)는 지난 2007년 인근 대곡분교가 폐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도시 아이들을 유치하는 농촌유학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는 이장을 7년째 맡으면서 한드미 마을을 농촌 체험마을로 탈바꿈하여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농촌유학센터를 설립해 마을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했다. 한드미 마을 농촌 유학생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현재 35명이 시골생활을 하고 있다.

▲ 휴식시간에 다같이 축구를 즐기는 선생님과 아이들. ⓒ왕범준

할 게 많아 컴퓨터게임도 뒷전

학생들은 일반 학과수업은 인근 대곡분교에서 지역 아이들과 같이 받고, 유학센터에서 필리핀 원어민 교사를 비롯한 8명의 생활지도교사가 짠 프로그램에 따라 여가시간을 보낸다. 텃밭을 가꾸고, 전통놀이를 하고 외부강사를 초빙해 기악과 댄스를 배우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고향에서 아이들 생활지도를 맡고 있는 정영민 선생님(29)은 이곳 아이들이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들보다 뭔가 시도해보는 적극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곳 아이들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데 솔직하고 호기심도 많아 언제나 활기가 넘치고 표정이 밝아요. 시골에 온 뒤 아이들은 TV시청이나 컴퓨터게임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할 게 많으니까요. 저 자신이 도시에서 하던 일보다 여기서 하는 일에 훨씬 큰 보람을 느낍니다.”

▲ 평소 아이들과 격의없이 지내는 정영민 선생님. ⓒ 왕범준

한드미 유학센터에는 아이들 말고도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함께 지내고 있다. 홍콩 출신의 안문청, 관명가, 조요건 학생은 우프(WWOOF)라는 농촌체험 단체를 통해 이곳에 왔다. 그들은 한드미 마을 농촌체험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다음 달 홍콩으로 돌아가는 그들은 유학센터에서 지내는 동안 아름다운 마을 풍경과 고운 아이들의 심성에 반했다고 말한다.

▲ 홍콩에서 한국 농촌을 경험하러 온 학생들. 왼쪽부터 안문청(23), 관명가(22), 조요건(22). ⓒ 왕범준

농촌 유학중인 아이들 중에는 고학년이 절반 이상이다. 6학년 회장이면서 유학센터 농촌기자단 활동도 하고 있는 김병훈군(13)은 “학생수가 적어 선생님들이 정말 세심하게 우리들을 지도해 주신다”며 “사진 찍기와 운동이 취미여서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래에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태석 신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홍진기군(13)은 내년 졸업으로 한드미 마을을 떠나게 되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진기는 “친구들과 산에 열매를 따러 가거나 ‘오징어 달구지’ 같은 놀이를 하면서 시골생활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농촌유학 결심”

김장 행사에 참여한 학부모들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한드미 마을에 아이를 맡기면 학교수업이 없는 ‘놀토’(둘째, 넷째 토요일)를 빼고는 아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뒷전이고 친구들과 뛰고 노는 데 바쁘다. 학부모들은 그런 자녀들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전엔 애가 굉장히 산만하고 편식도 심했어요. 그런데 농촌유학을 보낸 뒤 아이가 차분해지고 편식습관도 없어졌어요. 인사성도 밝아졌고요. 애가 원한다면 내년에도 보낼 생각입니다.”

▲ 딸의 농촌유학 생활을 만족해하는 고성희씨. ⓒ 왕범준

김지민양(11)의 어머니 고성희씨(36)는 아이를 맡기고 처음에는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드미 인터넷 카페를 통해 업데이트 되는 아이의 사진과 소식을 보며 안심했다고 한다. 그는 월 70만원인 유학비가 도시생활에서 아이를 키우는 비용에 비해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부모회 회장이자 성공회대에서 대안교육을 연구하는 하태욱 교수(40)는 이곳에 2년째 아이를 맡기고 있다. 아들 늘찬(13)이는 7살 때까지 영국에 살다가 한국에 온 뒤 부쩍 짜증이 늘었다고 한다. 아이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지적하는 교육환경에 염증을 느낀 그는 아이의 행복의 위해 농촌유학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얼마 전 늘찬이가 저를 산에 데려가더니 나무열매를 가리키며 그 열매에 관해 설명해 주었어요. 애가 자연에서 스스로 배우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요."

하 교수는 “도시보다 농촌에서 학교생활을 하면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늘찬이는 시골생활을 하면서 산에서 열매를 따거나,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고, 친구들과 전통놀이를 하며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찾고 자립심도 향상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더욱더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지내는 시골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농촌유학 결정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교육이 살아야 농촌이 삽니다”

▲ 고향 한드미에 농촌유학을 기획한 정문찬 대표. ⓒ 왕범준

정문찬 대표는 내년에 중학생 농촌유학을 추진하기 위해 요즘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농촌의 미래가 어린이들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피폐해 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고향에 남아 농촌유학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이 일을 해도 경제적으로는 남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농촌유학이 살아야 교육이 살고, 교육이 살아야 농촌이 삽니다. 농촌유학으로 아이가 얻는 경험은 값진 자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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