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공공재' ➃ (사회적) 신뢰

이상한 나라, 노르웨이

노르웨이에 도착해 가장 먼저 산 건 교통카드였다. 전날 공항에 내려 기숙사까지 가는 데 5만 원 가까이 썼다. 공항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데 3만 원, 지하철을 타고 가는 데 8000원, 역에서 기숙사까지 버스 한 번 타는 데 7000원이나 들었다. 대중교통 시설은 깨끗하고 안락했지만, 요금은 비싸도 너무 비쌌다. 날이 밝자마자 룸메이트가 알려준 정기 교통권을 구매하러 가까운 역으로 향했다. 정기 교통권은 세 종류가 있었다. 1일권은 만 오천 원, 일주일 권은 5만 원, 한 달 권은 7만 원이었다. 단기 여행자들을 위한 1일권이나 일주일 권에 비해, 한 달 권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이 사용한다. 나는 한 달 권을 산 후에야 안도했다.

그날 오후, 학교에 갈 일이 있어 카드를 챙겨 나갔다. 버스를 탔는데 입구에 카드를 찍는 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정류장에 나와 함께 서 있던 몇몇 학생들은 그냥 뒷문으로 탑승해 뒷자리에 앉아 떠들었다. 출입문에 서서 안절부절하는 나에게, 운전기사는 뒤로 가라는 손짓을 했다. 버스 기사는 누가 카드를 찍는지 관심도 없었다. 나는 카드를 찍지 못하고 버스 뒤쪽으로 밀려났다. 버스에 탄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외지인이었던 나는, 주머니 속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학교에 가는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다.

▲ 버스, 지하철, 트램, 페리 등 노르웨이 오슬로의 대중교통은 깨끗하고 안락하다. 시민들은 대부분 정기 교통권을 구매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탑승권을 검사하지 않는다. 노르웨이 대중교통은 공공재와 시민의 신뢰가 신뢰의 선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 유재인

후에 노르웨이 친구가 말해줘 알았다. 교통카드는 처음 산 날 한 번만 태그하면 해당 기간 동안 찍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버스, 지하철, 트램, 심지어는 페리(배)도 마찬가지였다. 요금을 내지 않은 채 통과해도 자동으로 가로막히는 출입구도, 무임승차를 단속하는 역 내 승무원도, 부정승차에 걸리면 30배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문도 없었다. 조금 맥이 빠졌다. 검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도착한 첫날 썼던 5만 원을 아낄 수 있었을텐데.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 대부분이 처음에는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아예 교통권을 사지 않겠다고까지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신뢰의 선순환’이 가능한 나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대중교통은 버스, 지하철, 트램, 페리(배) 네 가지였다. 대부분 정류장에는 # 표시가 붙어 있었는데, 이는 ‘루테르(RUTER)’라는 회사가 운영한다는 뜻이었다. 루테르는 교통서비스 전문기업으로 국가가 지정한 오슬로 시내 대중교통 운영 회사다. 내가 샀던 정기권으로는 # 표시가 붙은 루테르의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오슬로 시내 곳곳을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하철은 시내 중심지와 외곽 지역을 이어 주었으며, 우리 기숙사와 같이 언덕 위에 있는 곳에는 항상 버스가 다녔다. 시내에서 지하철로 이동하기 애매한 거리는 노면 곳곳에 깔린 트램(전차)를 이용하면 됐고, 한적한 섬에 가서 산책을 하고 싶다면 도심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면 됐다. 한 달에 7만 원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오슬로의 곳곳을 다닐 수 있었고, 루테르의 모든 대중교통은 늘 깨끗하고 안전한 느낌을 주었다. 

이용하면서 이상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공짜로 탈 수 있는 대중교통이 정말 쾌적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게. 검사도 않는데, 비싼 교통권을 매번 산다는 노르웨이 친구도 신기했다. 그는 자신이 내는 비용이 공공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투명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믿음이 확고했다. 역사에 적혀져 있는 시간에 정확히 출발하고 도착하는 대중교통은 시민의 신뢰에 대한 보답이었다. 노르웨이에는 늘 깨끗하고 이용하기 편한 공공 서비스가 존재하고, 그 존재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신뢰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에 있는 비겔란 조각공원에서는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공원 내부에 쓰레기통은 많지 않지만, 시민들이 떠난 자리에 쓰레기는 보이지 않는다. ⓒ unsplash

신뢰는 대중교통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기숙사에서 네 명의 노르웨이 친구들과 함께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했는데, 공유 공간들을 언제나 깨끗했다. 교내 카페테리아에 놓여있던 잘 구워진 와플들은, 옆에 놓인 바구니에 돈을 넣고 가져가면 됐다. 지금 돈이 없다면 먼저 가져간 후 나중에 더 넣으면 됐다. 학교 잔디나 공원에서 각자 가져온 천을 깔고 소풍을 즐기던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늘 쓰레기 하나 없었다. 이 이상한 나라에서 ‘신뢰’의 선순환은 일상적으로, 아주 평범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선순환의 고리1- 안전과 안락을 보장하는 공공재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은 충분한 공공재였다. 북유럽의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노르웨이는 대부분의 공공 서비스를 국가가 관리해 왔다. 대중교통은 국가가 지정한 회사에서 운영하고, 철도는 NSB라고 하는 국영 철도 회사에서 1854년부터 운영했다. 대학을 비롯해 교육은 무상으로 이뤄진다. 민영화는 시장 중심적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지만,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교육, 의료, 철도 등의 공공 서비스를 국가가 주도해 왔다. 오슬로대학교 한국학 전공 박노자 교수는 ‘국가’의 사회과학적인 정의의 핵심은 ‘유일하게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하는 기구’ 이지만, 국가는 적어도 원칙상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공공성이 있다고 표현한다. 근대적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적어도 다수가 인정하는 공익과의 가시적인 충돌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효율이란 명분으로 공공재를 민간에 맡기는 민영화의 폐단은 2014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블랙 딜>이 잘 보여준다. 다큐는 전 세계 7개국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다. 그중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1990년 철도의 민영화로 인한 피해가 어떻게 국민에게 돌아오는지를 여실히 나타낸다. 2012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온세역에서 열차가 타는 곳 끝에 있는 완충기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로 약 650명이 다쳤고, 그중 뱃속 아기를 포함한 52명이 사망했다. 사고 이후 해당 철도 회사는 새 충돌방지장치를 온세역에 만들었지만, 이듬해 온세역에서는 같은 사고가 다시 한번 반복된다. 민영화된 철도 회사는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이익을 재투자하지 않았고 열차와 선로는 노후화됐기 때문이었다. 2012년 사고 이후 만든 충돌방지장치의 제작 연도는 1961년이었다. 이 사고로 아들을 잃은 마리아 루한 레이는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고 표현했다. 

▲ 2012년 아르헨티나 온세역에서 충돌 사고로 태아를 포함한 52명이 죽었다. 아르헨티나 철도는 1990년에 TBA라는 민영회사에 매각돼 운영됐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후한 열차와 선로를 교체하지 않았고, 이는 결국 큰 사고로 이어졌다. ⓒ <블랙딜>

다큐에는 칠레의 사례도 나온다. 호세 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해 69세에 은퇴했지만 산티아고 외곽 빈민촌에서 산다. 살림은 단출하고 찬장에는 싸고 오래 먹을 수 있는 식품들로 가득하다. 그는 45년 일하는 내내 연금을 냈다. 처음에는 국민연금이라고 생각했던 연금은 칠레의 군부 독재 기간에 민간연금으로 바뀌었다. 그가 은퇴 이후 민간회사에서 매달 받는 연금액은 11만 5천 페소, 우리 돈으로 약 21만 원 정도다. 매달 나가는 집세가 약 20만 원이고, 한 달에 10만 원가량의 장을 보는 그의 생활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는 총 2천 3백만 원이 넘는 납입금을 111개월, 약 9년이 지나야 수령할 수 있다. 

선순환의 고리 2 – 시민의 믿음은 사회적 신뢰를 낳고

공동체의 안전과 편의를 보장하는 공공재가 충분하면, 선순환은 시민의 신뢰로 이어진다. 노르웨이는 지난해 소득세율만 38.4%에 이르지만, 거둔 세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온라인에는 2001년부터 만 19세 이상 납세자들의 소득 규모와 과세 내역이 공개된다. 이웃이 얼마를 버는지, 얼마를 세금으로 내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탈세와 임금 격차를 줄이고 과세의 공평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고, 국민은 세금이 투명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앞서 살펴본 깨끗하고 잘 관리되고 있는 대중교통이 그 상징이다. 

이외에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복지 체제 역시 국가를 신뢰하게 만든다. 노르웨이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연금은 정년인 67세 이듬해인 68세부터 지급된다. 최저 연금 지급액은 10,000kr(약 200만 원)이며, 이는 주부 등 가사노동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의료 서비스 또한 공공이 담당한다. 개인은 연간 1600kr(약 32만 원)만 부담하면 대부분의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국민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데 안심하고, 안심은 사회적 신뢰를 쌓는다. 공공재에 대한 비용은 비용을 넘어 사회를 유지하는 기초토양이 되는 것이다.

▲ 노르웨이는 지난해 소득세가 38.4%, 부가가치세가 25%로 국민의 세금 부담률이 높은 국가다. 하지만 의료, 교육, 연금, 주거,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 국민 부담률이 낮고 양질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 unsplash

사회적 신뢰는 노르웨이에서 ‘공유지의 비극’을 몰아냈다. 공유지의 비극은 특정인의 소유가 아닌 재화를 불특정 다수가 이용할 수 있을 때 그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인이 없는 초지를 모두가 이용하게 되면, 농부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많은 소를 데려오고, 결국 초지는 황폐화된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일어나는 공유지의 비극이 노르웨이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강한 사회적 신뢰 덕분이었다. 앞으로는 교통권을 끊지 않아야겠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한국인 옆에 앉아 있던 노르웨이 친구가 말했다. 누군가 카드 태그를 하지 않고 대중교통에 올라타도, 자신은 그 사람이 이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을 거라 생각한다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노르웨이는 안전하고 안락한 공공재에, 그 공공재를 이용하는 시민의 국가와 타인에 대한 신뢰가 책임감으로 연결되어 ‘신뢰의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구성원 모두가 윈-윈인 사회, 잠시나마 잃은 5만 원을 아깝게 생각했던 나를, 비극의 씨앗이 될 뻔한 유학생들을 반성하게 하는 사회였다.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은 형편없다. 지난 1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180개국 중 33위를 차지했다. 국민이 국가를,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신뢰 수준이 낮은 사회에서는 ‘공유지의 비극’ 발생 가능성이 상존한다. 노르웨이에서 배운다. 한국 사회의 비극은 부와 노동의 불평등이 심화하는데도,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하다는 데 있다. 공공재가 취약한 한국 사회의 병폐는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OECD 최하위 출산율과 최상위 자살률, 산업재해 발생비율, 노인빈곤률과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무관하지 않다. 반복되는 산업재해 때마다 ‘작업장에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기업의 약속, 선거 때마다 ‘국민의 일꾼이 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약속,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사회적 공공재에 대한 인식 부재와 취약하기 그지없는 공공재에서 비롯되었다. 

▲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달간 자살 충동을 느낀 노인이 1,000명당 70명, 실제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노인은 13명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이 있을 때 자살 성향이 3배 높았고, 경제적 빈곤은 자살 성향이 만성화될 위험을 2배 증가시켰으며, 혼자 사는 노인은 자살 시도 위험이 6.4배 높았다. 노인빈곤율을 포함해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가 꾸준히 1위를 하고 있는 OECD 부정지표들은 한국의 공공 서비스 부족을 여실히 나타낸다. ⓒ KBS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잘 살 수는 없다’고 느낀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화 되고, 타인에 대한 신뢰는 땅으로 떨어진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를 벗어나려면 황폐화된 공유지를 가꾸어 다시 너른 목초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 역할은 국가의 몫이다. 코로나 재난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개인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만한 공유지의 규칙을, 사회안전망을 공급해야 한다. 그것은 공공재를 재구축하는 일이다. 내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공 간의 신뢰가 쌓인다. 

이상한 나라를 유지하게 하는 건 결국 ‘신뢰’라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코로나 재난을 겪고 있는 지금, 신뢰의 선순환을 다시 생각한다. 사회, 경제의 전 분야에서 양극화는 극심해졌고, 불확실성 속 불신은 더 커지고 있다. 더 큰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제대로 된 안전망을 통해 신뢰의 씨앗을 심는 것이 중요하다. 씨앗은 자라서 ‘공공’이라는 개념 속에 ‘나’도 포함돼 있다는 믿음으로, 더 안전하고 단단한 사회로 이어질 것이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공공재’다. 코로나 팬데믹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재’의 ‘공익성’에 새로운 시선을 집중하게 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사회 재개편과 국가 재설계의 기회라는 지금, 주요 공공영역인 노동‧정치‧돌봄‧신뢰‧언론의 현장이 왜, 어떻게 공공재가 되어야 하는지 주목한다. (편집자)

편집 : 이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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