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공공재' ➂ 사회적 돌봄

가고 싶은 데 갈 ‘권리’

뇌성마비 장애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취재 중이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장애인복지관에서 활동하는 뇌성마비 장애인 기자단 세 사람으로, ‘뇌성마비인이 이야기하는 뇌성마비인’을 주제로 이들이 직접 진행하는 인터뷰를 통해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큐였다. 나와 동료 PD는 이들이 일하는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했다. 금요일 오후, 회의가 아직 한 시간쯤 남았던 때였다. 당사자인 진호(31, 가명), 기준(29, 가명) 씨는 미리 택시를 불러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너무 이르지 않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금요일에는 차가 많이 막혀요. 그리고 장애인 콜택시는 타려면 배차 시간이 있어서 30분 정도는 미리 불러야 해요. 그래야 차를 탈 수 있거든요.”

진호, 기준 씨는 휠체어를 이용한다. 근육 강직으로 보행이 불편한 두 사람은 이동할 때 대부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한다. 버스는 계단이 있어 휠체어로 탑승이 어렵고, 지하철은 엘리베이터가 있다 할지라도 지하철역까지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가 있지만, 이용하기 쉽지 않다.

“저상버스가 자주 없어요. 간혹 탈 일이 있어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타려고 손을 흔들면 그냥 쌩-하고 지나가 버려요. 2, 3번씩이나요. 우리가 휠체어를 타서 안 보이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버스를 잘 안 타요.”

내가 기다리던 버스를 놓치는 경우는, 오는 버스를 내가 쳐다보지 않고, 손을 들지 않을 때만 발생하는 일이었다. 30분이나 앞서서 콜택시를 부르는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장애인이 가고 싶은 곳에 가려면 도시 곳곳에서 장벽을 만난다. 이렇게 비장애인에게 당연한 ‘이동권’은, 장애인에겐 생존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 특별한 일이 된다. 

▲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공론화된 지 올해로 20년째지만 변화는 더디다. 정부는 2021년까지 전체 버스의 42%를 저상버스로 보급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보급률은 30%에 그치는 등 사실상 방치 상태다. ⓒ KBS

장애인들에게 이동 교통수단은 삶의 최소 조건이다. 현실은 방치돼 있다고 할 정도로 열악하다.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를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2017년 평균 대기시간은 44분이었다. 2019년에는 오히려 11분이 늘어 55분을 기록했다. 콜택시를 부르고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2년 동안 차량 수의 변화는 없었는데, 이를 두고 공단 측은 주 52시간제 확대 등 노동 조건의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상버스 도입률 역시 미미하다.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017년 22.4%에서 2019년 26.5%로 저조한 증가율을 보였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까지 저상버스 도입률 41% 달성을 목표로 삼았으나, 현실은 목표치에 턱없이 모자란 게 현실이다. 장거리 이동은 더욱 어렵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0%로 사실상 자신의 승용차와 기차, 비행기를 제외하고는 장거리 이동이 어렵다. 그나마 이용이 수월한 기차 이동도 기차 출발 15분 전까지 안내 데스크에 도착하지 않으면 리프트를 이용하지 못한다. 

비장애인에겐 권리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 ‘이동’이라는 행위에, 장애인이 권리를 주장하는 상황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배제되고 방치됐음을 의미한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장애인 ‘이동권’은 교통수단뿐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도를 오가는 일도 장애인들에겐 불편한 일상의 연속이다.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인도를 보행하게 만든 점자블록에 장애물들이 가득하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땐 차량 이동 여부를 알 수 없어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 장애인은 일상에서 이미 불평등하다. 기본권인 ‘이동권’에서의 불평등은 그 상징일 뿐이다. 가고 싶은 곳에 가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장애인들의 다른 일상을 읽어내고, 이들의 삶을 돌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돌봄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사회적 돌봄’이 공공재가 돼야 하는 이유다. 

▲ 장애인이 이동하기 위해선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동을 수월하게 돕기 위해 만들어진 엘리베이터조차 때로는 그들의 이동을 막는 수단이 돼버린다. 장애인이 ‘이동권’을 소리높여 외치는 이유다. ⓒ SBS

아플 때 치료받을 ‘권리’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평등은 의료 현장에서도 심각하다. 아플 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가 받는 또 다른 대표적 고통이다. 코로나19가 전 사회를 휩쓸며 확진자가 급증하던 지난해 3월, 의료현장은 붕괴 직전이었다. 확진자가 세 자리, 심지어 천 명 대를 돌파하자, 의원 등의 1차 의료기관은 물론이고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의 모든 병실까지 포화상태가 됐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전염병 대유행을 막기 위해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는 반성이 따랐지만 실천되지 않았다. 다시 코로나 재난상황을 마주한 의료현장은 허둥지둥했고, 민간병원 중심인 의료현실 속에서 코로나 치료용 공공 병실 마련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곤 했다.

재난 시대에 의료체계가 공공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자,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쏠렸다. 지난해 3월 대구·경북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을 때, 이 곳은 병실 부족으로 말 그대로 혼돈이었다. 확진자가 누적 4000여 명에 달했지만, 대구 지역에서 이들을 즉각 치료할 수 있는 곳은 공공병원인 대구의료원이 유일했다. 하지만 이 병원의 가용 병상은 433병상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환자를 전라도 지역까지 이송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해 자택에서 자가격리하던 15명의 환자가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뿐만 아니다. 공공병원에 입원해있던 기존 환자들의 피해도 잇따랐다. 지난해 2월 부산의료원에서 간경화로 20년 넘게 치료받던 환자는 부산의료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이 된 후 강제퇴원 당해 민간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공공병원보다 비싼 민간병원의 입원비를 그는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 지난해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구·경북 지역을 휩쓸었다. 전염병의 급격한 확산은 지자체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빨랐고, 이로 인한 피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 SBS

공공병원이 전혀 없는 지자체에서는 적은 확진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울산시에 위치한 양지요양병원에서는 지난 12월 환자 167명을 포함해 모두 240여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자들은 즉각 치료가 필요했으나, 공공병원이 없는 울산시는 울산대병원 한 곳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들을 이송할 여력이 없었다. 민간 요양병원 병동을 비우고 음성인 환자를 이곳에 격리하려고도 했으나, 해당 병원 측의 반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결국 환자 전원을 이송시키는 데까지 20일이 걸렸고, 이 병원에서만 2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당시 기준 울산시의 전체 확진자 수가 26명이었음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사망자가 한 요양병원에서 나온 것이다. 즉각 치료와 이송이 가능한 공공병원이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참사였다.

공공의료는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하는 사회의 중요한 공공재다. 우리의 공공의료 현실은 심각하다. 2018년 기준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전체 병상의 10.2%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71.4%다. 열악한 공공의료 시스템 조건 속에서 의료인들은 자신을 ‘갈아가며’ 코로나와 싸우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공공의료 현장과 몸으로 버티고 있는 이들의 희생은 가려져 있다. 

지난달 23일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근무하던 7년 차 간호직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평소 뛰어난 업무 능력 등으로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받던 그는, 5월 중순부터 보건소가 아닌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부산의 한 병원을 담당 관리했다. 원 근무지가 아닌 곳에서의 업무에 어려움을 느낀 그는 동료들과 상사에게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으나, 결국 파견 배치 4일만인 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해당 간호사는 이전부터 격무에 시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만 363시간에 달하는 시간 외 근무를 했고, 한 달 평균 73시간에 달하는 추가 근무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부산시는 공무원들의 격무를 해소하기 위해 정규직 공무원 143명을 선발하고 이들을 예정보다 1개월 빠른 9월에 배치하는 등 인력 충원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당초 투입이 결정된 인원을 한 달 더 빨리 배치하는 데 그칠 뿐이라며,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공공의료 확대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를 두고 보건의료노조는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 23일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보건복지부 앞에는 방호복을 입은 보건의료노동자 2,000여 명이 모여 정부에 공공의료 현장의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이들은 불법의료근절, 공공의료 확충, 인력확충을 요구하며, 정부, 산업계, 현장과의 교섭이 이뤄지지 않으면 오는 9월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했다. 

▲ 지난 5월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근무하던 간호직 공무원이 격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2021년 상반기 동안만 363시간에 달하는 추가 근무를 한 것으로 추후 밝혀지기도 했다. 열악한 공공의료 시스템이 불러온 또 다른 비극이다. ⓒ SBS

돌봄 공공재 구축은 ‘이동권’과 ‘의료권’부터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받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의 의료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신체적 차이 때문에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회적 약자는 지역적 한계에 놓여 있거나, 민간병원의 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워 공공의료 없이는 질병을 치료받기 어렵다. 이들에게 ‘당신이 움직이지 못하면 다니지 마라’고 하거나 ‘돈이 없으면 치료받을 생각마라’고 말하면 안 된다. 이동하고 싶을 때 교통수단을 이용해 움직이고, 아플 때 치료를 받는 것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람’의 권리다. 신체적, 지역적, 경제적 차이로 기본권을 차별해선 안 된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은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 추구권’에 근거해 보장되고 있다. 국민의 ‘의료권’ 또한 헌법 제36조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가 보장한다. 이동권과 의료권은 누구라도 누려야 할 국민의 기본권인 것이다.

코로나19가 심화한 계층 간의 불평등 격차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눈물과 고통을 깊어가고 있다. ‘이동권’과 ‘의료권’을 둘러싼 현상은 단지 일부분일 뿐이다. 부와 노동, 고용, 교육, 의료 등 사회 전반에서 이들의 아픔을 덜고, 일상을 보장할 수 있는 돌봄 장치가 시급하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약속한 도입률을 지키고, 공공병상과 의료 인력을 늘리는 일부터 시작하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우리 사회가 사회적 공공재를 전면 재구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코로나 이후 부와 노동, 경제, 교육 등 모든 측면에서 불평등이 심화하는 이른바 ‘K양극화’는 이미 현실이다. 피해가 쏠릴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과 고통을 덜어줄 ‘사회적 돌봄’ 공공재가 절실하다. ⓒ KBS

공공재는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든, 해당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혜택에서 배제되지 않는 성격을 지닌다. 공공재의 확대는 차이가 곧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K 양극화’가 초래한 부와 노동, 권리의 불평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사회적 돌봄은 재해재난 시대에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소비 혜택에서 배제되지 않으며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공공재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할 대중교통, 사회적 약자와 국민 모두를 위한 공공의료는 그 첫걸음일 뿐이다. 가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갈 ‘이동권’과 아플 때 치료받는 ‘의료권’을 주장하고 싸워서 얻어내야 해야 하는 권리가 아닌, 모두의 일상이 되게 하자.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공공재’다. 코로나 팬데믹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재’의 ‘공익성’에 새로운 시선을 집중하게 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사회 재개편과 국가 재설계의 기회라는 지금, 주요 공공영역인 노동‧정치‧돌봄‧신뢰‧언론의 현장이 왜, 어떻게 공공재가 되어야 하는지 주목한다. (편집자)

편집 : 김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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