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공공재' ② 정치

촛불이 만들어 낸 정치혁명

2016년 10월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29살 형이 한국 소식을 전해줬다. JTBC가 최순실 씨가 쓰던 태블릿 PC를 입수해서 보도했고, 분노한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왔다는 이야기였다. 두 달 가까이 유럽에 있던 나는 무덤덤했다. 세월호 참사, 국정교과서 사태, 위안부 문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사안마다 시민이 분노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11월 중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달랐다. 정치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친구가 술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입에 올렸다. 친구와 함께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 ‘이게 나라냐’, 구호는 무거웠지만, 광장은 축제였다. 전인권, 이승환 같은 ‘전설적인’ 아티스트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촛불을 끄는 퍼포먼스와 ‘촛불 파도타기’는 국가대항 축구 응원전과 같았다. 무엇보다 ‘나도 함께 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촛불은 일상이 됐다. 시간이 날 때마다 촛불을 들었고, 뉴스와 청문회를 지켜봤다. 이듬해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 한 나라의 대통령을 평화적 시위로 퇴진시킨 광화문 촛불 시위 7차 집회. 민주주의의 주인인 시민이 분노하면 공공재인 정치는 민의가 살아있는 삶의 현장이 된다. ⓒ KBS

그해 촛불은 정치 혁명의 현장이었다. 민주주의의 주체이자 국가의 주인인 시민이 부당한 권력에 하야를 요구했고, 정치가 화답했다. 탄핵소추에는 재적 인원 2/3 찬성이 필요했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까지 탄핵 표결에 찬성해 정족수를 채웠다. 광장에 모인 모두가 ‘시민’이었다. 촛불 아래 나이와 성별, 재산과 직업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 ‘시민’의 이름으로 정치에 참여했고 마침내 정치 혁명을 이루어냈다.

법은 과거를, 행정은 현재를, 정치는 미래를 다룬다. 모두 시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공영역이다. 그중에서도 정치는 현실의 문제를 개선해 줄 결정적 도구다. 국가를 이끌 지도자를 시민이 직접 뽑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투표는 정치가에게 내 행복과 안전을 지켜줄 법을 만들고, 이를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하라는 명령이다. 정치현장은 시민이 내 삶을 책임질 정치가를 선택하고, 그가 기대를 저버렸을 때 심판하는 곳이다. 정치가 공공영역이자, 공공재인 이유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이론과 달랐다. 현실 정치에서 시민은 행복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촛불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정치에, 시민이 어떻게 분노를 표출하고 심판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상징이었다.

기대를 저버린 정치

촛불은 ‘벚꽃 대선’으로 이어졌다. 정치현장은 이름처럼 희망의 계절로 불리는 봄과 잘 어울렸다. 시민의 힘으로 국가를 사유화한 대통령을 몰아내고 치른 선거였다. 대선후보들은 서로 자신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이 이긴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민은 희망에 부풀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대선 투표일 밤, 광화문을 기억한다. 시민은 상기된 표정으로 당선 인사를 하던 문재인 당시 후보를 바라보며, 곧 다가올 좋은 세상을 꿈꾸었다.

문재인 정부는 기대에 부응했다. 시민 목소리를 듣는 방법도 새로웠다. 2017년 5월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산하 기구인 국민인수위원회가 정책 제안 플랫폼 ‘광화문 1번가’를 열었다. 시민에게 국가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직접 듣는 신문고였다. 8월부터는 ‘청와대 국민청원’ 창구를 만들어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혔다. 숙의 민주주의 실험도 이어졌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에 관한 의견을 시민참여단 471명에게 물었다. 시민참여단은 한 달 동안 숙의 과정과 2박 3일 합숙 토론을 거치며, 함께 의견을 나누고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쟁점으로 갈린 사회 이슈를 다루는 새로운 시도였고, 반응도 좋았다.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숙의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2017년 10월 25일 <한겨레>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을 통해, 공론조사 기법이 ‘유보층을 줄이고, 숙의 결과 수용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KBS

그해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건설 재개’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시민참여단 59.5%가 건설 재개를, 40.5%가 건설 중단을 택한 결과였다. 신고리 5·6호기를 건설 재개 여부보다 중요한 건 시민참여단의 만족도였다. 공론화 과정에 참여했던 시민참여단이 숙의 과정에 관해 만족했고(만족도 100점 만점에 87.4점) 시민참여단 93.2%가 다른 의견에 관해 존중하겠다고 답했다. 숙의 과정을 통해 ‘모르겠다’고 대답한 유보층이 줄었다. 시민들은 이슈에 관한 자기 의견을 만들 내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토론해 도출된 결론을 받아들였다.

정부는 공론화 경험을 다른 사회 갈등에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은 숙의를 통해 갈등이 완화되고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민의 직접 참여와 소통, 토론과 숙의 과정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 믿었다.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저임금,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부동산 정책 등 주요 정책과제에서 갈등이 발생했지만, 정책 입안과 집행과정에 참여와 소통, 토론과 숙의는 사라졌다. 그 자리를 진영 논리와 정쟁이 채웠고, 새 정부가 열었던 공간들은 제 기능을 상실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경제와 노동 분야, 검찰 등 개혁과제들은 진전이 없었다. 정치는 시민의 삶을 지키고 개선하는 역할을 상실했다. 정권 초기의 기대는 분노로 바뀌어갔다.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쳤다. ‘K 양극화’는 지난 4년 동안 정치가 실패했던 주거와 고용 불안,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지역 의료격차 현장을 파고들어, 불평등을 심화했다. 현안들은 모두 시민이 요구했던 해묵은 과제였다. 2017년 4월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성인남녀 151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시민의 바람은 “빈부격차가 적고 사회보장이 잘 돼 있는 사회”(39.4%)와 “힘없는 사람들도 공정하게 대우받는 사회”(32.1%)였다. 정치가 방치한 현장을 파고든 코로나19는 사회적 약자의 눈물과 고통이라는 기름에 불을 붙였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정치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무능했고, 무책임했다. 시민은 분노했다.

▲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대(對) 코로나19 방역의 성공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전폭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년 넘게 지속된 영업 제한에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생존위기에 몰려 전전긍긍했지만, 이들의 손실을 보상하고 생계를 지원할 정책은 유명무실했다. 사진은 지난 5월 31일 광주시청에서 집합 금지와 영업 제한으로 인한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는 상무지구 상인회 회원 모습. ⓒ 연합뉴스

공공재임을 포기한 정치에 분노한 시민의 심판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는 분노한 민심을 대변했다. 보선에서 여당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모두 야당에게 내줬다. 여당의 참패였고 야당의 압승이었다. 공공재로서의 기능을 잃은 정치에 좌절한 시민은, 투표로 자신들을 배신한 정치를 심판했다.

▲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에서 야당 국민의힘은 압승을 거뒀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모두 야당에 내줬다. 2016년 총선 이후 네 번의 큰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던 여당에게 뼈아픈 결과였다. 민심은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지 못한 정치에 분노했고, 투표로 심판했다. ⓒ KBS

국정을 책임진 정부와 여당은 시민의 바람을 이뤄주지 못했다. ‘빈부격차가 적은’ 사회를 원했지만, 부와 노동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지난해 순자산 지니계수는 0.602로 0.584를 기록한 2017년부터 계속 올랐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워질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해진다는 의미다. 순자산 5분위 배율도 2017년 99.65배에서 지난해 166.64배로 올랐다. 상위 20% 가구의 평균 순자산이 하위 20% 가구의 평균 순자산보다 166.64배 많다는 뜻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는 자산 양극화의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집을 사지 못한 이들은 자기 자신을 ‘벼락거지’라고 부른다. 주식과 암호화폐 투자 열풍도 자산 양극화 시대의 한 단면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공급한 유동성이 ‘가진 자’를 더 배불렸다.

‘공정한 사회’도 만들지 못했다. ‘LH 사태’는 불공정의 전형이었다. 시민이 급격하게 치솟은 집값과 금융당국의 ‘대출 조이기’로 ‘내 집 마련’에 한숨짓는데, 공무원과 정치인은 내부 정보로 부동산 투기를 했다. 전형적인 직무유기였다. 성추행 의혹을 받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감싸는 듯한 여당 의원의 ‘피해호소인’ 언행도 공정하지 못했다. 여당의 자녀교육 특혜, 아파트 소유를 둘러싼 내로남불 행태에 시민들은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를 거두었다. 선거 후에도 분노한 민심은 변하지 않았다. 6월 첫째 주 리얼미터가 조사한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는 부정 평가 57.9%, 긍정 평가 38.3%를 기록했다. 정당 지지도는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29.7%, 야당 국민의힘이 38.0%였다.

지난해 4월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여권에게 180석을 몰아주었던 시민이었다. 여당이 좋아서 의석을 몰아준 게 아니었다.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극복하라는 명령이자, 문재인 정부 남은 2년 동안 먹고 사는 걱정 좀 덜어 달라는 요구였다. 정부와 여당은 마지막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민생을 제친 검찰개혁은 정쟁이 되어 버렸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이 모든 중요한 개혁과제를 집어삼켰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불평등 극복하기 위한 ‘상생연대 3법’은, 지난 1월부터 ‘여전히’ 논의 중이다. 올해 1월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오늘도’ 노동자를 죽음에 내몰고 있다.

정치는 시민의 분노를 읽어라

2022년 3월 9일, 이른 봄에 대선이 온다. 촛불에서 시작한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5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5년,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낸 ‘벚꽃 대선’에서 꿈꾸었던 희망은 사라졌다. 정치는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니다.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선거는 그저 승패를 가르는 행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언론은 정치가 시민의 삶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세상을, 삶을 정직하게 기록해야 할 언론은, 정치 현장을 경마 중계하듯 보도한다. 유력 대선 주자의 비전과 정책이 아니라, 그저 일거수일투족에 이목을 집중할 뿐이다. 언론의 직무유기 속에 오늘도 하루에 두세 사람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임금 근로자의 일곱 명 중 한 명이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다. 지난해에만 13,018명이 스스로 삶을 포기했고,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 꼴찌다. 사회병리를 상징하는 이상 징후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시민의 비명이 들리는데, 정치는 승패만이 중요한 선거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 공공재인 정치가 실종하면 언론의 경마 저널리즘이 횡행한다. 유력 대선 주자를 향한 이목은 당연하지만 정파주의에 빠져 비전과 정책도 없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언론은 시민의 정치불신을 강화할 뿐이다. ⓒ 신현우

시민의 눈물과 고통은 계속되면서, 정치에 대한 분노가 쌓이고 있다. 분노는 심판으로 이어져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던 촛불,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 모두 분노에서 시작한 정치심판이었다. 정치는 지금 시민의 분노를 읽어내라. 정치는 시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덜어내며, 좌절에서 일어나 미래를 꿈꾸게 하는 공공재다. 시민의 삶을 담보하는 공공재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시민의 선택은 하나뿐이다. 분노로 정치를 심판할 수밖에 없다. 분노가 정치혐오와 불신으로 이어지기 전에, 정치는 시민의 분노를 제대로 읽어내라. 30대, 0선 야당 대표를 선택하는 민심과 세상 변화에 귀 기울이라. 다시 시민이 들고일어나, 촛불로 당신들을 심판하기 전에.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공공재’다. 코로나 팬데믹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재’의 ‘공익성’에 새로운 시선을 집중하게 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사회 재개편과 국가 재설계의 기회인 오늘, 주요 공공영역인 노동‧정치‧의료‧신뢰‧언론의 현장이 왜, 어떻게 공공재가 되어야 하는지 주목한다. (편집자)

 편집 :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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