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카카오TV ‘톡이나 할까’ 권성민 PD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과 20대 짝꿍들의 학교생활’ ‘카카오톡 대화로 나누는 말 없는 토크쇼’. 권성민(36) 프로듀서(PD)가 연출한 예능 프로그램들의 개요다. ‘보기 드문 착한 예능’이라고 평가받은 문화방송(MBC)의 <가시나들>과 ‘획기적 포맷(형식)’이라는 평을 받으며 인기몰이 중인 카카오TV <톡이나 할까>를 만든 사람. 매체의 경계를 넘어 도전하며,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권 PD를 지난달 19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고 13일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했다. 

세로 화면에 ‘글로 주고받는 대화’가 새로움 선사  

▲ <톡이나 할까>를 만드는 권성민 PD가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나종인

권 PD는 2012년 MBC에 예능 프로듀서로 입사한 후 지난해 1월 통합 동영상 서비스회사인 카카오TV로 이적했다. MBC 시절,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파업 과정에서 회사를 비판하는 웹툰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2015년 해고를 당한 뒤 해고무효소송을 거쳐 1년 4개월 만에 복직한 일이 있다. 카카오TV로 이적한 해 9월 처음 내놓은 작품이 <톡이나 할까>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의 ‘말 없는 토크쇼’로, 진행자(MC)이자 ‘톡터뷰어’인 김이나(43) 작사가가 초청 인물과 카카오톡으로만 대화를 하는 20분짜리 프로그램이다. 지난 2일 기준 40여 편의 누적 조회수가 5000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낯선 이 프로그램을 권 PD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을까. 그는 “카카오TV 기획과정에서 ‘모바일 오리엔티드(이동용 기기에서 주로 시청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에 대한 큰 틀이 짜여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모바일의 여러 특성 중 그가 주목했던 것은 ‘세로형 프레임’이었다. 세로 프레임은 가로에 비해 카메라 앵글(각도) 활용 여지가 적고 답답한 느낌이 있어 영상으로서 한계가 있지만, 그만큼 새롭기도 했다. 

“모바일로 봤을 때 가장 몰입도가 높은 소재를 두고 여러 가지를 고민했을 때, 세로 프레임이 인물을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는)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이죠. 이 기능을 모바일 화면 안에서 상당히 비슷하게 구현하면 보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인터페이스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도 줄 수 있고요.”

카카오톡 메시지라는 짧은 형식의 글을 연속적으로 주고받는 모습을 영상으로 전하는 것 역시 새로운 도전이었다. 기존 영상 콘텐츠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우선 편집 호흡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기존 예능 프로그램은 오디오(음성)를 기준으로 편집을 한다. 하지만 오디오가 없는 <톡이나 할까>에서는 편집자가 모든 호흡을 창조해야 했다. 시청자마다 읽는 속도가 다른 것을 고려하고, 편집된 화면 속에서 출연자들이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게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이 편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첫 과제였다. 

“첫 회부터 기획했던 느낌이 잘 살았던 프로그램” 

▲ 스마트폰 화면에 구현되는 ‘세로형 프레임’은 한계도 있지만, 새로운 화면 구성이라는 점에서 시청자에게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등의 소설을 쓴 정세랑 작가와 MC 김이나 작사가가 ‘톡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 카카오TV

다음은 메신저 대화의 긴 호흡을 짧게 압축하는 일이었다. 메신저로 대화를 하게 되면 자판을 누르는 시간 때문에 말로 하는 대화보다 호흡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또 표정, 몸짓 등 비언어적 표현이 없는 자리를 글로 다 채워야 하기에 말로 하는 대화보다 밀도가 높다. 같은 시간 동안 말로 대화하는 것보다 메신저로 대화하는 것이 훨씬 더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진행자의 집중력과 체력을 고려해 사전구성안을 면밀히 고민하고 기획하며, 촬영 현장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려 노력한다고 권 PD는 설명했다. 1편당 촬영 시간은 보통 1시간 30분 남짓이며, 이 시간 동안 나눈 대화의 70~80%가 방송에 그대로 사용된다고 한다. 

<톡이나 할까>를 선보인 지 10개월의 감상을 묻자 권 PD는 “첫 회를 촬영하고 편집하면서 ‘내가 기대했던 느낌이 너무 잘 살았다’고 생각했던 프로그램”이라며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 MC 김이나 씨였다고 강조했다. 김 작사가는 아이유, 박효신, 성시경 등 국내 최고 가수들의 작품에 함께했고,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만 502개에 달하는 국내 최고 작사가 중 한 명이다. 

권 PD는 “게스트의 이야기를 일관되게 끌어내고 게스트를 빛나게 해주는 것이 한동안 유행했던 토크쇼 MC들의 역할이었다고 한다면 김이나씨는 게스트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얘기들을 꺼내서 대화의 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MC라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한글 배우는 할머니들’ 가공 없이 영상에 담아 

권 PD는 MBC 시절 <가시나들>이라는 작품으로 첫 단독 연출을 맡았다. <가시나들>은 2019년 5월부터 4부작으로 방영됐다. 경남 함양의 문해학교(한글을 가르치는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 5명이 도시에서 온 다섯 명의 20대 짝꿍과 함께 먹고 자며 공부하는 모습을 담았다.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이 쓴 시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을 유심히 본 권 PD는 친분이 있던 김재환 영화감독이 이들을 소재로 <칠곡 가시나들>이라는 작품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 2019년 5월 방영된 MBC <가시나들>. 기존 미디어가 노년층을 다룬 방식과는 다른 접근법으로 ‘착한 예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MBC

<가시나들>이 ‘착한 예능’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자극적이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대상화(사물 혹은 사람을 특정한 기준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행위)되지 않았다. <가시나들> 속 할머니들은 기존 미디어가 ‘설정한’ 노인들처럼 번번이 실수하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농촌에 살며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권 PD는 미디어가 흔히 사용하는 과한 설정 등을 배제한 이유를 묻자 “그들이 방송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보호받아야 할 이유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물을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당사자가 얼마나 동의할 수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동안 국제구호활동을 했던 권 PD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봉사현장에서 촬영을 담당하면서 ‘절대빈곤의 현장을 어떻게 찍어서 알릴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다고 회고했다. 어떻게 찍으면 보는 사람들이 죄책감이나 동정심이 아닌, 기쁜 마음으로 봉사나 후원에 즐겁게 참여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촬영과 편집을 했다고 한다.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윤리적 고민을 그때부터 죽 해왔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에서 뉴미디어로 옮긴 이유는 ‘가능성과 자유’ 

권 PD는 흔히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는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일했고, 지금은 모바일 플랫폼에 기반한 뉴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그는 레거시 미디어의 강점으로 여전히 영향력이 크고 콘텐츠 기업으로서 효율성이 있다는 점을 꼽았다. 시청률 2%대가 낮아 보이지만 그래도 100만 명이 동시에 해당 프로그램을 봤다는 얘기다. 또 MBC 등 기존 방송국들은 태생부터 콘텐츠 제작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어서 그 인프라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반면 카카오TV를 포함한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은 여러 가능성이 산재한 곳이라고 권 PD는 말했다. 콘텐츠의 길이, 편성, 소재 등이 기존 방송국보다 훨씬 자유롭기 때문에 제작의 자율성이 높고,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는 온라인·모바일 플랫폼들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대처하고 변모할 수 있는 준비가 잘 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렇게 방송환경은 급변하고 있지만 PD 지망생들은 여전히 ‘공채’에 매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권 PD는 자전적 수필집 <서울에 내 방 하나>에서 “공채 시험에만 매달리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채 시험이 주는 이점이 있지만, 지나치게 적은 정원과 낮은 합격률, 매년 바뀌는 회사의 인재상 등 운이 좌우하는 영역이 크기 때문에 시험 자체에만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신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보는 것이 더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PD는 자신의 입사 과정과 관련, "PD가 되기 위한 공부를 따로 한 적은 없고, 공채 시험에 붙은 이유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며 "다만 늘 만화를 그리거나 소설을 쓰고, 해외봉사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등 당장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요즘과 같이 콘텐츠 제작과 배포가 훨씬 용이해진 시기에는 PD 시험 준비는 준비대로 하되, 지금 당장 자기 콘텐츠가 있다면 이를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대안인 것 같다"고 조언했다. 역설적으로 정작 공채 시험에서도 이처럼 다른 방식으로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더 눈에 띈다는 것이다.

▲ MBC <가시나들> 촬영 현장에서 웃음 짓는 권성민 PD. ⓒ 권성민

권 PD는 제작자로서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고,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매일 경험하고 목격하는 사람이 보는 세상의 해상도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과)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에 말을 걸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사는 세상에 관해 좀 더 많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공감을 부르는 작품의 비결이라는 뜻이었다.


편집 : 오동욱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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