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공공재' ① 노동(시장)

남의 일이었던 노동현장

초등학교 미술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20년 뒤 내 모습을 상상해서 그려보라고 하셨다. 어떤 친구는 칠판 앞에서 분필을 들고 있는 교사의 모습을, 또 어떤 친구는 개성 있는 옷을 만들고 있는 의상디자이너의 모습을, 또 다른 친구는 도둑에게 수갑을 채우는 경찰의 모습을 그렸다. 모두 아름다운 환상을 꿈꿨다. 우리가 앞으로 일하게 될 노동시장의 현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교사는 교사고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지,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고 엄청난 차별이 있으며, 비정규직은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수능 사회탐구 과목 <법과 정치> 단원 중에는 노동법이 있었다. 교과서 속 세상은 단순하고 평화로웠다. 세상에는 노동자의 권리를 구제하는 법과 기관들이 잘 갖춰져 있고, 어떤 부당한 일을 겪어도 국가가 다 해결해주는 것 같았다.

대학생이 됐다. 나는 교원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법 서브 노트에 적힌 부당해고 구제절차를 열심히 외웠다. ‘3개월 이내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 또는 법원에 해고 무효 확인 소송 제기. 기각 또는 각하되면 10일 이내 중노위(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 15일 이내 행정법원에 행정소송 제기.’ 당시 내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나 블로그 소개 글은 ‘배워서 남 주자’였다. 나중에 학생들이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공교롭게도, 교내 구내식당 바로 내 옆 테이블에서 빨간 옷을 입은 비정규직 청소미화원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이들은 일방적 인원 감축을 앞두고 파업 중이었다. 학교 곳곳에는 ‘시간강사 대량 해고 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때 나는 노동법을 달달 외우면서도, 바로 내 눈앞 청소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오늘도 싸운다

# 현장 1

대학원생이 됐다. 제천 LG 서비스센터 앞에서 두 명이 시위하고 있었다. 피켓에는 ‘청소노동자 집단 해고한 LG 제품 안 사요’라고 적혀있었다. 새해 첫날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집단해고 됐다. LG그룹 건물은 자회사인 S&I 코퍼레이션이 관리했다. S&I 코퍼레이션은 LG 그룹의 지분이 100%고, 시설과 미화 등 일을 지수Inc에 재하청을 줬다. 지수Inc는 LG 그룹 가족 지분이 100%인 회사다. 청소미화원들은 지수Inc 소속이었다.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부당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다. 커피 한잔하는 시간조차 거부하며 월급에서 제하겠다고 했다. 저녁 식사 때는 관리자가 ‘자야 한다’며 불을 끄고 밥을 먹게 했다. 2만 원씩 모아 과일을 사 감독에게 바쳤고, 격주 토요일마다 무보수로 일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했고, 쉬더라도 석면 가루가 떨어지는 단자함이나 변기통에 앉아 쉬었다. 아파도 산재 신청을 못 했다. 불평도 하지 못했다. 해고 당할까 두려웠다.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 가입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청소용역업체인 지수 Inc는 교섭에 응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청소미화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는 원청이었던 LG는 미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핑계로 용역업체 교체를 통보했다. 청소노동자 80명은 전원 해고됐다. 계약이 만료되기 전, 사측은 수백만 원을 줄 테니 사표를 쓰라고 압박했다. 돈의 액수를 다르게 제안하며 노동자를 분열시켰다. LG 청소노동자들은 고용 승계 권리를 위해 사표를 쓰지 않았다. 청소업종에서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 승계는 관행이다. LG그룹은 미화 부문 용역을 백상기업으로 변경했다. 시설 부문은 여전히 지수 Inc와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 전기와 난방이 차단된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농성을 하고 있는 LG 트윈타워 환경미화원. 화장실도 못가며 사측이 동원한 용역 깡패에게 시달렸다. © 남윤희

싸움이 시작됐다. 청소미화원들은 한겨울인 1월에 LG트윈타워 건물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파업 첫날부터 용역업체 지수Inc는 조합원에게 위로금을 주겠다며 파업에 참가하지 말라는 문자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용역 깡패를 수십 명을 고용해서 농성현장에 배치하고 밤낮으로 조롱과 협박을 일삼았다. 그 추운 겨울에 수시로 전기와 난방을 차단했다.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노동자를 팔꿈치로 목을 눌러 숨도 못 쉬게 했다. 폭력으로 한 노동자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농성을 지켜보던 시민이 조합원들에게 점심밥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사측은 반입을 금지했고 추운 날씨에 밥은 차갑게 식어갔다. 사람들이 깨진 유리 문틈 사이로 초코파이와 우유를 보내주면 LG 직원들이 들고 가 먹고 싶으면 나가서 먹으라며 밖으로 던져버렸다.

청소노동자의 집단해고는 LG트윈타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던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자, 용역업체 변경을 핑계로 집단해고 당했다.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도 학교 측과 단 한 차례의 협의도 없이 집단해고 당했다. 대전 목원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가 변경되어 해고를 문자로 통보받았다. 학교 재정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였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은 저임금에 시달리다가 가장 먼저 해고당한다.

▲ 청소노동자들의 집단해고와 싸움을 다룬 기사들 갈무리. 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는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오늘도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견디고 있다. © 남윤희

# 현장 2

지난해 5월, 아시아나항공의 재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의 노동자 8명이 해고됐다. 공항·항공산업은 복잡한 다단계 하청 구조로 구성돼 있다. 아시아나항공 아래 운송 지원 서비스를 하는 하청업체 아시아나에어포트가 있고, 다시 그 아래 아시아나케이오가 있다.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기내 청소, 쓰레기 처리, 수하물 분류 운반 등의 업무를 수행해왔다. 코로나19로 운행 편 수가 감소하자 사측은 ‘희망퇴직’과 ‘무기한 무급휴직’을 강요했다. 말이 무급휴직이지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었다.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으면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고 압박했다. 사측의 강요로 120명이 희망 퇴직했고, 200명은 무급휴직 중이다, 2020년 5월 11일, 회사의 일방적 무급휴직 요구를 거부한 11명 중 8명이 정리해고됐다. 모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었다.

▲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아시아나 원하청 노동자, 이스타항공 노동자, 연대 단위들이 모여 공항-항공 노동자 고용안정 쟁취를 위한 투쟁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지난해 4월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위기에 처한 항공, 해운, 자동차, 조선, 기계, 철강, 정유, 항공제조, 석유화학 등 9개 업종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기간안정산업기금(이하 기안기금)을 출범시켰다. 정부는 아시아나항공에 기안기금 2조 4천억 원을 투입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면 노동자 임금의 90%를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시아나 사측은 고용유지 자금을 신청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회사에서 지급해야 하는 인건비 10%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정부는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했다. 해고된 노동자 8명 중 6명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사측은 부당해고 판정에 불복해 이행강제금을 부담하는 쪽을 택했고, 대형 로펌 변호사를 고용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은 1년 동안 계속됐다. 복직을 위한 투쟁은 힘겨웠다. 금호아시아나 본사에 친 천막은 세 번이나 강제철거 당했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경찰은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면서 정민호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던 노동자들의 팔과 다리를 꺾고 온몸을 비틀어 연행했다. 정부는 노동자를 지켜 주기는커녕 오히려 공권력을 동원해 노동자를 진압했다. 오늘도 아시아나 케이오 노동자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 속에 일부 해고자들의 정년퇴직이 다가오고 있다.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한국기업

비정규직은 기간제와 시간제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특수 고용 등 다양한 비전형 근로자를 포함한다. 기간제는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기간에 따라 일한다. 대부분 2년제로 2년 초과근무 때는 정규직 전환의무가 발생해 기업은 계약연장을 기피한다. 노동자는 직장을 전전해야 한다. 시간제는 하루 중 일부 시간만 일한다. 간접고용은 자신을 채용한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경우다. 공급, 파견, 도급, 위탁 등의 형태가 있다. 특수 고용은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만 제공하는데,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취급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간접고용이다.

▲ 민주노총이 노동절을 맞아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깨는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하반기 총파업 투쟁을 선포했다. 아프면 쉬고, 일자리에서 함부로 쫓겨나지 않고, 일이 없을 때도 살아갈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 노동과 세계

LG트윈타워 청소미화원이나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는 간접 고용노동자다. 두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에는 간접고용이 보편화 되어있다. LG트윈타워 청소원을 고용한 회사는 LG그룹이 아닌 외주회사다. 외주사는 사람이 필요한 사업장에 인력을 보내 관리하는 일을 한다. 간호사, 간병인, 청원경찰, 마트 직원, 시설 관리 등이 대상이다. LG트윈타워에서 청소는 상시적인 업무로, 청소노동자가 계속 필요한 인력임에도 직접 고용을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해고가 쉽다.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간접고용을 하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부담 없이 해고할 수 있다. 인력을 줄이거나 늘려 계약하면 된다. 둘째, 임금 수준도 낮게 유지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저임금뿐만 아니라 부당한 인권침해까지도 감수한다. 셋째,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쉽게 막을 수 있다. LG그룹에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면 ‘나는 당신들의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책임을 회피한다. 용역업체인 지수Inc는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넷째, 산업재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산재는 노동자를 고용한 하청 회사 책임이다. 산재 발생률이 높아지면 원청에서 계약을 해지하기 때문에 하청업체가 산재를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연민에서 한 걸음 더 가면 연대가 된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싸움에 LG그룹이 무책임으로 일관하자, 전국의 시민, 인권, 종교단체들이 LG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했다. 연대는 축제를 연상케 했다. 시민들은 청소노동자들의 식사를 위해 ‘한 끼 연대’에 5500원씩 후원했고 총액 6500만 원을 모금했다. LG트윈타워 앞에 100개의 텐트를 설치해 <행복한 고용 승계 텐트촌>을 만들었다. 바자회를 열어 물건을 판매한 수익으로 투쟁기금으로 전달했다. LG 사측의 청소노동자 폭행을 규탄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청소노동자 쫓아내면 LG 제품도 쫓겨나요’라는 LG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LG트윈타워 앞에서 학생들이 춤을 추기도 했다. 교회에서는 이들의 원상복직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지만 마음은 거리를 두지 않았다. 연대는 전염됐다. 연대의 힘으로 청소노동자들은 끝까지 투쟁했다. 4월 30일, 136일간의 투쟁 끝에 LG 청소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됐다. 용역업체가 백상기업으로 변경됐기 때문에 기존에 근무하던 곳이 아닌 LG 마포빌딩에서 근무하게 됐다.

지금도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집단해고를 당한 신라대 청소노동자는 대학본부 로비에서 숙식하며 전면 파업을 벌이고 있다. 정치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선거 때만 표를 구걸하기 위해 이들을 찾고 선거가 끝나면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힘세고 가진 자들은 노동자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약하고 가난한 이들의 눈물과 아픔을 모른다. 이해하려고도, 노동현장의 열악한 조건을 개선하려고도 않는다. 오로지 노동자의 몫이다. 함께 싸우지만, 거대한 기업과 가진 자와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노동시장에 공공성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

한국 사회는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사회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742만6천여 명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숫자를 포함하면 1,000만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의 평균 근속연수는 5.9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짧다. 재계는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해 모든 고용형태를 비정규직에 가깝게 만들려고 한다.

비정규직 사용으로 기업의 단기 이윤은 극대화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다. 노동자가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직무에 필요한 능력을 키우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미숙련 노동자들에 의해 회사가 운영된다. 식품 업계에서는 이미 직접 고용으로 전환한 사례가 많다. 오뚜기의 99%는 정직원이다. 대형마트 시식 코너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정규직이다. 언론은 직원의 제품과 고객에 대한 애정도가 훨씬 높아져 오히려 더 큰 이득을 보고 있다고 전한다.

▲ 오뚜기 함태호 명예회장은 생전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 오뚜기는 비정규직 비율이 1%대다. 대부분이 정규직이니 업무에 집중하게 되고, 제품과 고객에 대한 애정도가 높다. © SBS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은 사회 전체로도 손해다. 첫째, 의료비 지출이 증가한다.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은 노동자의 건강 지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고용 상태가 낮아질수록 건강상태가 낮아진다. 둘째, 실업급여 지출이 증가한다. 실업급여는 6개월 이상 일한 사람을 대상으로 지급된다. 비정규직이 되면 반복적으로 실업을 경험하기 때문에 실업급여 지출이 증가한다. 기업이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국가로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셋째, 비정규직이 늘어날수록 국가 전체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반복된 실업으로 기술이나 지식을 축적시킬 기회를 잃고, 인재들이 기술혁신 현장이 아니라 공무원으로 몰려간다. 넷째, 불평등이 심화한다. 계급 불평등은 교육 불평등을 낳고, 다시 취업 불평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한다. 부와 노동의 불평등이 점차 심화하는 이유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비정규직 비율과 세계 최저의 노동조합 조직률을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과 생명을 위협받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살아간다. 쌍용자동차, 한진택배, LG트윈타워 노동자 그 외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외침을 기억하자.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해 이윤을 내는 만큼,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노동자가 살아야 기업이 산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법을 마련해야 한다. 상시 업무에 관해서는 정규직 고용을 의무화해야 하고 불가피하다면 그 사유를 적시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비정규직이 남용되지 않도록 ‘사용 사유제한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상시, 지속적 업무 및 생명 안전 업무는 정규직으로만 직접 고용하고, 출산 휴직 결원 등 예외적 경우만 비정규직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업이 하청 업체를 변경할 경우 기존 노동자들의 집단해고를 막는 법도 제정해야 한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노동조합 활동도 적극 보장해야 한다. 작년 기준으로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3.0%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조건이자 장치일 뿐이다.

노동자가 사람으로 대접받는 세상

서울대병원은 산소 공급과 시설 관리 업무를 덜 중요한 일이라며 외주화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려 하자,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 위험하다고 막는다. 의사의 의료 행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환자가 깨끗한 환경에서 질 좋은 식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현장의 잘 보이지 않는 노동처럼, 모든 노동은 사회에 필요한 중요한 일이다. 노동자는 노동으로 당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회사의 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사용자와 동등한 관계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불평등을 더욱 심화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을 위한 뉴노멀이 시대정신이자 화두다. 포스트코로나 대전환과 국가 재설계의 핵심 가치는 사람과 생명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해고 불안과 최저임금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안정적인 고용과 임금이 보장돼야 한다. 죽지 않고 일하는 작업환경을 만드는 일이 그 첫걸음이다. 노동자는 내 가족이고, 이웃이며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노동(시장)은 이들의 안전과 생명, 삶의 질을 담보하는 중요 공공영역이다. 부와 노동의 불평등이 ‘K 양극화’로 진전되는 오늘, 노동(시장)에서 공공성을 강화는 필수적이다.

▲ 재하청 업체 일용직 노동자인 이선호씨가 300킬로그램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이선호씨가 숨진 후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한 해 10만 명 정도가 산업재해를 당하고 2000명 정도가 숨지지만 이를 방지할 대책은 미미하다. © KBS

노동자들의 꿈은 소박하다. 굶어 죽지 않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일자리에 목숨 걸고 매달린다. 투쟁하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단식으로 병원에 실려 간다.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다가 죽는 것까지 감수한다. 행복이 아닌 생존이 목표가 된 사회, 살기 위해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어떤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시민들의 생존권과 안전권, 노동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가 없다. 노동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며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확보하는 일은 우리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본이다. 노동은, 좋은 노동시장은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재다. 좋은 노동시장은 노동자, 기업, 정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공공재’다. 코로나 팬데믹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재’의 ‘공익성’에 새로운 시선을 집중하게 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사회 재개편과 국가 재설계의 기회인 오늘, 주요 공공영역인 노동‧정치‧의료‧신뢰‧언론의 현장이 왜, 어떻게 공공재가 되어야 하는지 주목한다. (편집자)

편집 : 김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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