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월경상점 안지혜 대표

지난 1월 ‘월경상점’을 연 안지혜(35) 대표는 ‘가게 문 옆에 의자를 하나 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연인과 함께 온 남성들이 문 옆에 쭈뼛쭈뼛 서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달 지난 요즘은 남성들이 데이트 코스처럼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남성들이 (월경을) 나랑 관계없는 일이 아니라, 연인을 위해 내가 알아야 하는 일이라고 인식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그는 말했다. 국내 최초로 여성 생리용품 전문점을 낸 안 대표를 지난달 15일 서울 대방동 월경상점에서 만나고, 지난 1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개장 초엔 ‘문 옆에 의자를 둬야 하나’ 고민도 

▲ 여성창업공간 스페이스 살림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월경상점 안지혜 대표. ⓒ 현경아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도 남성이에요. 그는 상점에서 어떤 걸 판매하는지, 어떤 상품이 품절인지까지 미리 예습하고 오는 열정을 보였죠.”

지난 3월 여자친구와 방문한 그 남성은 2시간가량 매장에 머물면서 함께 상담을 받고, 여자친구에게 질문을 유도하기도 했다. 안 대표는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움을 느끼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여성인 자신도 이 사업을 하기 전까진 월경을 ‘짜증 나는 일주일’ 정도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여성창업공간인 스페이스 살림 안에 있는 월경상점에 들어서면 8평(26㎡) 크기의 매장 한쪽 빨간색 벽에 안 대표가 사업 초기 공부 목적으로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전 세계 월경컵 60여 종이 진열돼 있다. 그 옆으로 삽입식 생리대인 탐폰과 일반 생리대 등이 구역을 나눠 진열돼 있는데, 고객이 종류별로 직접 만져보며 비교할 수 있다. 안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인 이지앤모어의 팀원 6명 중 1명이 월경상점을 담당하며 방문 고객의 질문이나 상담에 응하고 있다. 

7번의 이직 후 선택한 창업

▲ 월경상점 한쪽 벽에 안지혜 대표가 수집한 60여 종의 월경컵이 진열돼 있다. ⓒ 현경아

청주대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하고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창업&프랜차이즈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안 대표는 7번의 이직 끝에 지난 2016년 3월 월경용품 온라인사업체 이지앤모어를 창업했다. 창업 직전에 다문화 이주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에서 1년 근무한 경험이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됐다. ‘오가니제이션 요리(여러 국적자가 모여 만드는 요리)’를 뜻하는 오요리는 그가 여성문제를 사업적으로 해결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눈을 뜨게 한 곳이다. 그즈음 ‘매달 써야 하는 생리대가 저소득층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생리용품을 온라인으로 좀 더 싸게 판매하는 사업에는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법이었다. 생활용품이라고 생각했던 생리대가 알고 보니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에 따라 의약외품으로 분류되어 법의 규제를 받고 있었다. 의약외품의 정의부터 어떤 절차를 통해 허가를 받는지 등 공부해야 할 게 많았다. 

”사실 생리대는 장시간 피부와 닿고, 월경컵은 질 내부에 삽입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법 테두리 안에서 관리돼야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몰랐던 거죠. 마트에서 그냥 살 수 있으니까 별 문제 없겠지 생각했는데, 월경용품 사업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깨달았죠.”

더 큰 벽은 국내 최초로 월경컵을 수입하려 했을 때 실감했다. 생리대에 관해서는 의약외품으로 규정한 관련 법이 있었지만 처음 들여오는 월경컵에 관해서는 새로운 근거가 필요했다. ‘질 내부에 장시간 실리콘을 넣었을 때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는 증명이 필요했다. 억 단위의 비용이 드는 임상실험은 재정상 불가능했다. ‘학술지에 비슷한 임상실험이 등재된 브랜드면 실제 임상실험과 대체가 가능하다’는 식약처의 안내에 그가 찾은 것은 미국 팸캡사가 제조하는 페미사이클이었다. 미국 산부인과 의사가 개발해 2014년 임상실험을 진행한 자료가 학술지에 나와 있었다. 국내 최초 월경컵 수입은 그렇게 시작됐다. 개당 3만~4만 원 정도인 월경컵은 한 번 구매하면 2~3년 가량 쓸 수 있어 경제적 부담이 훨씬 덜하고, 생리대로 인한 환경오염도 줄이는 장점이 있다.

생리대 유해성분 논란 후 민감해진 소비자 

월경용품 사업을 시작한 후 2017년 생리대 유해성분 논란이 불거졌다. 그 후 많은 고객들이 월경용품을 다양화할 것과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해줄 것 등을 희망했다. 고객은 월경컵을 시중에서 직접 보고 살 수 있길 원했지만, 기업은 마트에 떼 주어야 할 수수료를 걱정했다. 그는 기업과 고객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오프라인 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2018년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 2019년 서울숲 갤러리아포레에서 ‘월경박람회’를 열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월경박람회가 개최됐다. 지난달 28일 월경용품 정보를 제공하고 저렴하게 판매하는 라이브 쇼핑이 진행됐고, 오는 6일까지 ‘버추얼 월경런’ 행사가 이어진다. 이 행사는 신청자들이 각자 정한 장소에서 목표 거리를 달리고 ‘나이키런클럽‘같은 러닝앱으로 기록해 이지앤모어 홈페이지 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하면 월경용품이 한부모 가정 청소년 등에게 기부되는 방식이다.  

▲ 지난 2019년 전북 전주시에서 열린 월경용품 수다회. ⓒ 이지앤모어

창업 과정에서 느낀 성차별

“사업 심사를 받으러 갈 때 남성분들이 계실 수밖에 없잖아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생리대 뭐가 불편해요?’ ‘생리대 그거 300원이면 사는데 이게 왜 비싸?’ 이런 질문을 하시면 내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될까, 약간 이런 불편함이 있었죠.”

안 대표는 창업 과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미묘한 성차별에 마음이 상할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창업 지원사업 프로그램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여자분이니까 가운데로 와서 주요 인물 옆에 서시라’고 하는 것 등 일상에 깔린 성차별이 보였다. 그는 2016년 한 사무실 입주 심사 때 생리대를 두고 ‘커피 한 번 안 마시면 살 수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질문을 받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생리대가 비싸 여고생이 신발 깔창을 대신 쓴다는 ‘깔창생리대’ 사건이 터진 후 그런 상황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는 사업 초기 월경용품을 지원했던 한 고등학생에게서 ‘이렇게 지원해주셔서 너무 고맙다’는 카톡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런 기억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된다고 안 대표는 말했다. 

▲ 월경상점 내부 모습. 월경 관련 서적과 몸을 따듯하게 하는 차종류도 함께 판매한다. ⓒ 현경아

‘편안하게 피 흘리는 일주일’ 되게 

사업을 시작한 후 그는 개인적으로도 큰 변화를 경험했다. 그는 보통 본 월경을 시작하기 전, 일주일 정도 부정출혈(월경이 아닌 질내 출혈)을 겪었다. 사업을 하기 전에는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월경 관련 콘텐츠를 만들면서 여성의 몸과 관련한 책과 논문을 읽게 되고, 월경이 식습관과 카페인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채식을 하고 카페인을 끊으니 평생 따라다녔던 부정출혈이 사라졌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다시 육식을 시작하고 카페인을 섭취해보니 부정출혈이 다시 시작됐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알아가면서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게 됐다.  

안 대표는 “이런 경험을 하면서 내가 내 월경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구나 느꼈다”며 “그래서 여성들에게 이런 경험을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지앤모어 팀원들과 ‘월경생활팁’ 같은 콘텐츠를 제작해 홈페이지에 올린다. 지난 4월에는 월경 과정에서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알아보는 온라인 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 이지앤모어 홈페이지 월경 콘텐츠에서 여성의 몸과 월경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 이지앤모어

출산·임신·완경 등 여성 건강 돕는 기업으로

안 대표는 “월경용품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이 더 넓어져야 한다”며 앞으로 출산, 임신, 완경에 이르기까지 여성 몸의 변화와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월경을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본 경험이 없는 거예요. ‘월경은 그냥 짜증 나는 일주일인데 뭐 그거까지 신경 써?’라는 인식이 많다 보니까 이 인식을 개선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판단해서 지금은 월경에만 집중을 하고 있어요.“

▲ 여성의 선택권을 강조하며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안지혜 대표. ⓒ 현경아

지난해 이지앤모어는 전년 대비 매출이 약 3배로 늘었다. 올해 첫발을 뗀 월경상점 또한 지난달에 전월 대비 1.5%의 성장을 기록하며 차근차근 이름을 알리고 있다.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플랫폼이다 보니 순이익이 많지 않고 재정적으로 어려움도 있지만, 일단은 고객과 신뢰를 쌓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안 대표는 “월경을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를 바탕으로 월경용품의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단체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 실험을 하고 입장문을 발표했던 것처럼 월경용품에 관한 다양한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리대 유해성분)논란에서 끝날 게 아니라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해요. 생리대의 전 성분을 공개하긴 했지만, 인체에 닿을 때 어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지 세부적인 연구가 부족한 편이죠.” 

실제로 2019년 생리대 전 성분 표시제가 시행됐지만, 그것만으로는 소비자의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그는 여성 생애에 걸친 건강 선택권이 커지길 바라며 차근차근 나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편집 : 김병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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